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 상담 ‘색안경’ 끼지 마세요

자유글 조회수 7901 추천수 0 2010.07.16 11:14:11
1학기가 거의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우리반 학부모 전체 상담을 했다.
학부모 상담은 아이를 좀 더 잘 알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지만
교사와 학부모가 직접 만나는 일이 비리와 청탁의 온상이 된다는 이유로 자제되고 있다.
교사 입장에서도 괜히 학부모에게 아이를 두고 이런저런 불편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그렇고
학부모 입장에서도 평소 바쁜데 학교에 오가다 보면 생업에도 지장 있고
이웃들에게 치맛바람 오해 살 일 없고, 또 모른척 지내도 아이 스스로 학교에 잘 다닌다면
굳이 상담을 해야하느냐는 생각도 있어 보인다.

또 학부모- 교사라는 관계가 아이를 매게로 형성된 관계라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불편한 관계인 셈이니 그냥 부모는 아이를 학교에 잘 보내고
교사는 학교에서 잘 가르치면 되지, 어색하게 굳이 만날 필요가 있느냐는 감정적 편의에 의해
저절로 자제되기도 하는 것이다. 결국 난 상담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우리 반 전체 27명의 아이 중 18명은 맞벌이 가정이다.
아이들은 혼자 집에 문 열고 들어가는 것에 매우 익숙해 있다.
부모들은 맞벌이를 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해 생각만큼 신경을 많이 쓰지 못하는 것을
죄스러워한다. 아이들은 또 아이들대로 엄마가 집에서 하교길을 맞아주는 것을 꿈꾼다.

맞벌이를 해 본 부모들은 안다. 아이가 집에 잘 갔는지, 학교에서 무슨 일은 없는지,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아이에 대한 짐과 부담을 지니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이럴 때 교사가 자신 있는 목소리 'ㅇㅇ이는 아주 똑똑하고 잘 지내고 있으니 염려마시라'는
말 한마디만 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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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반 상담 시간표. 상담 약속 시간을 정하고나서 바꾸고, 또 바꾼 부모님들.
저 긴박한 시간표에서 열심히 아이들을 기르는 부모들의 안간힘이 느껴진다.
부모들은 상담시간을 내기 위해, 직장에서 일을 더 해야만 했을 것이다.
내가 저 부모님들과 상담을 대충하면 안되는 이유가 저 안에 있다.>


방과후 시각을 30분 단위로 쪼개고 날짜별 표로 만들어 가정에 안내장을 보냈다.
부모님들은 편한 시각을 골라 답신을 보내왔다.
근무 시간이 도저히 안되는 학부모님은 퇴근 후 시간을 잡기도 하고
그것도 여의치 않은 경우는 편한 시간을 정해 전화를 걸기로 했다.

교실엔 아이들 책상을 두 개 맞대어 놓고 간단한 음료를 준비했다.
난 그동안 평가 했던 자료들과 아이가 한 글쓰기, 그림 등을 미리 챙겨 놓았다.
상담에 주어진 시간이 30분임을 알리고 궁금한 것은 미리 메모 해 오십사 안내를 했다.
나 역시 인사치레 같은 말은 되도록 줄이고 바로 아이들 이야기로 하려고 애썼다.

부모님들은 나와 이야기 하는 것을 처음엔 어색하게,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속속 알려주었다. 상담을 하면서 나는 우리반에서 장난이 심한 아이가
왜 그런지, 발표만 하려고 하면 목소리가 작아지는 아이가 왜 그런지를 알 수 있었다.
부모님들 또한 자기 아이가 학교에서 기대 이상으로 잘 지내고 열심히 공부하고 있음을 보고
고마워하는 표정들이었다. 이렇게 필요한 상담을 왜 더 일찍 못했을까 싶었다.

많은 부모님들은 교사라 상담하러 오라는데 가지 못하는 것을 죄스러워 하지만
아이 기르는 부모가 상담하러 못갈 정도로 살기가 바쁜 마음을 난 충분히 이해하겠더라.
나 역시 맞벌이 부모이기 때문이다.

오늘, 소강이던 장맛비가 다시 전국을 휩쓴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저 비를 맞으며 기꺼이 열심히 일하는 부모들께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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