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07230501_20140624.JPG » 지난 15일 경상북도립구미도서관에서 실시한 ‘<해파랑길을 걸어요: 경주> 저자와 함께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 여행작가 이동미씨가 학생들에게 경주 주상절리를 설명하고 있다. 경상북도립구미도서관 제공

[함께하는 교육] 공공도서관이 여는 ‘길 위의 인문학’

세월호 사건 뒤 자녀의 캠프 활동 등을 걱정하는 부모들이 늘었다. 한데 안전문제 걱정할 필요 없이 체험활동도 하고, 역사·문화 공부까지 할 수 있는 창구도 있다. 전국 180개 공공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고려시대 청자, 김홍도의 그림 등을 보고 왔다. 일제 강점기에 자기 재산을 다 털어 우리 문화재를 사들여서 지킨 간송 전형필 선생님에 대한 공부도 했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살던 분이라 더 흥미진진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 사는 구준서(삼선중 2년)군이 지난 8일 서울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간송문화전-문화로 나라를 지키다’를 보고 온 소감이다. 준서군은 아리랑정보도서관에서 실시한 ‘근현대 예술인들이 사랑한 곳, 성북동!’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가 이 전시회를 봤다. 준서군이 ‘근현대 예술인들이 사랑한 곳, 성북동!’에 참여한 건 엄마 최용주씨가 자주 드나들던 동네 도서관 벽에 붙은 ‘길 위의 인문학’ 안내문을 본 게 계기였다. 총 3회의 프로그램 중 1회 강연과 탐방에 참여하고 온 최씨는 “다음에는 너도 반드시 가자”고 아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첫날(7일)은 <간송 전형필>(김영사)의 저자 이충렬씨 강의를 들었다. 강의만 듣고 끝이 아니었다. 고고미술학자 최순우 선생의 옛집, 우리나라 최초 서양화가 고희동 선생의 가옥 등을 탐방했다. 인문학은 어렵다는 편견이 있었다. 내 주변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고 직접 그 현장까지 차분히 돌아보면서 편견이 줄어들었다. 아들도 이런 경험을 시켜주고 싶었다.”

 00507230601_20140624.JPG » 지난 7일 아리랑정보도서관에서 실시한 ‘근현대 예술인들이 사랑한 곳, 성북동!’ 프로그램에서 <간송전형필>의 저자 이충렬씨가 사람들에게 최순우 옛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아리랑정보도서관 제공

지역 공공도서관 통해 인문학 몸으로 만나

인문학 열풍이 분 지 약 2년. 여러 곳에서 인문학 관련 강의를 연다. 그런데 강의실에 앉아 강사의 수업을 일방적으로 듣거나 책만 읽는 데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도서관협회 주관)은 기존 인문학 프로그램과는 달리 강연과 독서, 체험형 탐방 등으로 이뤄져 있다. ‘현장 속의 인문학, 생활 속의 인문학’을 강조한 이 프로그램은 책 속 지식이나 특정 문화가들의 전유물로 남을 수 있는 인문학을 대중들의 생활 속에 스며들게 하자는 뜻에서 책과, 문화, 현장을 함께 경험하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방학기간 등에 자녀에게 체험활동과 역사·문화 공부 기회를 주고 싶은 부모들에게는 반가운 프로그램이다. 올 3월에 전국 공공도서관을 대상으로 공모를 했고 180개 공공도서관이 선정됐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공공도서관 쪽에 최대 1100만원의 운영비가 지원돼 참가자들은 점심값 정도를 빼곤 내는 돈이 거의 없다.

전국 180개 공공도서관 참여 
강연 듣거나 책만 읽는 데서 탈피 
현장 방문 등 체험형 프로그램 편성 
다루는 주제도 도서관별로 다양

“두리번거리며 이곳저곳 걸으니 
무심히 지나쳤던 풀들이 눈에 ‘확’ 
마음 여유 생기고 생각도 정리돼”
익숙한 일상의 거리·건물 낯설게 볼 기회도

프로그램 주제는 지역도서관마다 다르다. 한국도서관협회 쪽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조선왕릉 등 문화유적 탐방과 역사기행, 건축, 영화, 미술, 자연생태 등 생활 속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고 설명했다. 역사 드라마 인기를 반영해 역사 인물과 관련한 탐방을 하는 곳도 많다.

프로그램 중에는 내가 사는 지역사회 속 역사와 문화를 살펴보는 내용도 많다. 청소년들에게는 일상의 공간이 곧 문화이고 역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준서군이 참여한 프로그램도 그가 사는 성북동이 중심이다. 어머니 최용주씨는 “성북동에 산 지 9년이나 됐지만 구석구석 돌아볼 기회가 없었다”며 “우리동네에 누가 살았었고, 이 건물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등 숨은 사연을 알게 돼 좋았다”고 말했다.

동인천여중 2년 남혜림양도 인천광역시 서구도서관에서 실시한 ‘청소년, 근현대 인문학 소풍 가자!─정동 역사탐방’에 참여하며 서울이라는 도시를 다르게 볼 기회를 접했다. 서울 중구 정동길. 평소 가족들과 나들이 삼아 걷던 길이었지만 그 길과 주변 건물에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는 몰랐다.
“경교장이 백범 김구 선생의 사저라는 걸 처음 알았다. 수학여행 때 역사유적지에 가도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없다. 인원이 많아 빨리 이동해야 한다. 한데 이번에는 설명을 천천히 듣고 메모도 할 수 있었다. 또 평소 만나기 어려운 교수님이나 저자(장규식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 <서울, 공간으로 본 역사>(저자)를 직접 만나봐 좋았다.”

 35147048799_20140624.JPG » 지역별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운영 일정(어린이·청소년 참여 프로그램)
 35147054499_20140624.JPG » 지역별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운영 일정(어린이·청소년 참여 프로그램)

천천히 걸으며 교과서로 만난 유적 만나기도

최근 여행 트렌드 가운데 하나는 ‘천천히 걷기’다. 지난 15일 경상북도립구미도서관에서 실시한 ‘<해파랑길을 걸어요: 경주>(내인생의책) 저자와 함께하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은 구미에서 약 2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경주 해파랑길을 부모와 자녀가 함께 걸으며 역사·문화를 만나는 식으로 구성했다. 14일, 참가자인 초·중등 학생들은 도서관에 모여 <해파랑길을 걸어요: 경주>의 저자 이동미(여행작가)씨의 강연을 들은 뒤 15일에는 경주로 탐방을 떠났다.

“사람들이 의식주가 해결된 다음 갖게 되는 욕구가 뭔지 아세요? 의식주가 해결되면 고개 너머에 누가 있는지, 옆집에 누가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래서 걸어서 이곳저곳에 다닙니다.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 보면 무심히 지나쳤던 나무·돌·풀꽃 등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음의 여유가 생깁니다. 생각을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발’은 ‘최고의 생각스승’입니다.”

강연자 이동미씨는 “탐방을 하면서 길 위에서 천천히 걸으며 인문학을 만나는 것의 의미를 이렇게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해파랑길이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해맞이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초광역 걷기 길’을 말한다.

초·중등학생 20명과 이들의 부모 등 40명은 경주 양남 주상절리, 읍천항, 문무대왕릉 일대 등을 직접 걸어서 둘러봤다. 이동미씨는 “탐방 전날, 책과 강연 등으로 경주 문화유산에 대한 설명을 들었던 터라 현장에 가보고 ‘아! 이곳이구나!’ 하며 기억하고 반가워하는 친구들이 많이 보였다”고 기억했다.

“보통 강연 프로그램은 강의만으로 끝난다. 한데 이 프로그램은 강연과 탐방을 묶었다. 강연에서 탐방 현장에서 혹시 놓칠 수 있는 부분을 미리 설명해준다. 1박2일로 간 건 아니지만 강연 하루, 탐방 하루 이렇게 이틀을 만났기 때문에 헤어질 때는 서운한 마음도 생겼다.”

윤서정(구미 봉곡초 5년)양은 “강의 때 선생님이 죽어서도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고 했던 문무왕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왕의 아들이 지었다는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직접 봐서 신기했다”고 했다.
“올해 초 사회 수업에서 문무대왕릉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교과서에서는 그림만 나와 아무 느낌이 없었다. 근데 선생님의 이야기로, 실제 유적으로 보니 실감이 났다.”
서정양 엄마 이선미씨는 “내가 가본 경주의 그 길이 해파랑길이라는 건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며 “경주 구간에 대해 우리가 모르던 전설 등을 흥미진진한 설명으로 만나게 되어 뜻깊었다”고 했다.


탐방 후 다양한 활동 활성화한 도서관도 많아

탐방 뒤 다양한 활동을 독려하는 도서관도 있다. 경기도 성남시에 사는 이수지(성남동초 4년)양은 지난해 성남시 수정도서관에서 실시한 ‘역사와 문학으로 만나는 남한산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남한산성 관련 이론 강의와 탐방 그리고 활동으로 이루어진 3회짜리 프로그램이었다. 수지양은 평소 체험학습 등에 관심이 많은 엄마와 함께 여러 곳에 다녀본 경험이 있지만 이번 프로그램은 독특했다. 수지양에게는 전날 다녀온 남한산성 수어장대를 북아트로 만들어보는 활동 등이 기억에 남는다. 엄마 이화자씨는 “북아트 등 탐방 이후 활동을 하면서 남한산성의 역사·성곽의 구조에 대한 글쓰기, 탐방에 대한 소감 쓰기 등을 했다. 탐방 활동을 정리할 수 있어 만족스럽다”며 “여름방학 때 과제로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길 위의 인문학 등에 참여하며 느낀 점도 덧붙였다.

“인문학이 뭔가 싶어서 사전을 찾아보면 ‘이거 뭐야! 어렵잖아!’라는 말이 나온다. 말 그대로 다 사람들 사는 이야기, 살아왔던 이야기를 다루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 유적은 누가 어떻게 해서 세운 거고, 어떤 전설이 있고, 이곳의 역할이 뭔지 유적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이야기해주니 아이들이 다르게 반응한다. 아이들은 남한산성과 수원 화성을 한번 가보면 잘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여러 번 반복해서 프로그램 등에 참여시키려고 한다.”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 중에는 어린이·청소년뿐 아니라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지역별 프로그램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도서관협회 누리집(kla.kr) 또는 공공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누리집(libraryonroad.kr)에 가면 볼 수 있다.

김청연 기자 carax3@hanedui.com


(*한겨레 신문 2014년 6월 2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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