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자처럼 살던 20대를 지나, 결혼과 동시에 30대 내내 전업주부로 살아온 지난 시간.
둘째가 조금만 더 크면.. 하면서, 40대 이후에 할 수 있는 일을 꽤 오랫동안 탐색중이었어요.
한국에서 하던 일과 경력을 살린다는 건 처음부터 포기하고
어느 곳에서든 쓸모가 있겠다 싶은 기술을 배워둬야겠다 싶어 30대에 한 게 제과제빵 공부였는데
일본같은 경우는 빵, 케잌과 관련된 직업이 굉장히 많고 전문화되어있어 인기가 많은 직종이죠.
삼순이같은 파티쉐가 되는 게 일본 여자아이들의 장래희망 1,2위를 다툴 정도니까요.
둘째가 태어난 이후로는 다니던 교실에서 더 이상 배울 순 없었지만, 감각을 잃지않으려고 집에서도 틈틈히 만들어 보는데 세월이 지나도 베이킹 재료들을 보거나 만질 때면 여전히 설레이고, 만들면서 스트레스도 풀리고 그렇더라구요.
전에 했던 책, 글과 늘 씨름하는 일과는 달리, 몸과 손을 쓰는 일은 또다른 즐거움과 보람이 있어
기회가 되면 보조 일이라도 한번 해보고 싶었답니다.
그러던 중에 좋은 기회를 발견!
전부터 쭉 눈여겨 보던 제과점이 있었는데, 30년 이상 오랜 전통에 손님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도대체 하루 매상이 얼마일까 싶은, 그런 빵집에서 정규직 사원 모집 광고가 ..!
점원들이나 일하는 분위기가 언제 봐도 훌륭한게 참 보기 좋았는데, 광고 안내도 친절하기 그지 없더라구요. "경험이 없는 분께도 친절하고 정성껏 가르치겠습니다. 빵 만들기를 좋아하시는 분, 장래에 빵집을 오픈하고 싶은 분.." 안내문을 읽는 순간, 맘속으로 '저요!!!'
일을 함과 동시에 프로의 기술을 배울 수도 있는, 빵집 입장에서는 전문인력을 키우는 의도로 직원을 뽑는다니, 게다가 급여도 보너스도 나쁘지 않고 ... 아! 식구들만 아니면 이 기회에 올인해서 일도 하고 돈도 벌고 기술도 쌓고... 내 인생에 이런 기회가 다시 올 수 있을까!!
모집 안내만 보고는 벌써 정규직 사원으로 뽑힌 듯 혼자 속으로 흥분하고 있는 저를 발견..
후딱 지금 나의 처지가 떠오르면서 ... 안내문을 좀 더 읽어내려가다보니, 모집대상 연령에서 이미 40대는 제외.. 그렇지. 이게 현실이지. 그래도 면접이라도 보면 그것도 경험이겠다 싶어,
그 빵집에 한번 찾아가 담당자와 상담?을 하고 왔어요.
물론 저같은 사람은 자격대상에 포함되지도 않지만.. 도움되는 정보와 현실을 직시하게 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듣게 된 것만으로도 좋았다고 해야할지.. 운이 좋았던 건, 그곳에서 다른 가게도 소개받아 가 봤는데 며칠동안 세상공부 많이 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저의 이런 얘기를 전해 듣던 남편이,
"당신, 다음주에 아직 혈액검사 한번 더 남아있지 않아??"
아차... 그랬구나. 아직 병원도 더 다녀야하는데.. 한동안 아픈데가 없어 불과 얼마전에 그 난리를 치른 걸 벌써 까먹었는지. 마음만 급해서.. 찬찬히 생각을 정리해보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는 것도 하늘의 별 따기지만, 그 일을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림돌이 내 앞에 놓여있는지 하나하나 떠올려보니, 답답.. 해질 뿐. 이 와중에 그래도 위로가 되는 건, 내가 꼭 외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일본인 주부들의 현실도 별로 다를 게 없다는 것. 살림이 넉넉해서 전업주부로 있는 게 아니라, 아이맡기고 나가려면 버는 돈보다 더 많이 들어 어쩔 수 없이 집에 있는 엄마들이 너무 많거든요.
어쩌다 보니 또 주절주절... 하지만, 이게 저만의 경우는 아니겠지요.
청소경비노동자 분들이 총파업을 시작하신다는 기사를 봤는데, 남일 아니게 와닿습니다.
5천원이 채 안되는 시급으로 일하시는 분들이 아직도 세상에는 너무 많습니다.
가족들 생일 케잌 만들 정도만 되도 배운 보람이 있겠지..하고 시작했던 일.
처음부터 많은 보수나 대우를 바라지 않음에도 이 일을 집 문턱을 넘어 사회에서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가, 40대 엄마에겐 이리도 어려운 걸까.
새봄, 3월의 첫 월요일에도 나를 기다리는 건 산더미같은 빨래와 주말동안 쌓인 집안일인가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네요. 그래도 뭐 어쩌겠어요. 또 살아야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