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가족] 모녀의 결혼전쟁

▶ 엄마의 이 모든 걱정과 우려는 나를 그 누구보다도 사랑하기 때문에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안다. 자주 눈물을 흘리시는 엄마를 보는 일도 마음이 아프다. 엄마에게는 하나뿐인 딸내미가 시집가는 게 아주 섭섭하고 속상하고 허전한 일인가 보다. 나중에 딸을 낳고 나서야 나도 그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것 같다.

나는 ‘예신’이다. 예신이라는 단어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6개월 전까지는 몰랐다. 인터넷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데, ‘예비신부’의 줄임말이란다. 참고로 예비신랑은 ‘예랑’이다. 그러니까 나는 곧 결혼하는 예신이다.

결혼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싸우는 관계는 첫째가 예비부부이고 둘째가 어머니와 딸이란다. 어디서 나온 공식 통계는 아니고 결혼한 친구 몇몇에게서 주워들은 얘기다. 그런데 나는 예비남편인 ‘예랑이’보다 엄마와 더 많이 싸운다. 남몰래 결혼을 준비하며 쌓인 나의 온갖 짜증은 날카롭게 엄마를 향하고, 들뜨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한 엄마의 감정들은 한데 모아져서 딸을 향해 분출될 수밖에 없다.

나는 1980년대생, 엄마는 1950년대생이다. 세대 차이는 결혼 준비에서도 나타난다. 엄마는 엄마가 결혼하시던 1980년대를 기준으로 삼고 그때를 떠올린다. 대식구의 맏며느리로 시집오신 엄마는 예단도 최고급, 혼수도 최고급으로 해 오셨다. 양단 이불보에 싸인 두꺼운 목화솜 이불에다 번쩍번쩍한 열두자짜리 자개장롱은 기본이었다. 큰아들 결혼이

다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의 기대치도 컸을 것이고, 며느리를 보는 눈도 예사롭지 않으셨을 터다. 엄마는 “나는 그렇게 해 오고도 평생 시집살이하며 살았다”고 아직도 분통을 터뜨리신다. 그러니 나는 엄마 때보다 더 훌륭하고 비까번쩍하게 예단과 혼수를 해 가야 한다는 얘기다.

시대는 바뀌었다. 허례허식은 모두 생략하고 실리만 챙기는 예비부부가 많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의 결혼식이 하나의 축제가 될 수 있도록 주례 없는 결혼식으로, 파티 형식으로 하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말도 꺼내지 않았다. 함이니 이바지니 하는 각종 의식들을 생략하기로 했지만, 그럼에도 부딪치는 것은 역시 예단과 혼수였다.

우리 시댁은 내가 이것저것 많이 사다가 품에 안겨주길 바라시는 분들이 아니다. 예비 며느리인 내게 누누이 “예단은 최소한만 해라, 네가 오는 것만으로도 정말 고맙다”, “혼수는 처음부터 비싼 것 할 필요 없다, 살면서 늘려가는 재미도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새댁들이 모인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말을 올리면 분명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된다’고들 펄펄 뛰겠지만, 우리 시어머님 시아버님에게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내가 이렇게 말씀을 전해드리는데도 엄마 마음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엄마가 30년 넘게 겪은 시집살이가 혹여 딸에게 대물림될까 노심초사이신 게다.

엄마는 자신이 결혼했던 
1980년대를 기준으로 
예단·혼수 최고급 주장 
나는 허례허식은 버리자고… 

밥솥·식탁·그릇 살 때마다 
사사건건 부딪치는 엄마와 나 
칼로 물 베기는 부부싸움 아닌 
모녀간의 싸움일지 모른다

살림살이를 장만할 때 엄마는 무조건 대식구 기준이다. 우리 부부가 가장 먼저 구입한 건 밥솥이다. 집안에 살림을 들일 때는 밥솥이 제일 먼저 들어와야 잘 산다며 엄마가 밥솥을 제일 먼저 구입하자고 하셨기 때문이다. 여기서 문제는 몇인용 밥솥이냐는 것. 우리 부부는 6인용 밥솥으로 구입하면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친다고 했지만 엄마는 계속 10인용 밥솥을 권하셨다. ‘집들이할 때 6인용으로 어떻게 할 거냐, 손님 오면 또 어떻게 할 거냐’는 걱정이 이어졌다. 나는 ‘엄마나 친구한테 밥솥 한번 빌리면 된다’, ‘정 안 되면 즉석밥 사서 하면 된다’, ‘우리가 집들이를 몇 번이나 하겠느냐’고 엄마의 마음을 돌렸다. 6인용 밥솥으로 결제하고 난 뒤에도 엄마는 10인용 밥솥 코너를 계속 서성이셨다.

이렇게 시작된 ‘대가족 타령’은 다른 주방용품을 살 때도 이어졌다. 4인용 식탁을 고르는 우리 부부에게 엄마는 6인용 식탁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셨다. 요즘 2인용 식탁을 사는 신혼부부도 많은 판인데 말이다. 결국 놓을 자리도 없다는 핑계로 4인용으로 ‘합의’를 볼 수 있었다. 그릇세트도 난감하긴 마찬가지. 엄마는 고가의 수입브랜드 그릇 한 세트와 가볍고 튼튼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그릇 한 세트를 장만할 것을 권했다. 모두 합치면 8인용이다. 물론 엄마 마음은 이것저것 다 해주고 싶으셨던 것일 게다. 인터넷에 도움을 요청했다. 결혼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많이 들어가는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검색해 보니 그릇을 한번에 너무 많이 사면 나중에 놓을 자리가 없단다. 그렇다고 나중에 팔기도 그렇고 누구에게 그냥 주기도 민망하니 필요할 때 조금씩 사라고 한다. 신혼살림을 풍족하게 시작해봤자 나중에는 짐만 되고, 취향은 계절에 한번씩 너무나 쉽게 바뀐다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 제안의 중간 정도에 있는, 예쁘면서 튼튼하고 경제적인 그릇 한 세트만 장만했다. 이것도 6인용 세트 사라고 하시는 것을 겨우 말려 4인용으로 준비했다.

우리 모녀의 ‘결혼 전쟁’을 항상 중재하는 이가 있으니 바로 예랑이다. 예랑이는 나에게 이따금씩 ‘나중에 후회할 일 하지 말고 어머니께 잘해드리라’고 잔소리를 한다. 그 잔소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런데도 엄마는 누가 봐도 결혼 적령기인 나에게 ‘결혼을 너무 빨리 하는 것 같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하지 그러느냐’며 우리의 결혼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신다. 아니, 사실 의문이 아니라 그렇지 않다고 엄마를 안심시키는 답변을 듣고 싶어서 물으신다는 걸 나는 안다. 실은 우리 엄마도 사위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 하시고, 결혼 준비 과정 자체를 들뜨고 설레어 한다는 걸 나는 안다.

엄마의 그 마음과 사랑을 알지만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딸의 심정도 이해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30년을 함께 살던 가족들과 떨어져 이제 새로운 보금자리로 옮겨야 하는데 나는 얼마나 마음이 헛헛하겠는가. 이 모든 짜증을 내도 이해하고 받아줄 수 있는 분은 오직 엄마이기에, 아빠도 예비신랑도 친한 친구도 아닌 오직 엄마이기에. 부부싸움은 이제 칼로 물 베기가 아닌 시대가 왔지만, 여전히 모녀간의 싸움은 칼로 물 베기다.

엄마, 그동안 정성스럽게 딸내미 결혼 준비 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어요. 결혼하면 행복하게 잘 살게요. 친구들이 그러는데, 결혼한 뒤에 엄마랑 더 살가워지고 더 자주 연락한대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이번 겨울에 맛있는 김장김치 담가주실 거죠? ^^

(보태기. 훈훈하게 끝맺는다고 식상하다 욕하지 마시라. 울 엄마도 <한겨레> 독자다. 아무리 익명이래도 읽으면 딱 아실 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겨울의 예비신부


(*한겨레신문 2013년 11월 9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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