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가장 받고싶은 선물 목록 1호가 포대기였습니다.
첫째 때는 몰랐지요, 두 손의 자유가 육아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대부분 아이를 한 손에 안고 대충 일을 처리할 수 있었고 세 식구 단촐히 외식도 가능해서 뜨거운 가스불 앞에 설 일도 많이 없었구요.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다니거나 디자인도 세련된 아기띠로 앞으로 안아 외출을 했더랩니다.
그러나 둘째 출산을 얼마 앞두고 있지 않아 배가 남산보다 높을 무렵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아이 둘을 키운 사촌 동생과 이야기를 하던 중 포대기를 써보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에 (두 손이 자유로워 포대기만큼 편한게 없다는 그녀의 말에 '무슨 할머니같은 이야기'냐며 웃어 넘기기는 했으나 귀가 솔깃해지기는 하더군요) 받고 싶은 선물 목록 1호에 올려두었습니다.
딴 건 몰라도 일본에서 포대기를 찾기는 어려울 거 같고 이미 가지고 있는 용도가 조금씩 다른 애기띠 몇 개가 있어서 포대기 구입을 정당화하기 쉽지 않더라구요. 선물로 받는다면 모를까.. ^^
둘째가 목을 가누기 시작하자 포대기의 명성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불타올랐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 좀 안아달라는 첫째에게 엄마는 팔이 두 개 밖에 없다는 말로 양해를 구하는 것도 이미 한계에 부딪혔고 집안은 위생을 염려해야 할 지경이었거든요.
처음에는 이를 어찌해야할지, 인터넷에서 포대기 매는 법을 뒤져 열심히 따라해보았건만 몸에 착 감기는 느낌이라는 데 이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포대기 끈을 양손에 잡고 서툰 솜씨로 낑낑대느라 아이는 아이대로 힘들어 울고 저는 저대로 한겨울에 비지땀을 흘려야했습니다.
아이를 등에 올리고 자세를 잡아 휘리릭 감아올리는 경지까지 꼬박 한 달 걸렸습니다. 그러고 나니 새 세상이 보이더군요. 아, 이거였구나. 두 손이 자유로워 큰 아이와 동요에 맞춰 손잡고 춤도 추고 블럭도 쌓고 퍼즐도 맞추고 시야가 확보되니 요리도 청소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잠투정으로 칭얼대던 녀석이 포대기로 업기만 하면 채 5분도 걸리지 않아 꿈나라행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남편도 첫째 때 우리가 왜 이걸 몰랐을까 안타까워했답니다.
그치만 아이와 합체되어 제 몸매를 항아리로 만들어버리는 모습으로 밖으로 나갈 용기는 잘 안나더라구요. 그러던 어느 날 아이를 업고 저녁을 준비하다 갑자기 급하게 뭔가가 필요해 사와야 할 거 같은데 아이는 잠이 들어 내려놓으면 깰 것 같았습니다. 어쩌나 아주 잠시 망설이다 그 채로 지갑을 들고 야채가게로 향했습니다.
슬쩍슬쩍 꽂히는 시선들. 다른 사람일에 무관심해 보이던 도쿄 사람들이 '저건 뭣에 쓰는 물건인고'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다시 볼 사람들 아니다 (동네인데.._)애써 모른 척 가게에 들러 서둘러 장을 봐 계산대에 서자 주인 할머니 '애가 무척 편해보이네. 엄마 등에 업히는 게 최고지, 엄마 심장 소리도 잘 들리고 말야. 녀석 좋겠다' 하셨습니다.
순간 움츠리고 있던 어깨가 확 펴지며 내가 지금 뭘 부끄러워하고 있었나 싶어졌습니다.
아이도 저도 이렇게 편하고 좋은 데 말이에요.
그 뒤 전 포대기로 동네를 활보하고 다닙니다. 단 하나 여름엔 너무 더워 망설여지게 되는데요, 포대기 맛을 알아버린 아이 때문에 짧은 외출이라면 그냥 둘이 땀을 흘리는 쪽을 택한답니다. 습도도 온도도 높은 도쿄의 여름엔 왠만하면 안나가려 하고 있지만요.
업고 나가면 이게 뭐냐 물어보는 젋은 엄마들도 종종 있답니다. 나이가 좀 있으신 어른들은 반가움 섞인 눈인사로 맞아주시구요.
둘째를 기다리고 계시는 님들께 강추입니다!
밑 사진은 일요일 아침 작은 아이를 업고 큰 아이와 아점을 준비하는 남편입니다. 포대기 잘 어울리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