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장에는 고양이가 산다. 살도록 딱히 편리를 봐준 적이 없으니 이른바 길고양이인데 길이 막힌 골짜기를 '나와바리' 삼았으므로 산고양이라고 불러야 적당하겠다. 굳이 조상을 따지자면 7년쯤 전 천장 위에 새끼를 낳아 밤마다 고양이 오줌이 새기는 묘(猫)한 추상화에 중독되게 만들던 나비. 그 나비의 후예들이 아닐까 싶지만 집 나간 며느리 소식을 뒤늦게 알아 뭣하랴. 야생에는 야생의 룰이 있겠거니 하며 출퇴근시간이 다른 아파트 이웃처럼 서로 소 닭 보듯 지내던 차에.
쥐란 놈이 자꾸 비누를 물고 가는 거였다. 발로 툭 차면 무너질듯한 농막에 쥐 한두마리야 당연지사인데 어이 서생원 나리, 비누 한 장 사려면 6km를 나가야한단 말이오. 그 수고를 감내하느니 묘선생의 아우라를 빌리는게 낫지 싶어 자주 마당 한켠에 먹다 남은 생선이며 멸치 대가리 따위를 두었는데.
처음에는 사람없는 밤에만 먹는 눈치더니 요즘에는 내가 빤히 보고 있어도 마당을 가로질러 아예 코를 박고 먹는다. 먹은 뒤 묘한 아우라를 집 주변에 뿌려주시어 쥐란 놈이 얼씬 못하도록만 해주시면 꽁치가 아까울까만 먹기는 집고양이처럼 먹으면서 개구리 잡느라 논 주변만 어슬렁어슬렁. 야생고양이에게 밥값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그런데 야생에도 나름의 상도의가 있는 줄은 내 미처 몰랐더라. 떼먹었던 돼지국밥값을 갚으려 출세 후에 일부러 찾아가던 변호인같은 고양이가 있을 줄이야. 출세를 했는지는 모르겠으되 잡기는 커녕 구경도 힘든 두더지를 잡아 밥그릇 옆에 보란듯이 두었으니 그깟 돼지국밥값에 비할까. 뒷사람들은 이를 일러 '고양이의 보은'이라 할 테지.
- 농부 통신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