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mayseoul@naver.com

[한겨레 토요판] 가족 너무 친한 친척들

외할머니와 다섯남매 가족들
30분 거리에 모여살면서 같이 먹고 놀고 떼거리 일상
누구네 이혼, 누구네 자식…온갖 대소사에 지나친 간섭
내 인생에도 사생활 없어
“공부해라, 취직해라, 애 낳아라”

▶ ‘친척.’ 혼인과 혈연을 기초로 상호관계를 갖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법률 용어로는 ‘친족’이라 하고, 8촌 이내 혈족, 4촌 이내의 인척, 배우자 등이 그 테두리 안에 들어가죠. 핵가족이 대세인 요즘, 친척들은 말 그대로 명절이나 집안 대소사 때나 얼굴을 보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도 친척이란 이름으로 내 인생에 자꾸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거, 이거 정말 괜찮은 걸까요?

우리 ‘식구’는 모두 20명이다. 엄청난 대가족이라고? 놀라셨다면 일단 죄송! 부모님과 오빠 그리고 나, 엄밀히 한 지붕 아래 사는 우리 가족은 분명 넷이니까. 그런데 왜 식구가 20명이라고 하느냐고? 아, 식구가 무슨 뜻인가. 말 그대로 ‘함께 밥 먹는 사람’이란 말이잖나?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 때는 그렇다 쳐도, 일주일에도 두서너번씩 한 밥상에 앉는데, 외가 친척 16명까지 당연히 식구에 포함시켜야 할 것 같아 한 얘기다.

우리 외가 식구들의 우애는 정말이지, 너무나 유별나다. 엄마는 6남매 중 셋째다. 큰 외삼촌과 이모, 엄마가 연년생인데다, 서로 비슷한 사업들을 해서 그런지 남매들이 서로 친구처럼 허물이 없다. 막내 외삼촌네를 제외하면 우리 집을 포함해 5남매가 모두 30분 안팎 거리에 산다. 그 중심에는 “자식들한테 부담이 되기 싫다”며 홀로 사시는 외할머니가 계신다. 어린 시절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외할머니와 이모가 오빠와 나를 돌봐주시기도 했고, 이모나 외삼촌이 바쁠 땐 외사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밥 먹고 자고 가는 일도 흔했다. 어린 시절에는 친척들과 함께 가족여행을 자주 갔다. 그 시절 사진첩을 들춰보면, 정말이지 중소기업 야유회를 방불케 하는 가족사진이 그득하다. 그뿐인가. 하다못해 별거 아닌 음식을 하나 만들어도 서로 나눠 먹어야 한다는 ‘콩알 반쪽’ 정신이 철저한 게 이 집안이다. 누구 한 사람이 “칼국수 생각이 난다”고 운이라도 떼면, 온 집안 식구들이 다 모여 칼국수를 먹을 정도로 결속력이 끝내준다.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신데다 형제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아빠는 처가와 ‘밀착’한 생활에 큰 저항감이 없으신 듯하다.

외가의 이런 화목은 엄마의 오랜 자랑이다. ‘부모님 유산 때문에 형제끼리 원수가 됐다더라’ ‘자식들끼리 서로 부모를 안 모시겠다고 난리더라’ 하는 남의 집 얘기가 나올 때면, 엄마는 늘 “우리 식구처럼 화목한 건 큰 복”이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잊지 않으신다. 물론 가족이 화목한 건 내게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는 너무 가까운 친척들이 조금, 아니 솔직히, 많이 부담스럽다. 가까운 친척이 많다는 건, 부모 외에도 내 인생에 간섭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얘기도 되니 말이다. 엄마가 들으면 경칠 얘기겠지만, 한참 예민하던 시절에는 가끔씩 친척이 없다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사춘기 때부터인 것 같다. 화목한 가족 안에서도 설거지나 뒷정리 같은 귀찮은 일이 아주 자연스레 외숙모들 차지가 되는 사소한 풍경들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럴 리가 있냐고 할 게 분명하지만. 특히 막내 외삼촌 부부가 이혼을 하네 마네 갈등하던 시절, 식구들이 보여준 대처 방식은 ‘가까운 친척이 많다는 게 꽤나 피곤한 일이구나’ 생각하게 했다. 그 무렵, 직장에 다니길 원했던 외숙모와 살림하는 아내를 원했던 외삼촌은 자주 싸웠는데, 친척들은 “이혼만은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부부 문제에 ‘개입’을 했다. 엄마와 이모들은 울먹이는 외숙모에게 “애들을 봐서 참고 살아라” 막무가내 부탁을 했다가 “돈 잘 벌어다 주는 남편 만나 복에 겹다”고 비난도 했다. 그때, 엄마와 이모들은 철저히 외삼촌 편이었고 같은 여자로서 외숙모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봐도 좋다. “잘난 ○○ 엄마 때문에 막내만 고생”이라고 뒷담화들을 했으니까.

다행히 외삼촌 부부는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대신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때 마음의 상처를 입어서 일까? 외숙모는 지금도 웬만해선 외가 쪽엔 발걸음을 하지 않는다. 외삼촌과 사촌 동생들이 명절 때 오갔지만 그마저도 발길이 뜸해진 지 몇 년째다. 올 때마다 “네 엄마가 문제”란 얘길 듣는데, 나라도 오고 싶지 않을 것 같다.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해서 살다 보니, 그때 엄마와 이모들이 나서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솔직히 외삼촌이 가족 화목을 내세워 무리하게 외숙모를 끌고오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라 여겨지기도 한다.

외가 식구들의 ‘사랑 어린 관심’이 나라고 비켜 갔겠는가. 그럴 리가 있나. 사춘기 시절, 동갑내기 외사촌과 성적부터 행실, 하다못해 키나 몸무게까지 은근히 비교를 당하는 게 큰 스트레스였다. “○○는 이번 시험에서 몇 점을 받았다더라”, “○○는 운동을 열심히 해서 날씬하지 않니. 너도 운동 좀 하렴” 등등등. 나를 칭찬하는 말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다 너희들 위해서 하는 얘기”라고 하지만, 정작 어릴 때 단짝처럼 지냈던 외사촌과 나는 지금은 그저 데면데면한 사이로 지낸다.

대학 졸업 뒤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 백수로 지낸 2년간은 정말이지 친척들 모이는 날이 그렇게 싫을 수가 없었다. 용돈이나 격려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눈이 너무 높아서 그렇다” “일단 어디든 취직부터 해라” “부모님 생각도 좀 해야지”란 잔소리만 좀 안 해줘도 살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이런저런 잔소리가 듣기 싫어 외가 식구들이 집에 오면 꾸벅 인사만 하고 방에 처박혀 있었던 때도 많았다. 가족 모임이 있는 날엔 일부러 약속을 잡기도 했고. “○○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누가 한마디라도 하면 엄마는 “너는 왜 이렇게 가족적이지 않냐”고 타박을 했다.

더 힘든 건, 결혼한 뒤였다. 친척들의 관심망이 남편에게까지 넓어졌기 때문이다. “○ 서방은 너무 말이 없어” 탈이고 “밥도 푹푹 떠 먹지 않는다”고 지적하곤 한다. “당신 집은 화목해서 좋겠다”던 남편은 요샌 친정 가자는 말만 나오면 “혼자 다녀오면 안 되겠냐”고 인상을 찌푸린다. 결혼 3년 차, 요새 외갓집 식구들의 관심사는 ‘내가 언제 애를 낳느냐’는 문제다. 식구들 앞에서 “애 없이 살기로 했다”는 말은 아예 꺼내지도 않는다. 무슨 말이 돌아올지 안 봐도 비디오다. 친척들이 정말 나를 위한다는 것,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내 맘이 더 힘들다. 도무지 미워할 수도 없으니까.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빕스에서 4인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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