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명절 잘 보내셨나요?
베이비트리 앱 출시도 축하드리고요.
어느새 봄이 다가오고 있네요~
하는 상큼한 이야기로 글을 써야지, 생각했던 연휴 다음 날.
아이가 갑자기 병원에 입원을 하고 수술을 받게 되었어요.
임파선 염증이 악화되어 발생한 농양 제거 수술.
돌이켜보면 아이는 계속 아프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더라고요.
시작은 두 달 전, 11월 말.
알 수 없이 맥을 못 추고, 배와 등에 열꽃이 피고,
열이 40도까지 올랐던 일요일 밤이었어요.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느낀 우린 화순에서 부랴부랴 광주로 나왔는데,
다음 날 아무일 없다는 듯이 열이 내려서
심한 감기가 오려다 그냥 지나가나보다 했지요.
(*다른 증상 전혀 없이 고열이 난다면 유심히 살펴보시기를!)
그 뒤로도 책 마무리를 한다고, 사실 아이에게 제대로 신경을 못썼어요.
마지막 작업을 하던 12월 초에는 아예 일주일 동안 친정에 맡겼고,
책이 발간 된 뒤에도 서울을 왔다갔다 하느라
한달 간 일주일에 절반은 떨어져 지내고.
돌이 지난 뒤 유난히 안아달라고 조르는 아이를
분리불안을 겪고 있는 것으로만 생각했거든요.
갑자기 손가락을 자주 빨기 시작한 것도 이가 나면서 겪는 일인줄로만 생각하고...
워낙 잘먹고 잘자는 데다, 아파도 짜증이 없는 편이어서,
설 며칠 전, 턱 아래가 심각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할 때까지도
그저 독감 때문이려니,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요.
그리고 입원한 지 나흘, 수술한 지 사흘 째.
시간의 힘은 정말 이토록 놀랍더군요.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마취주사를 놓자마자 눈을 뜬 상태로 잠에 빠져버린 아이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던 우리가 희미하게 느껴질 만큼
이 상황에, 병원 생활에 익숙해졌답니다.
이제 수액이 떨어지는 속도쯤은 간호사 도움 없이도 조절할 수 있고,
아이가 자는 틈을 타 책을 읽는 여유도 생겼으며,
같이 휠체어를 타고 병동을 씽씽 돌아다니기도 해요.
병원 근처에 맛있는 식당도 알아두었고,
온갖 과일과 떡, 빵, 심지어 붕어빵까지도 나눠먹는,
병의 고통과, 삶을 쉽게 나누고, 위로하고, 공유하는
6인실의 살갑고 따뜻한 분위기도 무척 좋고...
조용한 새벽녘, 커튼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비치는 걸 보고 있으면,
병원이 아니라 호주의 어느 캠핑장에 있다는 상상에 빠질 정도로^^
잘 웃고 잘 먹고 잘 자고 게다가 어른 환자들 사이에서
눈에 띄게 작은 준영인 어딜가나 수퍼 스타!
밥을 먹든, 물을 마시든, 울든, 웃든
그녀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에게 희망이고 기쁨이고 즐길거리가 되어주고 있어요.
그래, 아이의 존재란 이렇게 귀한 것이었지,
하고 새삼스럽게 떠올릴 만큼 과분한 사랑이지요.
생로병사가 뒤섞인 '병원'이란 공간의 특징인지도 모르겠지만
여섯 명의 환자와 보호자들까지 대략 열다섯 남짓의 사람들이 생활하는 병실은
그 자체로 생생한 이야기 보따리랍니다.
의학 드라마가 왜 끊임 없이 등장하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ㅎㅎ
"어디가 불편하세요"
이 한마디면 됩니다.
딸'만' 셋인 아줌마의 은근한 자격지심,
파마 머리를 양갈래로 묶고 다니는 귀여운 아줌마,
유일하게 보호자가 찾아오지 않는 창가의 아줌마,
텔레비전을 켜고 끄는 일을 담당하는 또다른 쪽 창가의 아줌마,
입덧이 심해 잘못 넘어졌다가 뇌출혈을 일으켰다는,
다음달 출산을 앞둔, 하반신 감각이 마비된 내 또래의 젊은 엄마,
그리고 준영이.
아, 우리 병실은 여자 환자들만 있답니다.
하긴, 환자들뿐인가요.
분홍색 유니폼을 입은 건 실습하는 대학생 간호사들,
흰색 유니폼은 연륜있는 간호사들,
회진은 아침 오후 두 번,
청소 아줌마가 우리방에 들르는 시각은 대략 아침 6시,
입원 환자들을 치료하는 외래 진료도 대략 그쯤부터 시작,
자고 있는 준영이를 깨우는, 눈치 없는 의사 선생,
말끔한 정장 구두를 신고 다니는 할아버지 의사 선생,
떡진 머리와 벌건 눈을 한 젊은 의사 선생,
준영이가 무서워하는, 주사 놓는 간호사 언니,
환자복 상의 단추를 풀어서 섹시한 나시가 드러나게 하는 젊은 아가씨,
새로 들어온 옆방(남자 환자방)의 젊은 남자와 비쩍 마른 베트남 학생,
준영이를 볼 때마다 손녀딸 생각이 난다는 할아버지,
새벽 3시경 조용한 화장실을 깨우는 방구쟁이 아줌마들...
사실 며칠 동안은 매일 눈물바람이었어요.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농양 제거 수술이 아니라
임파선염으로 끝낼 수 있었던 것을,
엄마의 무심함으로 두 달 동안이나 병을 키웠다고 생각하니
정말 가슴이 찢어지더라고요.
그러나 역시, 시간의 힘 덕분에 지금은
삶의 또다른 측면을 여행하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만하길 천만 다행이다...
언제든, 세상은 감사한 일들로 가득하다는 것도요.
아이가 아프지 않았더라면, 입원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이런 것들을 알기까지 더 오랜시간이 걸렸겠지요?
아이는 다행히 회복을 잘 하고 있고요.
다음주에 퇴원해서 며칠 통원치료 하면 될 것 같아요.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봄의 문턱에서
문득 연탄재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내 아이들, 남편과 가족,
내가 고꾸라질 때 나를 위로해주고
사랑한다고 말해준 사람들을 위해...
비판보다 칭찬을,
원망하기 전에 감사를.
이것 역시 부족한 나를 늘 깨워주고 채워주는
고마운 사람, '여러분' 덕분입니다.
아이가 입원한 뒤로, 이 말에 몇 배는 더 진심이 실렸어요.
모두들 건강한 날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