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의 달 6월. 아홉 살짜리 그리기 주제로 ‘우리나라를 타나내는 것’이 교과서에 실려 있다.
꽃신, 가마, 석탑, 태극기, 무궁화, 소고, 장구, 연... 아이들은 저마다 그린 그림 한데 모았다.
우리 반은 아이들이 차례를 정해 돌아가면서 교실 뒤의 작품게시판을 꾸미는데
이번에 차례가 된 한 여자 아이에게 마음대로 붙여 보라고 했더니
불과 몇 분 만에 스테이플을 들고 꽝꽝 찍어 붙인 그림이 저 모양이다.
보통 아이들에게 그림 전시를 해 보라고 맡기면
대부분은 줄을 맞춰 병사가 도열한 모습대로 붙인다.
난 아이들이 그런 모양을 좋아해서 그렇게 붙이지 않는 다는 것을 안다.
아이들은, 교사가 그런 모양을 좋아할거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붙이는 것이다.
급식 먹을 때도 줄을 서라고 하고 집에 갈 때에도 줄 서고 심지어 화장실 갈 때에도 줄을 세우는 교사들.
그런 교사들에게 아이들은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검열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것 보세요. 선생님은 우리에게 창의적으로 자라라고 하면서도 맨날 그렇게
줄을 세우시잖아요. 이렇게 따지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 나는,
작품을 게시할 때 줄을 맞추지 말고 자신이 게시하고 싶은 대로 해 보라고 부추겼는데
저 녀석이 게시한 모양은 도대체가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그 녀석도 참... 뭐가 그리 급했을까.
저렇게 할 거면 그냥 가로든, 세로든 줄을 맞춰 붙이라고 할 걸 그랬나?
저렇게 해 놓고 작품 전시라고 하면 질서와 조화를 강조하는 관료들의 비판을 면할 수 없으리라.
철학도 없고 사명감도 없고 어영부영 복지부동으로 적당히 월급 받아먹고 살려는 철밥통 선생들이 많은데
앞으로 그런 교사들은 모두 퇴출당할 테니 두고 보라는 협박이 연일 난무하고 있다.
옆 반 보다 잘 가르쳐야하고 작품전시도 멋지게해야 근근이 살아남을 텐데.
기어이 아홉 살 너희들때문에 담임인 내가 이런 걱정을 하게 생겼으니
하긴 느덜 나이가 이제 겨우... 내 어찌 혀를 차리.
그래, 저런 모양으로 붙인 이유라도 있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주저없이 거북선 모양을 만들고 싶어서 그랬단다.
자기는 우리나라 하면 거북선이 생각나는데 아무도 거북선을 그린 사람이 없어서 전시라도 그 모양대로 해 봤단다.
아, 그랬구나. 네가 의자를 이리저리 옮기며 온 몸으로 거북선에 애국심을 담아가는 동안
이 어리 석은 담임은 고작 내 밥그릇 걱정이나 했구나. 부끄러워라.
아이에게 은근히 미안해서 '그래, 이순신 장군님은 어디에 타셨니?' 물으니
당당하게도 맨 위에 칼 들고 계신단다. 아, 든든한 충신과 충직한 후손이로고.
아이들에게 주입하지 말고 창의력을 기르라는 압박이 심하다.
교실도 첨단이고 학부모도 열정이 높으니
이제 케케묵은 교사만 바뀌면 다 되지 않겠느냐는 사람들의 매서운 의견에 대해
그동안은 나도 꽤 인상을 찌푸렸던 것이 사실이나
글쎄, 오늘 이 모양인 날 보니 이제 더 이상 기분 나빠하지도 못하겠구나.
그러나 교사를 바꾸는 건 쉽겠지만 저걸 거북선으로 알아보지 못하는 평가자가 있는 한
아무리 새로운 교사를 채워 넣는다 해도 교사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며 먹고 살기가 갈수록 힘든 세상,
저걸 그냥 둬야 하나, 줄 맞춰 다시 붙여야 하나 고민이다.
위대한 충무공이시여, 충고 좀 해 주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