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에게 

 

엄마.

결혼후에 가시돋힌 말로 잔뜩 채운 편지를 보내고, 이번이 두번째 편지네.

첫 편지에도 '엄마때문에 내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그걸 이겨내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에 대해서만

쭉 늘어놓았던 부끄러운 기억때문에..

 

다시 엄마에게 편지를 쓴다는게 한참이나 망설여졌어.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을 하고서도

'엄마'는  내게는 그저 엄마일뿐

엄마의 속상함, 서운한 마음은 보이지도 않고, 또 듣고 싶지도 않았던 것 같아.

그저 엄마가... 내 마음만 알아주길 바랬던듯 싶어.

 

어렸을때 툭 하면 아파서 누워있는 엄마가

아빠 흉, 시댁식구들 흉을 어린 내게 쏟아내는 엄마가

쉽게 울고, 봄꽃에 까르르 웃음을 터트리는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의 수다가 북적거리는 우리집이

난 참 싫었었어.

 

'난 엄마처럼은 살지 말아야지'라고 마음 먹으면서

어쩌면 난 더 냉정하게, 마음은 차갑게 머리만 똑똑한 사람으로 나를 더 몰아세웠는지도 몰라.

 

하지만, 아이를 낳고

아이가 열로 펄펄 끓어오를때 어쩔줄 몰라하면서 긴긴 밤을 세워가면서

온몸이 쑤시고 아파도, 아이를 안고 출퇴근하는 직장맘이 되면서

 

나도 엄마처럼 툭 하면 아프고,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봇물처럼 올라오고

툭하면 울고, 툭하면 웃는 '엄마'가 되었어.

 

그제서야...  나 어렸을때 그많은 공장식구들 밥 해먹였을 엄마가 기억나더라.

체구도 작고, 손도 여리여리한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됐을까

일년에 열두번도 넘게 치러냈던 제사상도

어렸을땐 그저 맛있는 것 먹으니 좋아보이기만 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고나니, 이제서야 엄마가 그 많은 음식 혼자 다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 많은 음식들이며, 뭐든지 삼촌, 고모에게 퍼주는 아빠가 얼마나 미웠을까

아빠한테 서운함 마음 혼자 꾹꾹  참느라

마음 여린 엄마가 얼마나 혼자서 부엌구석에서 울었을까

 

이제서야 엄마가 보여요.

체구도 작고, 보드라운 살결을 가진 봄꽃같은 엄마가...

흥도 많아 툭하면 노래를 흥얼거리고

컴컴한 밤에는 무서워서 공원에 운동 못간다는 겁많은 엄마가

할머니가 된 지금도 소녀처럼 까르르 웃는 엄마가

 

그 여리여리한 봄꽃같은 엄마가

이제 보여요.

 

엄마를 그렇게 닮기 싫어하더니

이제는 엄마를 똑 닮아

나도 툭하면 울고, 웃고...

또 힘들어도 봄꽃같이 새롭게 피어나요.

 

고마워요. 엄마

엄마를 닮게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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