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궐목수로 평생을 살아온 여든 여섯의 니시오카 스네카즈의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책을 펴면서 그 분의 경건한 생애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에 충실하고 그 삶에서 배운 지혜를 후손들에게 들려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란 생각을 했다. 책을 읽는 내내 식사를 다하고 나서 한 대접의 숭늉을 느긋하게 들이켜는 느낌이었다.

따갑게 내리쬐는 볕을 가려주는 나무 그늘을 지나가면서 ‘나무가 있어 고맙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바라보는 눈은 없었다. 그렇게 서 있는 나무마다 어디에서 어떻게 자랐느냐에 따라 나무의 성깔이 달라진다하니 ‘아차’하는 외마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나무의 생명은 나무로서의 생명과 나무가 목재로 쓰인 뒤부터의 사용 햇수가 있다하는데 이는 나무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어찌 알 수 있을까 놀라울 따름이다. 가까운 궁궐에 갈 때면 전체적인 건물의 웅장함과 건물에 새겨진 그림이나 조각에 시선이 갔었지, 그 건물에 사용된 나무까지 보는 눈은 없었다. 말 없는 나무를 생명 있는 건물로 바꿔 가는 것이 목수의 일이라고 하시는 말씀에 건물이 살아 꿈틀대며 얼굴을 들이대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기도 했다. 내 아버지는 전문 목수는 아니시지만 전문 목수로 일하셨던 큰아버지와 함께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직접 사시는 집을 지으셨다. 40년이 지난 집으로 아궁이가 있는 오래된 집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면 그 집은 벌써 사라졌을 것이다. 몇 차례 수리를 했지만 처음 세워진 그대로 남아 부모님께서 거주하고 있다. 아버지와 큰아버지의 숨결이 느껴지는 집이 있다는 생각에 가슴 한 편이 따뜻해져온다. 책을 읽고 나서 부엌에 놓인 식탁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원목으로 된 6인용 식탁인데 최근에 지인에게서 받아 사용하고 있다. 식탁과 의자의 장식 하나하나가 새삼 다르게 보이다니 책의 힘이다.

 

책을 읽고 나면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들이 생긴다. 이 책에서 떠오르는 단어들은 일본, 도제 제도, 농업, 메이지유신, 호류지 등 이다.

아베정권이 들어서면서 야스쿠니(2차 세계대전의 A급 전범들이 합사된 곳) 신사 참배에서부터 오사카 시장인 하시모토 도루의 잇따른 망언으로 일본의 이미지는 극도로 나빠진 상태이다. 하지만 아베와 하시모토를 지지하는 일본인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본인들도 있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외면하면 나 또한 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 궁궐목수 나시오카 쓰네카즈는 일본인이지만 내게는 삼국시대 때 건너간 장인들의 후예일지도 모른다는 내 맘대로 식의 생각이 발동하여 오히려 애틋한 감정이 생겼다. 일본인이라서 나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조상이 같을지도 모른다는 그 분과 연결되는 고리를 나도 모르게 찾고 있었던 것이다. 일본, 가깝지만 먼 나라임에는 틀림이 없나보다. 

도제 제도는 세계사 책에서나 등장하는 오래된 제도로 멀게만 생각했는데 한 평생 도제 제도를 몸소 경험하신 분의 말씀을 들으니 교육 방법의 다양한 면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메이지유신이라고 하면 일본이 조선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지금의 경제, 문화 강국 일본을 만든 계기란 생각이 지배적이었는데 일본 내에서도 이때를 기점으로 ‘빨리 빨리’ 가 만연해지는 등 새로운 문제가 나타난 것 같아 ‘빨리 빨리’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구나 싶다.

책 전반에 등장하는 호류지는 일본 나라현에 있는 사찰로 스이코왕의 태자 쇼토쿠 태자(601~607년)때에 세워진 절이다. -참고 : 백제 무왕 때(640~641년) 익산 미륵사지가 창건되었다, 무왕은 선화공주와의 설화로 유명하죠.- 호류지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서 검색해보니 사진과 함께 다음과 같은 글이 있었다. 호류지, 호류사[法隆寺]에는 현존 최고의 목조건물인 금당이 있고 이 금당은 백제인이 지었다고 하며 금당에는 고구려 승려 담징(579~631년 : 고구려의 승려, 화가)의 벽화가 있다. 백제인이 건너가 제작한 백제 관음상도 유명한데 동양의 비너스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조각상으로 중국의 원강석불, 경주의 석굴암과 함께 동양 3대 미술품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한다. 일본 여행을 간다면 호류지를 한 번 둘러보아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났다. 여러 차례 국난에 사라진 우리의 유산들이 함께 떠올라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천삼백 년을 이어 왔다는 호류지 목수 구전은 또 하나의 명언으로 내 가슴 속에 새겨놓는다.

 

'나무 짜 맞추기는 치수가 아니라 나무의 성깔에 따라 하라'

'나무는 나서 자란 방향 그대로 써라'

'백 가지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기량이 없는 자는 조심스럽게 대목장 자리에서 떠나라'

 

모진 비바람과 눈보라를 이겨낸 나무들은 목질이 강하고 성깔 또한 강하여 건물의 뼈대로 쓰고 좋은 환경에서 자란 나무는 성깔이 없는 대신 힘도 없기에 다른 곳에 쓴다고 한다. 한 그루 나무의 생애에도 고통을 이겨낸 흔적이 남는 것이다. 삶에서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큰 배움의 장이 된다. 고통을 이겨낸 삶이란 얼마나 사람을 강하게 만들까란 생각이 들었다. 비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그 순간, 나이가 들어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고통을 이겨내면서 강해진다는 생각에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애가 경건하게 받아들여진다. 그러면서 현재까지의 내 삶을 돌아보고 내 아이들의 삶도 그려본다. 삶에서 힘든 일이 생겼을 때 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으로 내 아이들이 자라주기를 또 한번 바란다. 그렇게 되려면 엄마인 나부터 삶의 고통을 이겨내는 모범을 보여야한다는 생각에 어른으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3부 「싹을 기른다는 것」에는 부모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씀만 모아놓은 듯 하다. 

 

‘도제 제도를 다시 살핀다’,

‘똑같은 것은 하나도 없는 나무를 기르듯이’,

‘아이의 싹을 찾아내 기르는 어머니처럼’,

‘제 힘으로 뿌리내릴 수 있게’

‘쓸모없는 것은 없다’

‘섣부른 칭찬은 독이다’ 

‘굽어진 것은 굽어진 대로, 비뚤어진 것은 비뚤어진 대로’

 

본문에 '나무를 다룰 때처럼 그 사람의 성품과 기질을 잘 살펴보고 그 사람의 좋은 점을 키우고자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기른다는 건 어떤 모양에 억지로 밀어 넣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진 개성을 찾아 그것을 키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일은 서둘러서는 안 됩니다.', ' 인간도 나무와 다를 게 없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그에 따라 기르는 방법도 달라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알면서도 생활에서 자주 잊고 사는 진리이다.

사람 사이에서 생기는 문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오는 경우가 많다. 서투른 말과 표현에서 생기는 오해들, 오해가 생겨도 그 오해를 풀지 못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은 많은 노력을 요하게 되는데  노력하는게 쉽지 않아 오해를 푸느니 차라리 안보고 사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상대를 내 기준에 맞추려다 보니 서로 감정만 상하고 무시당한다는 느낌에 서로 이미지가 안 좋아진다. 사람의 마음을 모으는 일이 쉽지 않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을 수 있다면  우리 사회에 크고 작은 문제들은 거의 해결되지 않을까. 

한 분의 생애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책 한권에 내 짧은 인생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기분이었다. 아이를 기르는 부모로서의 자세만이 아닌 삶의 전반을 바라보는 한 인간으로서 가져야 하는 자세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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