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나는 평균 6개의 학원에 다녔다. 미술, 피아노, 플루트, 컴퓨터, 서예, 바둑까지 엄마는 보습학원은 절대적으로 불신하시면서도 예능 조기 교육에는 열을 올리셨다. 사실 6개의 학원 중에서 내가 가고 싶었던 곳은 하나도 없었다. 플루트는 예쁜 스티커를 받으러 갔고, 미술은 간식을 먹으러 갔으니까. 게다가 서예 학원 선생님을 너무 싫어하는 바람에 지금까지도 한자라면 이를 갈며 싫어한다. 내가 제일 다니고 싶었던 학원은 태권도였는데 엄마는 여자 아이가 너무 사나워져서 안 된다며 단호하게 거부하셨다. 덕분에 나는 초중고 미술과 음악의 실기 과제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옵션으로 체육을 싫어하는 내성적인 여학생이 되기도 했다.
크면서 나는 엄마와 많이 갈등했다. 어쩌다 엄마가 집 한 채 값을 날린다고 푸념이라도 하는 날이면 당장 학원을 때려치우겠느니 이걸로 내가 얻는 것이 무엇이냐고 엄마를 몰아세웠다. 그리고 그런 마음 자세로 임한 결과 지금의 나는 다룰 줄 아는 악기 하나 없고 연애 시절 지금의 남편에게 그림 하나 그려 선물했다가 추상화냐는 비웃음이나 받는 화상이 되었다.
유대인의 자녀교육은 읽으면서 내내 감탄하고 밑줄도 긋게 했다.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줘야 하고 아이에게 인내와 노력을 가르쳐야 하고 공동체 의식과 봉사정신을 갖게 해야한다는 것. 감탄이 절로 나오는 훌륭한 이야기였다. 호기심과 상상력을 위해 책을 가까이 하게 하고 그러려면 책을 많이 읽게 하고 토론도 하게 하라는 것도 좋은 이야기였다. 아이의 교육을 위해서 부모가 솔선수범하고 항상 사랑으로 대하라는 것도 조부모와의 시간을 통해 뿌리교육을 시키라는 것도 다 중요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이런 이야기는 유대인만 아는 것인가. 우리 엄마는 이걸 왜 몰랐을까.
남편과 나는 신이를 낳기 전부터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나눴다. 특히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몰랐던 것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했다. 아들은 잘 키워서 유학까지 보내놨더니 유학에서 돌아온 아들이 "엄마, 나 이제 뭐 하면 돼?"하고 물었다는 우스개소리처럼 요즘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나 역시 그러했다. 하기 싫은 건 많은데 하고 싶은 건 없었다. 딱히 못 하는 건 없는데 특별히 잘 하는 것도 없었다. 충북에서 개천 용이었던 남편 역시 아버지가 가라고 하고 수능 안 봐도 돼서 그 대학에 갔다는 씁쓸한 옛 이야기가 있다.
부모란 무엇인가. 책을 읽으면서 엄마가 내게 해준 것들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엄마에게도 말했지만 엄마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책에 대한 애착이다. 학원 다니느라 책을 읽을 시간도 별로 없었고, 엄마가 내게 특별히 책을 읽으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시간을 아껴가며 책을 봤고 한번 책에 빠지면 정신 못 차리고 봤다. 나는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모습이 늘 책 읽는 모습이었던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밑줄 긋고 포스트잇 붙이면서 책을 읽고 나니 웃음이 난다. 이 책 한번 읽고 버리면 나도 나중에 우리 신이 학원 6개 보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