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7454601_20140626.JPG »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과 속초 ‘발코니집’의 전경.

[매거진 esc] 살고 싶은 집
방마다 실내로 파고드는 사다리꼴 발코니 만들어 식구들간의 유대감 키워준 장봉주씨네 네식구의 속초 주택

네모반듯한 건물에 사다리꼴 발코니가 박혀 있다. 넓은 창을 통해 집 안에는 햇빛이 한가득 들어왔다. 안으로 각을 세워 들어찬 발코니는 공간을 분리하고 동시에 잇는다. 열살 동생은 자기 방 안에서 발코니 너머 언니에게 손짓을 했다. 거실 발코니 밖 나무테라스에서는 허브 새싹들이 한들한들 움직였다. 이 집의 이름은 ‘발코니집’(Voidwall). 발코니의 재발견이다.

순두부로 유명한 강원도 속초시 노학동. 도농복합지역인 이곳은 아파트 지대를 지나 주택밀집지역으로 들어가면 제법 농촌 분위기가 풍긴다. 비슷하게 생긴 양옥집이 모여 있는 마을에서 최근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끈 집이 있다. “이 집은 언제 공사 끝나나?” 집이 완성되어 갈수록 특이한 그 모습에 동네 사람들은 집 주변을 서성이며 집주인인 장봉주(48)·백지연(44)씨 부부에게 묻곤 했다고 한다.

1층에 있는 제 방 발코니로 
2층 언니 방 발코니가 보여요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발코니를 통해 서로 손흔들고 자요

“결혼해서 18년 동안 아파트에만 살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우리 집을 지어보자’ 마음먹었어요. 올해 열일곱이 된, 그러니까 사춘기가 한창인 큰딸을 위해서라도 좀더 편안한 느낌을 주는 집을 만들고 싶었죠.” 집주인 백지연씨는 이렇게 말하다가 큰딸과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4일 오후 속초로 찾아간 기자를 백씨와 두 딸이 함께 맞이했다.

“이 집에 이사오니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 밤이면 홀로 발코니에 나가 맞는 선선한 바람….” 엄마 마음을 아는 큰딸 은지(17)양의 말이다. 막내 보윤(10)양도 말을 보탰다. “저도 좋아요. 1층에 있는 제 방 발코니를 통해서 2층에 있는 언니 방 발코니가 보이거든요. 밤에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 발코니를 통해 서로 손을 흔들고 자요.” 7살 터울의 두 딸은 이렇게 추억을 쌓고 있었다.

00507455001_20140626.JPG » 거실 발코니에 모여 앉은 집주인 백지연씨와 두 딸. 네 식구는 이곳에서 상을 펴고 식사를 한다.

이 단독주택은 285㎡짜리 대지에 지어진 1, 2층 합쳐 연면적이 136㎡(41평)에 불과한 네모반듯한 건물이다. 2층은 오직 큰딸만을 위한 공간으로 4평짜리 방과 발코니로만 구성된다. 건물의 사면에 현관, 거실, 안방, 서재를 따라 사다리꼴 발코니가 푹푹 박혀 있는 구조다. 사다리꼴의 네 면 중 세 면이 창문, 다른 한 면은 바닥과 색깔이 통일된 벽이다. 나무, 타일 등 각기 개성있게 연출된 발코니만으로 갤러리 분위기가 난다.

발코니(balcony)는 거실 공간을 연장하는 개념의 외부로 돌출된 부분을 뜻한다. 지붕은 없고 난간이 있는 형태이나 대개 아파트에서는 새시 시공을 통해 발코니 공간을 실내로 흡수한다. 테라스(terrace)는 정원의 일부를 높게 쌓아올려 거실이나 식당에서 정원으로 직접 나가게 하는 공간을 뜻한다. 이 집에서는 거실 발코니를 통해 나무판으로 된 널따란 테라스로 나갈 수 있다.

이 집은 정의엽(38) 건축가의 작품이다. 그는 2010년 경기도 양평에 지은 단독주택으로 ‘한국건축가협회 올해의 건축 베스트 7’에 선정됐다. 이후 ‘에이엔디’(AND)를 설립했다. 이름처럼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지우’고 ‘위계적인 구조에서 은폐되었던 다양하고 대립적인 가치와 욕망을 드러내고 새롭게 배치하는 과정에서 건축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목표다.

지인의 소개로 만난 집주인 부부와 정 건축가는 여러 차례 회의를 해 건축의 방향을 잡아갔다. “전에 살던 아파트가 겨울에 너무 춥더라고요. 건축가에게 무조건 햇살이 팍팍 들어오는 집을 지어달라고 했죠. 햇살을 듬뿍 받으며 살고 싶어서요.” 집주인 부부는 그밖에도 거실을 바라보며 설거지를 할 수 있는 구조, 큰딸만의 독립된 공간 등을 요청했다.

이 가족이 땅 구입부터 집을 짓기까지 들인 비용은 모두 3억원 정도다. 땅 구입 가격이 높지 않았고 집을 짓는 데 들이는 돈을 최소화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건축가의 고민은 깊어졌다. “제한된 예산 안에서 설계를 통해 좋은 아이디어를 실현하려면 빈틈없이 설계를 해야 합니다. 시공사 선정도 중요하고요.”

햇살이 잘 드는 두 딸을 위한 집…. 설계를 고민하던 건축가의 시선이 발코니를 향했다. “현대 주거공간의 특징 중 하나가 발코니를 통해 내부에서 외부를 본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발코니는 건축적으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죠. 실제로는 중요하지만 배제되어 있는 공간, 그래서 짐도 막 쌓아두고…. 속초 ‘발코니집’은 발코니가 내부 공간을 분할하고 각 실들 사이의 관계 맺기를 주도하죠. 하나의 실은 하나의 발코니를 갖고요. ‘버려진 공간’으로 취급되던 발코니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어요.”

 00507454801_20140626.JPG » 부엌에서 바라본 거실 풍경과 속초 ‘발코니집’의 전경.
그는 이전에도 발코니를 활용한 아이디어로 개성있는 건축물을 만들어왔다. 2011년에 경기도 양평에 지은 화가의 작업실 ‘스킨스페이스’는 전면의 거대한 창문과 유리문, 그 위의 나무장식으로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하고 풍경을 민감하게 끌어들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이 작업실은 ‘1억으로 건물짓기’ 사례로 소개되기도 했다. 2012년에 지은 거제도 펜션은 각방의 발코니가 바다를 향해 손가락처럼 각기 다른 방향으로 뻗어 있다. 독특한 디자인의 펜션은 거제도의 명물이 됐다.
집 안으로 파고든 형태의 발코니 때문에 집이 좁아진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집주인 부부는 대만족이다. “거실 안쪽으로 들어찬 발코니 안에서 네 가족이 모여 앉아 상에서 밥을 먹어요. 날 좋으면 창문 다 열어두고 선선한 바람 맞으면서요.” 테라스 바깥쪽에는 일부러 담을 두르지 않았다.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살고 싶어서”라고 한다. 대여섯살 조무래기들이 테라스를 통해 들어와 함께 간식이나 밥을 먹고 간 적도 있다.

집은 가족의 생활 모습도 바꿔가고 있다. “제가 한때 꿈이 피아니스트였거든요. 실제 전공은 미술을 했고요. 주택으로 이사온 뒤 피아노를 마음껏 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동안 손놓고 있던 공예도 다시 시작했다. 집 안 곳곳을 꾸미는 재미 덕분이다. 아이들도 자유로워졌다. 집 안에서 줄넘기를 해도 되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도 된다. “바닥을 타일로 했으니 깨지면 다시 해 넣을 것”이라며 웃어주는 부모 덕분이다. 집 안 전체가 벽 안으로 들어가 있는 조명인 ‘벽등’이라 돌출된 조명이 없는 것도 집의 특징이다.

“주택에 산다는 것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더라고요. 마을 어르신들과 국수도 해 먹고 마을 꾸미기도 하며 살아가려고요.” 테라스 중앙에는 얼마 전 집주인 장씨가 단풍나무 한 그루를 가져다 심어두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이 할머니네 놀러 와 저 나무 밑에서 놀겠죠.” 발코니 너머 뛰어다니는 두 딸을 바라보며 백씨가 말했다.

속초/글·사진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
사진 신경섭 제공

(*한겨레 신문사 2014년 6월 2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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