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생생육아를 통해 다엘이 청소년기로 들어가는 시간을 글로 쓸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제 생각이 성큼 자란 다엘의 이야기를 시시콜콜 공개하는 것이 어려워 가끔 자유게시판에 소식을 전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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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0일, 다엘의 대안학교 졸업을 기념하여 베트남 여행을 다녀왔다. 졸업 후 혁신초 6학년에 편입하기로 결정한 다엘을 격려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많이 쉬고 아름다운 자연 속에 안겨있다 돌아오는 것이 목표였는데 결과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비록 여행 과정에 따라오기 마련인 고단함은 있었으나 오가며 만난 베트남사람들의 모습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품격과 자부심. 이런 인상은 베트남 역사와도 무관하지 않다.
오래 전 교사 시절, 시험이 끝난 주간에 분위기 전환을 위해 학생들에게 종종 들려줬던 이야기 중 하나는 베트남 역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가슴을 울렸던 책 '사이공의 흰 옷'을 소개하고 전설적인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어떻게 막강한 외세와 싸워 이겼는지, 떠오르는 장면들을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침을 튀기면서 얘기했던 적이 있다. 이런 기억과 호감을 갖고 방문한 베트남의 인상은 내게 감동으로 남았다.
호치민에 도착하여 1박을 하고 다음날 해변 지역 무이네로 이동했다. 우리가 묵은 숙소는 중심지에서 좀 떨어진 리조트였는데 가성비로 따지면 2백 퍼센트 만족이었다. 건물 주변을 쭉 둘러 연못이 조성돼 있었고 곳곳에 나무와 꽃이 마치 그림 같았다. 숙소 창으로 내다보이는 정원은 내 인생 마지막 풍경도 이랬으면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 다엘과 함께 리조트 정원에서 찍은 인생샷.
다엘은 다음날부터 수영장에 들어가 나올 줄을 몰랐다. 처음엔 구명조끼와 킥판을 사용해서 물장구를 치다가 스노클링 셋트로 호흡에 자신감이 생기자 맨몸으로 제법 수영을 하며 수영장을 가로지르곤 했다. 정식으로 수영을 배운 적이 없음에도 물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스스로 깨우친 것이다.
수영장 앞의 바다는 파도가 세어서 놀기에 적당치 않다고 했는데 다엘은 바닷가에 나가서 잠시 서있더니 조금씩 파도에 몸을 싣기 시작했다. 나중엔 높은 파도 쪽으로 움직여 파도타기를 즐기는 경지에 이르렀고 나는 조금 감상에 젖었다. 그렇게 겁 많고 눈물 많은 내 아들이, 파도를 타고, 넘고, 즐기는 순간이 오는구나. 인생의 파도에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때가 오겠지. 지금 너를 보고 있는 나는 너무나 행복하구나. 행복의 정점에서 찰나의 순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쁨과 슬픔, 죽음이 시리즈로 순식간에 내 감정을 사로잡았다.
» 베트남 무이네 바다에서 파도 앞에 선 다엘
다음날도 수영장에서 신나게 놀던 다엘이 어느 순간 깊은 곳에서 갑자기 발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수영장 밖에 있던 내가 '좀 이상한데?' 하고 쳐다보는 순간 다엘이 내 쪽을 향해 절박하게 외쳤다. "킥판!" 허겁지겁 킥판을 던져주자 동시에 다엘의 뒤쪽에서 누군가 풍덩 뛰어들어 아래에서부터 밀어올려 건져주는 게 아닌가. 순식간에 물 밖으로 나온 아이를 살피는 찰나, 생명의 은인인 아저씨는 고맙다고 외치는 우리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안 주고는 'You're welcome!' 한마디를 남기고 표표히 사라졌다.
리조트 직원인 그가 야외부페 식탁을 차리던 도중 물에 빠진 다엘을 보자 1초도 지체 않고 뛰어들어 구한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젖은 옷 그대로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놀란 가슴을 진정도 하기 전, 다엘도 언제 빠졌었냐는 듯이 다시 물에 뛰어들어 수영장 문 닫는 시간인 5시까지 놀다가 나왔다. 어른들만 놀랐지 정작 본인은 고생 않고 바로 구조된 덕택에 빠졌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나 보다.
다음날 체크아웃 할 때 다엘을 구해준 직원을 만나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받아 적은 그의 이름은 Pham Do(^)ng Giang. 자신이 구해낸 생명체를 보면서 싱긋 웃고 지나가던 베트남 아재의 품격을 잊지 못할 것이다.
» 다엘을 구해줬던 멋찌구리한 Giang씨
호치민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는 지인을 만나 환대를 받으며 베트남 역사와 사람들에 대해 간략히 들었던 것도 잊을 수 없다. 베트남 어린이들이 부르는 동요 가사에 그들의 오랜 전쟁과 희생, 인내, 용기가 그대로 들어있다고 했다. 중국과 천 년, 프랑스와 백 년, 미국과 십년을 싸웠던 그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부르며 자라는 아이들. 우리나라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며 자라고 있나? 중국 일본 거란 여진 몽골 등과 싸우며 자신을 지켜온 선조의 이야기나 일제 강점기에 굴하지 않았던 민초들의 생생한 이야기는 숨은 역사가 돼버렸다. 학교에서는 연대 암기와 이름, 사건 나열 등 시험용으로만 공부하지 않았나? 최근 다엘과 함께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읽으면서 비로소 역사 속에 살아 숨 쉬는 인물과 사건을 만날 수 있었다.
경제대국이란 이유로 한국이 베트남 민중을 은근히 폄하하는 현실을 돌아본다. 베트남 역사의 장대함과 그들의 문명이 일궈온 자부심을 만난다면 진정으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이 적지 않으리라.
뱀 발> 베트남 여행 중 우리가 숙소나 버스에서 잃어버렸던 폰 충전줄, 선글라스, 파라솔 등은 무리 없이 곱게 되찾을 수 있었다. 반면 인천공항에서 집까지 타고 온 택시에서 다엘이 잃어버렸던 폴더폰은 택시기사와 흥정 끝에 과한 사례금을 주고 가까스로 찾았다. 씁쓸했다.
지금 나는 이미 베트남 앓이에 들어가고 있나 보다.
» 무이네에서 맨발로 올라선 외나무다리. 미끄러졌으면 아래에서 노닐던 물고기들과 함께 폐사?
뱀 발2> 호치민에서 무이네를 오가는 슬리핑버스를 5시간씩 타는 동안 버스기사는 끊임없이 경적을 울려댔다. 슬리핑 버스가 아니라 wake-up 버스라고 다엘과 얘기하며 웃는데 한 백인 여자가 기사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시끄럽다고, 그만 좀 울리라고. 기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여자는 휴게소에서 내려 다시 타지 않았다. 여기서 잠깐. 버스기사의 끊임없는 경적 울림은 우리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그들에겐 일종의 의사소통수단인지 모른다. 베트남의 복잡한 교통 상황, 언제 끼어들지 모르는 다른 차량이나 오토바이에게 '나 여기 지나간다! 조심해!' 라고 말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외지인에게 불쾌하게 느껴지는 행동이 현지인에게는 오랜 생활수단이라면 이방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그 백인여자는 무사히 행선지를 찾아갔을까? 생각이 많아졌다.
뱀 발3> 여행 전 검색을 통해 얻은 정보가 요긴할 수도 있지만 기계적으로 받아들이면 안 될 것 같다. 호치민의 택시 사기가 많다기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무이네에 와서도 택시기사에 대해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어느 기사는 처음에 즐겁게 말을 걸었다가 우리가 내릴 때 밑장빼기(베트남 화폐단위가 높아 승객의 손에 든 지폐 중 큰 단위를 기사가 슬쩍하는 행위)를 당할까 봐 극도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자 마음 상한 기색이 역력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만 지나쳐서 사람과 풍경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일이 없기를.
뱀 머리> 베트남에서 20여 년 살며 굳건히 뿌리 내린 선배 부부의 아름다운 모습을 맘에 새겼다. 어려운 상황에도 자녀들을 훌륭히 키워낸 그들의 노고에 찬탄을, 세심히 배려해준 환대에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