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가족 / 내겐 너무 버거운 `처월드'
맘 단디 먹고~ 장모의 설교를 버텨라

▶ ‘시월드’의 고충은 나와는 상관없는 얘기인 줄 알았다. 난 남자였으니까. 이게 ‘나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결혼한 뒤에야 알았다. 며느리에게 시월드가 있듯, 사위들에겐 ‘처월드’가 있었다. 그리고 그 처월드엔 거침없는 독설 하이킥을 날리시는 장모님이 계셨다. 당신 딸도 살쪘는데 사위만 보면 살 빼라 하고, 당신 딸이 술 더 먹는데 사위만 보면 술 끊으라고 하고, 당신 딸 씀씀이 헤픈 건 생각 안 하시고 돈 많이 벌라신다. 울 엄마는 이거 보시면 안 되는데.

또 시작이었다. “○○아, 담배 끊었나? 아직도 안 끊었나? 그 몸에 안 좋은 걸 왜 아직도 피우노? 맘 단디 먹고 끊어 뿌러야제. 남자가 그거 하나 못 끊노.” “술도 좀 어지간히 먹어라, 아예 끊든지. 관리 안 허먼 한순간에 개판 된다. 옆자리의 뚱땡이들 봐라~ 운동 안 하면 저리 된다~. 알았나?” “맨날 알았다고만 하지 말고 단디 해라~.” 장모님의 폭풍 잔소리에 대처하는 방법은 ‘그저 웃지요~.’ 술은 장모님 따님이 더 드시는데요. 장모님도 마른 편 아니시잖아요라는 말은 차마 못하고. 쩝.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우연히 동승한 학교 선배와 함께 장모님을 댁에 모셔다 드릴 일이 있었다. 차가 출발하자 뒷자리의 장모님이 슬슬 발동을 거셨다. “고향이 대구라고요? 대구 어딘교?” “근데 ○○이 니는 담배 끊었나? 아직도 안 끊었나? 옆에 계신 양반은 담배 피우시나?” 대마초라도 피우게 생긴 그 인간은 마침 담배를 안 태우는 반전남. “이거 봐라, 선배도 안 피운다는데 니는 왜 못 끊나? 요새 담배 피는 사람은 원시인 소리 듣는다. 니도 좀 끊어라.”

장모님을 댁에 내려 드리자마자 그 반전남이 말했다. “와, 니네 장모님 대단하다. 나 같으면 못 참는다. 넌 어떻게 참고 사냐? 자식까지 낳았으면 어른인데 뭔 잔소리를 그리 하나? 한번 말해서 알았다고 하면 그만해야지. 너무하네.” 그때까지 장모님의 금연·금주·운동 설교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듣던 난 선배의 이 말을 듣고 적잖이 민망했다. 갑자기 ‘무던한’ 내가 가엽게 느껴졌다. 사위는 만년 손님이라는 말은 옛말이라지만, 그래도 내가 너무 편하신 건가. 딸 여섯 두고 늦둥이 아들까지 낳은 우리 엄마도 잔소리 안 하는데 너무하시는 거 아냐라는 생각에 은근 부아가 치밀었다. 하물며 좋은 소리도 한두번이라는데.

“우리 딸 다른 남자 만나러 갔어” 
연애할 때도 직설하시더니 
“끊었나, 안 끊었나, 좀 끊어라” 
결혼 뒤엔 금연·금주·운동! 

내가 너무 편하신 건가 
은근슬쩍 부아가 치밀지만 
장모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나 
“아, 네…” 그냥 웃지요


사실 방송인 김구라를 방불케 하는 장모님의 직설화법은 결혼 전부터 익히 들어온 터였다.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여친은 백수인 남친이 미덥지 못했다. 만나면 다퉜다. 그때 우리는 위기(라고 쓰고 ‘잃어버린 기회’라고 읽는다)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동네에서 술을 마신 적이 있었다. 전화를 받은 여친이 집에 다녀온다며 나갔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지 않았다. 집 앞으로 가서 전화를 했다. 받지 않았다. 여친의 방 전화번호를 눌렀다. 장모가 전화를 받으셨다. 인사를 드렸다. “지금 다른 남자 잠깐 만나러 나갔거든. 아직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수 있는 거 아니냐? 기다리지 말고 집에 가라.”

“아… 네….”

알고 보니 여친은 동네 아줌마의 주선으로 한 남자와 소개팅을 했고, 그날 그 남자가 여친의 동네 앞으로 왔던 것이다. 나 몰래 다른 남자와 소개팅을 하고 말도 없이 가버(리지 그랬니? 왜 돌아온 거니?)린 여친보다, 이런 말을 여친의 엄마에게 듣는다는 게 더 나를 비참하게 했다. 필시 거짓말로 둘러대지 못할 여친을 대신해 전화를 받으셨을 테고, 그런 딸을 위해 악역을 맡으셨으리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지만, 상처가 쓰린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찾아뵈었을 때, 장모님은 지나가는 말로 그날 일에 대해서 사과했다. 난 늘 그렇듯 “아… 네…”라고 답했다. 그날 이후 장모님은 스스럼없이 날 대하셨다. 아무튼 장모님과의 관계가 데면데면해진 것은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였던 것 같다. 허허실실 무룡태 같은 성정의 나였지만, 장모님 앞에서는 나도 모르게 말수가 줄었다. 그렇다고 그 일을 항시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아닌데도, 어느새 과묵한 사위가 되어버렸다.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와 결혼해 재미없었다는 말씀이, 사위마저 무뚝뚝하더라는 푸념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어린 사위’는 멋쩍어서 장모님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하긴 여자로서 장모님의 삶도 그리 다복하진 않았다. 건설회사에 다녔던 남편은 지방과 타국을 전전했고, 꿈결같은 신혼도 없이 딸과 아들을 홀로 키웠다. 남편이 필요할 때 남편은 늘 없었다. 엄마에게 아빠는 돈을 보내주는 사람이었다고, 딸은 나중에 말했다.

그러한 남편이기에 예비 사돈을 만난 상견례 자리에서도 대놓고 면박을 줬던 것일까. 사돈끼리의 첫 만남, 장인어른이 말씀하셨다. “맏딸로 애지중지 키워서 그런지 아직 철이 없습니다. 사돈께서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옆자리의 장모가 혼잣말했다. “흥~ 키워보긴 했나~ 뭐~.” 장인어른이 땀을 흘렸다. 이런저런 얘길 나누다 장인이 퇴직 이후 글을 쓰고 싶다고 하자, 장모는 ‘다 늙어서 무슨 글’이라고 중얼거리셨다.

집에 오는 길, 내 어머니는 걱정을 하셨다. “사부인이 남편 말할 때마다 핀잔 주는 거 봤느냐, 그런 거 보고 자랐으니 걔도 앞으로 그러는 거 아니냐.” 어머니의 선견지명(그때 세게 좀 말리지 그러셨어요?)을 몰라본 어린 아들은 군걱정이라고 일축하며, 남편에게 서운한 것이 많을 수밖에 없는 장모님의 사정을 대충 말씀드렸다.

기실 같이 사는 아내와도 다르지만, 장모님과 나는 참 많이 다른 거 같다. 대구에서 자라 1970년대에 대학을 나온 장모님은 전형적인 ‘강남스타일’이다. 노무현을 지지하진 않지만, 참여정부 때 아파트값이 배로 뛰는 덕을 본 장모님이 노무현 욕만 할 때, 난 어리둥절했다. 사위는 <한겨레>에 다니지만 새누리당과 박근혜를 지지하시는 장모님은 줄곧 <조선일보>를 보신다. 별로 괘념치 않으시는 눈치다. 다만, 대기업과 비교해 밥벌이가 변변찮은 사위가 걱정스러울 뿐이다. 따님의 씀씀이가 헤픈 것도 걱정 좀 해주시지.

결국 쓰다 보니 소심한 주변머리 사위의 ‘장모님 공개 뒷담화’가 되고 말았다. 장모님이 <조선일보>를 보는 것이 외려 다행인 것만 같다. 상황이 이러하니 ‘처월드’에 가는 마음이 불편하다. ‘시월드’에 가기 싫은 며느리 마음이 이럴까? 이제 장모님에게 가는 길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그나저나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데, 지지리 복도 없지. 마누라가 예쁘면 처가 말뚝에 절만 하겠냐? 담배와 술도 끊겠지. 결국 문제는 아내와 나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렇다. 누구 탓할 것도 없다.

다른 도리가 있을까. 장모가 잔소리와 <조선일보>를 끊고 살뜰한 전향을 할 수 있을까? 내가 갑자기 장모님에게 애교를 부리며 귀여운 사위로 거듭날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지만, 결판을 내야겠다. “장모님, 저 담배 끊을 테니, 그 대신 <조선일보> 끊고 <한겨레> 봐 주세요. 싫으시면 잔소리 좀~.” 
익명의 <한겨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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