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76세가 되시는 친정어머니.
서울에서 오빠네집 근처에서 혼자 살고 계신다.
엄마는 마흔 즈음부터 혼자 세 자식들을 키우셨다.
어찌하다보니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게 되고
시장에서 '리어카', 손수레에 배추를 놓고 파셨다.
내 기억에
일주일에 몇 번 정도는 손수레에 배추를 가득 싣고 직접 끌어
골목골목을 다니면서 배추를 파셨던 것 같다.
단칸방에 세 아이들이 촘촘히 누워 자고 있으면,
그때 엄마는 밤에 잠을 못주무셨다고 한다.
"세 새끼들이 고등학교까지는 마쳐야할텐데"
라는 고민때문이셨단다.
당시 오빠는 중학교 중퇴,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 동생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고민하다가 밤새 잠을 설치고 시장에 나가
손수레 위에 걸터 앉아 있다보면,
꾸벅꾸벅 졸기 일쑤였단다.
같이 옆에서 장사하던 한 아주머니가 장난삼아
"밤에는 뭐하고 낮에 졸고 있어. 밤에 서방이라도 만났어?"
라고 말할라치면,
"딱 사흘만 살고 하늘 갈 부자 있나 알아보고 다녔지."
라고 말해, 한바탕 웃음이 터지곤 했단다.
당시 엄마는 종교와 인연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고민'은 일종의 '기도'가 되었다.
아니 '기도'였던 것 같다.
40여년 가까이 흐른 지금
세 자식 모두 가정을 일구며 살고 있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인 1980년대 중반을 회상하시면서
"옆집 사람이 딸도 공부시키려고 한다면서 놀리더라니까(비아냥거리더라니까)"
그 놀림(비아냥)에
"아냐, 내가 살아보니까, 딸도 공부해야 되겠더라구."
그게 엄마의 소신이었다.
가진 것 없고 기댈 것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저 자신의 소신과 바람만에 기대어
기도에 가까운 고민을 하시면서
쉽지 않았을 시절을 보내신 것이다.
마흔 중반을 넘어서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나.
지금 내 나이때에 엄마를 떠올리면서
'자식을 향한 간절함이 내게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엄마를 밤새 잠못 이루도록 했던
오롯한 '간절함' 말이다.
엄마는 지금은 카톨릭신자로 매일 성당에 가시고
집에서도 묵주기도 등 여러 기도를 하신다.
오빠, 동생, 사위, 며느리, 딸을 생각하시면서.
기도하시는 엄마를 보면서
먼 과거에 오빠가
"기도한다고 밥이 나와요, 쌀이 나와요."
라고 말했던 때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오빠가
"엄마 기도 덕에 우리가 이렇게 (그럭저럭 잘) 되었구만."
라고 말한다.
시간이 흘러야 그 의미를 깨우친다.
엄마와 내가 태어난 날이 같다.
이번 달에 엄마의 생신이 있다.
서울에 가야지.
엄마의
오롯한 간절함과 기도를 배우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