또다시 아이가 아프다. 크게 아픈 건 아니지만, 조그마한 몸에서 콧물이 나고 열이 나면 초보 엄마는 마냥 아득해진다. 한 달에 한 번 혹은 두 번씩 꼬박꼬박 감기에 걸리는데, 아플 때마다 아픈 아이를 처음 보는 것마냥 새롭고 헷갈린다. 도대체 어떻게 하는게 잘 하는 것인지 확신이 안 선다.
시부모님은 물론 아이 친구의 엄마들, 친정엄마까지 병원에 가라고 성화다. 성화를 들을 때면 병원에 가는 게 맞는가 싶기도 하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면 여기저기 감기 걸린 아이들 천지다. 그런 아이들을 볼 때면 공기 나쁜 한국에선 역시 병원에 오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감기는 특별한 약이 없이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낫는 병이라고 한다. 임신 중에 EBS 다큐멘터리 ‘감기, 낫게 해드릴께요’를 보면서 ‘그래, 감기는 특별한 약이 없어. 저절로 낫는 거야. 내 아이가 태어나면 감기 정도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도록 응원해줘야지.’ 했더랬다. 베이비트리에서 신순화님이 추천해주셨던 것 같은데, ‘병원에 의지하지 않고 건강한 아이 키우기’(로버트 S. 멘델존 지음, 김세미 옮김, 문예출판사)를 읽으면서도 "그래, 맞아. 감기는 시간이 약이야.“하며 의지를 불태웠었다.
그런데, 이론. 내 새끼가 아플 때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안 하는게 힘들다. 그 조그만 몸이 양쪽 코가 막혀 숨쉬기 힘들어할 땐 얼른 콧물을 줄여주는 약을 먹이고 싶고, 콜록콜록 기침을 할 땐 얼른 기침 약을 먹이고 싶다. 이러다가 지난번처럼 중이염에라도 걸리면 어쩌지? 후두염으로 발전하는 건 아냐?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을 상상하면 병원 문이 열리기만 기다린다.
‘두려움 없이 엄마되기’ 중 윤정이가 일주일동안 꼬박 아프고 일어난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대단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를 위해서 무엇을 해주기보다, 무엇을 해주고 싶어도 그 마음을 지그시 누르고 그냥 지켜봐주는 일이 몇 배는 더 어렵다는 신순화님의 고백을 읽으며 백만배 공감했었다. 힘들어도 그냥 지켜보는 그 내공이 부러웠다. 아픈 아이 앞에선 얄팍한 소신은 저만치 내동댕이치고 귀는 종잇장마냥 팔랑거리는데, 어떻게 그렇게 중심을 잡고 지켜볼 수 있을까 마냥 부러웠다.
그나마 감기는 이렇게 저렇게 질문이라도 하니 나은 편이다. 힘들게 천기저귀 빨아쓸 수 없다는 생각에 별다른 고민없이 일회용 기저귀를 지난 17개월동안 주구장창 써왔으며, 예방접종은 나라에서 하라고 권장하는 것이니 당연히 해야지 하며 비싼 돈 주는 선택접종까지 모조리 다 했다.
‘두려움 없이 엄마되기’를 읽으면서 육아에서 당연한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당연하게 병원에서 출산해야한다는 법은 없으며, 당연하게 세 살이 되면 어린이집에 가야한다는 법 역시 없다는 것. 아이를 키우는 것은 수많은 질문과 맞닥드려야 하는 일임을 깨닫는다. 사회적 통념이 항상 맞지 않다는 것. 의심하고 질문하고 여러 가지 대안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 아이를 키우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나는 아픈 아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다. 빨리 낫게 해달라고 신에게 빌고 또 빌지만, 그래도 아이 스스로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으며 가만히 지켜본다. 간혹 콧물에 뻥튀기가 달라붙는 굴욕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새끼가 잘 이겨내고 있다. 힘내라. 우리 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