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도 말씀 드린 적이 있듯, 꼬마 아버님은 바쁘십니다.
바쁘지 않은 시간에는 시름시름 누워서 스마트한 핸드폰으로,
전혀 스마트하지 않게 동영상을 보시거나, 티브이 리모컨 배터리 소모를 하고 계십니다.
(제 깊은 원한?이 잘 녹아 든 표현이오니, 양해 구합니다^^ㅋ)
꼬마가 가족 그림을 그린다면 아빠는 누워있는 그림을 그릴 겁니다. 분명합니다. 흑..
엄마가 아무리 잘 놀아주고 가르쳐주고 함께 해주어도 아빠의 자리는 꼭 있어야 한다고.
아빠가 놀아주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영재는 아빠가 만드는 거라고..(근거 없는 위협성 멘트)
제 생각, 주워들은 얘기 다 동원하여 설명해도 남편은 그다지 변화가 없습니다.
아니면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요?
저는 비교적 잘 놀아주시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주말에 나들이도 많이 다녔지만, 기억 중 최고는 공하나 들고 아파트 뒤편 공터에서 야구인지 피구인지 모를 놀이를 즐겼던 것입니다.
이 사소하고 아무것도 아닌 듯한 경험들이 어린 아이의 정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다 자란 후에 알았죠.
잘 놀아주는 아빠가 세상에는 많지 않다는 걸..
요즘이야 개념도 바뀌고 관심도 늘어서 가정적이고 아이와 잘 놀아주는 아빠들이 많아지고 있지만,
제가 자라던 시절에는 우리 아빠처럼 잘 놀아주시는 분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아빠를 가져서 그랬을까요?
제 남편이 되신 꼬마 아버님도 그래 주실 거라는 착각은 대체 어디서부터 하게
된 걸까요…?
남편의 변명은
“꼬마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엄마만 좋아한다.
엄마가 아빠한테 하는 잔소리들이 아빠를 무시하게 만드는 거다” 주로 이렇답니다. --;;
세상에나, 이런 야속한 변명도 다 있네요.
태어나 지금까지 항상 곁에 있었고, 꼬마의 가려운 데가 어딘지 눈치껏 금방 알아채지는..
찰떡궁합을 자랑하고 있는 엄마랑은 애초에 비교 하지 말아야죠..
아니, 오히려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니깐 더욱 노력해줘야 아빠의 자리가 커지는 것 아닐까요?
남자아이들은 이 무렵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벗어던지고 ‘아빠 닮아가기’에 열을 올리게 된다고 하던데..
우리 꼬마에겐 언제쯤 찾아올까요^^;
급기야 저는 억지로 아들과 아빠만의 시간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1. 같이 가지 않겠냐는 남편에게 버럭~하며 집 근처 마트 실내놀이터로
쫓아 보내기도 하고,
2. 비싸니까 표는 두 장만 끊었다고 공연장에 집어넣기도 하고,
3. 남편의 귀가가 이른 날엔 때때로, 제가 취미로 하는 운동을 저녁시간에 가버리기도 합니다.
그럼 덩그러니 둘만 집에 남겨지니까요.
억지로 만든 둘만의 시간이 길면 얼마나 길겠습니까.
마트 실내놀이터에 가면 아이 혼자 노는 동안, 와이프가 등떠밀어서 왔다지만 놀아주기엔 넘 피곤하신 아빠는 스마트폰 삼매경일 것이고, 공연장에 있는 동안에는 내내 아이에게 투덜&버럭질을 일삼으며! 말썽잠재우기 용으로 사주면 안되는 첨가물덩어리 달콤한 음료수를 사주겠죠. 저녁운동을 하고 돌아오는데 걸리는 두 시간 동안에 역시 아이는 방치 상태이거나 아빠랑 싸우고 혼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시간을 계속해서 둘에게 주려고 합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둘만의 ‘관계맺음’이 나름대로 되어야만 할 것 같아요.
아버지와 아들 사이니, 공유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어느 정도 자리 잡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서먹한 부자사이는 요즘 세상에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잖아요.
가뜩이나 저희는 아들
하나인 세 식구니,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소통이 많아졌음 해요.
아이 키우는 것이 너무 힘들다 하지 말고 이럴 때를 감사히 여기고 즐겁게 보내라는 어르신들 말씀이
요새는 허투루 들리지 않습니다.
제가 이렇게 노력하는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이 시절이, 이 시간은 금방 지나가버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 꼬마가 우리 품을 어느 정도 벗어났을 때, 아빠로서 어리석었다고 후회하지 않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적고 보니 끝이 다소 감상적이 되어버렸네요. 사실 남편을 토로하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생각해보자면, -힘든 인생의 시기를 보내고 있는 남편의 속사정까지 고려해보자면-,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의 끈을 부여잡고 있어줄 수가 없어서…
제가 붙잡고 있는다고 붙들려지지 않는 꼬마의 시간이니까요..
처음엔 다소 어색하고 삐그덕거리는 관계맺음이 되겠지만, 제가 엄마가 되는 과정이 그러했듯
남편이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에도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하겠죠.
그리고 아이와의
호흡도 점차 좋아지겠죠?
에구..남편이
몰래 이 글을 읽고 제 마음을 반쯤은 이해해주면 좋겠습니다..
귀한 나머지 오냐오냐 하며 키우진 않지만, 저는
지나가버리면 다시 오지 않을 아이와의 지금 이 순간 순간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그가 이 소중함을 이해하고 동참해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