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자님과 저, 그리고 아루와 해람, 넷이 만났습니다.
양기자님만 나오실 거라 예상했지만, 그래도 모임 제안자로서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모임을 어떻게 꾸려나갈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애초에 어떤 이야기를 하려고 정해놓은 것도 아니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지만,
분노나 슬픔을 나누되 '세상에 이런 일이!'에 머무르지 않고
각자의 삶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베이비트리에서 이야기 하고 있는 '공감'과 '연대'를 우리 스스로 어떻게 이루어갈 것인지, 그리고 아이들 마음 속에 어떻게 심어줄 수 있는지,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오전 내내 청와대 앞에서 밤을 새운 유족들 소식에 마음이 참담했습니다.
검은 옷을 찾아 입고 아루랑 노란 리본을 만들어 가슴에 달았습니다. 옷핀을 찾으니 아루가 어버이날 학교에서 만든 카네이션에서 떼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깜박 잊어, 그리고 저는 달고 싶지 않아 가방 속에 잠자던 카네이션이었습니다.
유튜브에서 '천개의 바람이 되어'를 찾아 놓고
5월 6일자 한겨레에 실린 조한혜정 칼럼을 함께 읽어 보려고 찾아 놓았습니다.
([조한혜정 칼럼]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시민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5784.html)
내가 가진 것 중에 나눌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다가 옥상 텃밭에서 키운 로즈마리를 챙겼습니다.
하자에서 직접 캔 쑥으로 만든 떡을 나누어주셨고 로즈마리차를 마시며 양기자님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양기자님은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으며 '국가','나라','정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전 택시를 탔는데 기사가 '대통령이 뭘 다 할 수 있느냐, 왜 대통령에게만 그러냐'고 하더랍니다. 사람들이 대통령을 제왕으로 오해하고, 내가 속한 나라는 선택할 수 없지만 정부는 우리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음을 지적해주었습니다. (그 택시기사와 같은 의견을 저도 자주 접했는데 이러한 국가 재난의 책임을 행정 수반에게 묻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들으며 지난 대선이 떠올라,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과 교감하지 못하고 힘을 모아내지 못하는 정치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바꾸지?라는 질문을 또다시 마주했고 제 결론은 '답이 주어지길 기대하지 말자'입니다. 근본적이고 확실한 변화를 원하지만, 그래서 이상적인 결과에 집착하다 보면 어떤 영웅, 누군가 해답을 제시해주길 바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이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객관식, 단답식의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생각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
공감과 돌봄의 정치를 함께 모색하는 것
허벅지 나누어 베고 곯아 떨어진 아이들을 보며 이런 다짐이 공허하지 않도록 일상을 잘 꾸려나가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모임하자는 제안에 댓글이 없어 섭섭하지 않느냐고들 물어 주셨는데
솔직히 이런 제안을 하고 모임을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제겐 의미가 있었습니다.
마음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이 계셔서 좋았고 각자 자신의 삶터에서 이런 고민들을 풀어내고 계시니 못 가봐서 미안하다는 말은 거두셔도 될 듯 합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밀양 구술 프로젝트 '밀양을 살다'에 대해 쓴 한겨레 정희진의 어떤 메모에서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36322.html)
‘일상’처럼 계급적인 단어도 없다. 대개 일상은 반복, 아무 일 없음, 무료함을 연상시키지만 그렇게 사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사람들은 사는 것이 전쟁이다. ‘우리’의 일상이 ‘그들’의 예외 상태다...
하지만 “세상일에 관심 끊고 무심히 살 수는 없습디다”는(207쪽) 구미현씨 표현처럼, 일상을 고대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관심을 켜고/끄고의 문제가 아니다. 안녕과 평화, 그런 것은 원래 없다. 평화는 희망과 오해가 실재처럼 된 대표적 언어다.
곳곳에서 들려오는 일상으로 돌아가라는 메시지가 마치 생각을 멈추고 '매트릭스'로 돌아가라는 것처럼 느껴져 불편하던 차였습니다. 우리에게 돌아갈 아름다운 일상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안녕과 평화, 그런 것은 원래 없다', '각자의 삶이 전쟁'이라는 것을 공감하는 데에서부터 슬픔과 비통함의 연대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베이비트리언들과 글로, 그리고 오프라인 모임에서 생각을 나누는 시도를 계속 해보겠습니다. 앗, 어쩌다보니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