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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가족

남편 월급, 딸 월급 받아 놀러가거나 명품 사거나
게다가 툭하면 팔자 타령, 모정 모르고 자란 남매는
아빠에게 묻고 싶다. 왜 참고 살아? 이혼 안해?

‘천상천하 유아독존!’

하늘 위와 아래, 소중한 존재는 오직 나뿐인 사람. 그런 사람이 정말 있냐고? “있지! 딱 우리 엄마가 그래.” 회사원 김수연(가명·31)씨가 말했다. ‘희생과 헌신의 아이콘, 엄마.’ 수연씨는 이런 상투적 표현이 정말 듣기 싫다. 엄마에게도 자신의 삶이 있고, 자식의 행복만큼이나 엄마의 행복도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근사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저런 말을 들을 때마다 ‘우리 엄마만 왜 그렇게 다를까’, 그 생각이 드는 게 싫어서다. “헌신과 희생까진 바라지도 않아. 그냥 좀, 다른 식구들 생각도 해주고 살면 안 될까?” 맘속에 꾹꾹 묻어둔 이 말을 수연씨는 단 한번도 엄마에게 꺼내보지 못했다.

“○○이 엄마는 남편한테 1천만원이 넘는 밍크코트를 선물받았다더라.” 한동안 잠잠하던 엄마가 불만을 터뜨렸다. 다음 말을 들어봐야 아나? ○○이 엄마와 비교하는 말이 나올 테고 ‘어쩌다 내 팔자가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앓는 소리로 끝날 게 분명하다. 엄마의 긴 신세 한탄을 끝낼 방법은 단 하나뿐이다. 이번에도 “보너스 받으면 옷 한벌 해드리겠다”는 약속으로 위기를 넘겼다. ‘휴~’ 하고 한숨이 나온다.

대학을 졸업하고 곧장 직장생활을 했지만 수연씨에겐 벌어놓은 돈이 거의 없다. 다달이 붓는 적금 30만원과 차비, 밥값 등 용돈 조금을 빼고 월급을 고스란히 엄마에게 줘왔기 때문이다. 수연씨는 엄마가 그 돈을 차곡차곡 결혼자금으로 모아놓을 거란 기대 따위는 하지 않는다. 엄마가 들고 있는 명품백과 입고 있는 고급 블라우스는 무슨 돈으로 샀겠는가. ‘그래도 엄마가 빚을 얻어 쓰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사람인데 왜 욱하는 맘이 들지 않겠는가. 참는 게 약이다. 수연씨가 싫은 소리라도 한마디 하면 화살이 아버지에게 돌아갈 게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올해 56살, 환갑을 바라보는 엄마는 아직도 아버지를 원망하고 있다. 이루지 못한 ‘신데렐라의 꿈’ 때문이다. 엄마의 평생 한은 “네 아빠한테 속아서 결혼했다”는 것이다. “아빠가 엄청난 부잣집 아들인 줄 알고 결혼했는데 (기대보다) 평범한 집 아들이었다”는 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더라면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진 않았을 거다”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다. 샐러리맨이긴 해도 대기업에 다닌 아버지 덕분에 비교적 넉넉한 생활을 했는데도, 엄마 성에는 차지 않는 모양이다.

엄마는 무늬만 전업주부였다. 아버지가 벌어오는 돈으로 알뜰살뜰 살림을 불려가기보단 쇼핑하길 좋아했고, 각종 모임에서 친구들과 노는 걸 더 즐겼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집에 있는 날은, 과장을 조금 보태, 손에 꼽을 정도였다. 수연씨와 남동생에겐 스스로 상을 차리고, 라면을 끓여 먹는 일이 어려서부터 익숙했다. 퇴근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랑 셋이 앉아 저녁을 먹은 날도 많았다. 심지어 남동생이 군대 가기 전날에도 엄마는 등산을 간다는 이유로 집에 없었다.

수연씨가 기억하는 젊은 시절의 엄마는 주로 화장대 앞에서 곱게 화장을 하는 모습이었다. 어린 시절 수연씨는 예쁜 엄마가 참 좋았다. 예쁜 엄마의 친구 중엔 ‘남자친구’도 많았다. 초등학교 때였나. “맛있는 걸 사주겠다”는 엄마 말에 신이 나 따라나선 자리에서 낯선 아저씨를 만난 일도 있다. 엄마는 친구라고 했지만, 어린 눈에도 예사 친구처럼 보이진 않았다. 그날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다만 그날 일에 대해 아버지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기억만 선명하다. 그 얘길 했다간, 엄마가 우리를 떠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늘 당당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사는데!” “집에만 있다가 우울증에 걸리느니 밖에서 즐겁게 노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게 엄마의 주장이었다. 아버지의 대응은 대부분 침묵이었다. 어쩌다 한번 아버지가 목소리를 높이면 엄마는 “이혼하면 그만”이라고 받아쳤다. 정말로 며칠씩 집을 나가 버리기도 했다. 부모님이 싸울 때면 수연씨도 엄마 편을 들곤 했다. “아빠가 뭔가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더 큰 일이 날 것만 같았고, 그게 싸움을 빨리 끝내는 길”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지킨 가족의 풍경은 스산하다. 수연씨는 “엄마가 내 얘길 제대로 들어준 적이 없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친구랑 싸워서 속상했던 날, 성적이 떨어져 고민스러웠던 날, 엄마는 “넌 꼭 이럴 때 얘길 해야겠느냐”며 타박을 했다. 그때 엄마는 그저 텔레비전을 보고 있거나, 밥을 먹고 있거나 했을 뿐인데도 수연씨를 밀쳐냈다. 지금도 수연씨는 “엄마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반인 남동생은 “결혼 같은 건 하지 않겠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자존심 때문인지 제대로 말은 안 하지만, 아직 제대로 된 연애 한번을 못 해본 모양이다. 동생은 “여자친구를 사귀려면 밥도 사줘야 하고 공주님처럼 떠받들어야 하는데 그 귀찮은 걸 왜 하냐”고 얘기했다.

평생 엄마 뒷바라지만 해온 아버지에게 남은 건 이제 달랑 집 한채뿐이다. 이제 와 새삼 부모님 사이에 새로운 정이 싹틀 것 같아 보이지도 않는다. 가끔은 부모님에게 묻고 싶어진다. “왜 그렇게 살았느냐”고. 하지만 수연씨는 묻지 않는다. “30년을 넘게 그렇게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묻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고 물어봐야 상처가 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아버지가 이 모든 걸 감내했던 건 엄마를 너무너무 사랑해서였을까, 두 자식이 불쌍해서였을까? 알 도리가 없다. 분명한 건 ‘아버지가 가족을 지키려고 했던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만약 그때 아버지가 이혼을 하자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랬다면 엄마가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다. 수연씨는 잘 알고 있다. 그 또한 부질없는 가정법일 뿐이라는 걸.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빕스(VIPS)에서 4인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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