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아이라고 너무 무심했었던 모양이다.
일거수일투족에 손사래를 쳤던 큰아이와는 달리 밑으로 갈수록 허용의 폭이 넓어지는 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첫째 때에는 안하면 큰일 날 것 같았던 절대절명의 일이 막내까지 오면 별 일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예를 들면, 재빈이가 아기였을 때는 한밤중에 열이나기만 해도 큰 병원 응급실을 두드리기 일쑤였지만 재은이 재령이에는 그 정도로 응급실을 가는 일은 없다.
재빈이 때는 자기 전에 치카를 안 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나는 것 처럼 애를 울려가며 꼬박꼬박 이를 닦였지만, 막내는 싫어할 때나 가끔 내가 귀찮아도 이닦기를 빼먹는 일이 허다하다.
같은 또래의 엄마들과 얘기를 해 보면 첫 애 때는 엄마도 처음이기 때문에 조바심을 치지만 둘째부터는 해 봤기 때문에 엄마 마음이 한결 여유로와진거라며 오히려 아이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나도 공감한다.
그렇게 첫째 때보다 둘째 때 둘째보다 셋째는 더 허용의 폭이 넓어졌다.
마음의 여유도 여유겠지만 나도 나이가 드니 일일이 쫓아다니기가 신체적으로 버겁기도 하고, 아이 하나 있을 때랑 셋 있을 때랑은 양적으로 다르니 어쩔 수 없이 포기할 건 포기하며 육아에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나가도 너무 나갔나보다.
사건은 2012년 12월13일 오전.
아는 분이 귀농하여 보름 전에 고구마 한 박스를 보내주셨다. 그런데 고구마 한 켠에 생강이 딸려있는 것이다.
김장도 이미 한 터라 생강을 어쩔까 하다가 편으로 썰어 생강차나 해 먹자 싶어 그 날 신문지를 펴고 까기 시작했다.
그런데 까고 보니 생강이 아닌거다. 비슷하게는 생겼는데 생강 특유의 매운 냄새도 없고 살짝 맛을 봤더니 생고구마 맛도 나는데, 고구마라 하기에는 자잘하고, 도대체 이게 뭘까? 도시촌놈에 전업주부가 된 지 얼마 안 된 나로서는 평생 처음보는 농산물이었다.
전화해보기에는 번거롭고 인터넷으로 찾아보려니 귀찮고 뭐 먹을거니까 보냈겠지 시작했으니 일단 껍질이나 까고 보자며 일손을 놀렸다.
그런데 엄마 옆에서 유심히 보고 있던 막내의 레이더에 작은 고구마 같은 것을 맛보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포착.
먹성좋은 막내는 어떤 의심도 없이 손 사이즈에 딱 맞는 정체불명의 농산물을 들고 다니며 먹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스톱시키고 정체 확인을 먼저 했었겠지만, 뭐 먹을꺼니까 보냈겠지 싶어 그냥 두었다.
두 알 째 막내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막내가 울기 시작하더니 안절부절 못하다가 오바이트를 하기 시작했고 아침 먹은 것 까지 모두 게워내고 매실차를 따뜻하게 먹은 후에야 겨우 울음을 그치기 시작했다.
너무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정신이 없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자책과 함께 '아니, 너 정체가 뭐야?'
알고보니 이놈은 바로 토란이었다.
찾아보니 생토란은 독이 있어서 삶은 다음에 먹어야 한단다.
무의식적으로 토란일수도 있겠다 했는데, 삶아서 먹어야 하는 건 지는 전혀 몰랐던 거다.
그런 거였어? 독성이 있는 것을 여린 속에 그냥 먹었으니 탈이 날 수 밖에. 으이구. 애 셋 키운다고 잘난척하더니만.
암튼 정신 번쩍 차린 엄마는 이 사건을 계기로 무심히 방치되어 있던 욕실세제 같은 위험하다 싶은 것은 아이의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옮겼고 아이가 손에 들고 있는 것을 이전보다 눈여겨 살펴보게 되었다.
오전에 그 난리를 치다가 밥먹고 잠든 아이를 보며 생각한다.
미안해 재령아. 엄마가 너무 무심했나봐. 그래도 몸에 안 좋은 음식을 알아서 토해줘서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