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내 꿈은 좋은 엄마 되기였다.
진짜 엄마가 되기 전까지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인지 참 막연했고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는 엄마가 좋은 엄마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를 행복하게 해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찾아 읽었다.
그런데 나는 막상 내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내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어떤 일을 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었다. 내가 받은 교육, 내가 길러진 방식은 '공부 열심히 해서 성공하면
무조건 행복하다' 였다. 그 '열심히'와 '성공'의 기준은 시시 때때로 달라지고
남과의 비교 경쟁에서 희비가 엇갈렸다. 아무리 잘 해도 늘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무리 노력해도 절대 만족시킬 수 없는 엄마의 높은 기대가 있었다.
이렇게 자란 엄마가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법을 찾는다. 완전히 '행복을 글로 배웠어요'다.
유대인들에 대한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이 책을 읽었다. 그 동안 읽었던
많은 육아책과 교육책에 나온 내용과 많이 다르지 않다.
아이를 인격체로 존중해 주고, 주입식 지식 교육 보다는 많은 경험과 체험을 중요시 하고
배려와 공동체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세세한 방법들을 소개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이런 육아 방식이 그들의 삶 자체일 것이다.
유대인 부모가 교육받은 대로 아이를 가르치는 것이니.
그러나 그렇게 배우지 못한 나같은 한국인 부모에게는 새롭게 배워서
삶의 일부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육아 방식이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마음에선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나를 위해 나는 행복해지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다지 거창한 연습들은 아니다. 아이를 많이 안아주고 아이의 말을 들어주고
남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아이가 평화롭고 자유로운 어린시절을 누리게 해 주고
그 덕에 내 마음도 평화롭게 유지하는 그런 연습들이다.
하지만 그 전에 이렇게 자라지 못한 나를 잠시 위로해주고 싶다.
아이가 나처럼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나를 많이 아프게 한다.
지금의 나를 부정하는 말이기 때문에...
아이가 어떻게 컸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지만
단 하나, 지금 이 순간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섯 살 때는 다섯 살 만큼,
열 다섯 살에는 열 다섯 살 만큼, 어른이 되어서도 딱 그만큼
행복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이미 이 아이로 인해 행복하다. 글로 배운 행복이 아니라 아이를 보면 그냥
느껴지는 행복이다. 그래서 행복을 가르쳐준 아이에게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행복하지 않다고 누가 그러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