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스데이 노래 부르고 춤추기”
“땡! 덕질.”
“덕질? 그게 무슨 말이야?”“엄마, 나랑 오빠랑 차별하지 마”
“그렇게 느끼면 고치도록 노력할게”
“같이 자겠단 약속도 안 지키잖아”
“그 점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나 순영아, 인터뷰를 하려는데 엄마에게 궁금한 거 없어? 내게 질문 좀 해봐. 아무 거나.순영 안 궁금해. 꼭 질문을 해야 한다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는 질문과 똑같은 거야. 엄마는 재복이 오빠가 좋아, 내가 더 좋아?나 오빠는 오빠고 너는 너잖아. 백합과 장미가 서로 다르게 아름다운 거지. 누가 누구보다 더 좋다고 말할 순 없는 거야. 우리가 <솔로강아지> 논란 전에는 사이가 좋았던 것 같은데….순영 그랬나? 그렇다고 치고, 일단.나 엄마 생각엔 우리가 일이 다 해결되고 나서 삐걱거리게 된 것 같아. 다시 좋아지고 싶어.순영 삐걱삐걱? 로봇이세요? 널 사랑한다고 말해버릴까 싶어. 이렇게 매일 가슴 아파, 아파, 아파. 그런데 왜 이래. 니 앞에만 서면 작아져 버려. 아무것도 아닌 애기 같아. 애기 같아.나 잠깐, 그게 무슨 노래야?순영 ‘여자 대통령’.나 그 노래 좋아해?순영 옛날에 1위로 좋아했는데 지금은 ‘보고 싶어’라는 노래가 내게 1위야. 걸스데이 거.나 걸스데이? 언젠가 네가 걸스데이 이야길 하면 우리가 친해질 거라고 했지. 왜?순영 내가 좋아하는 거잖아.나 그럼 그동안 엄마가 순영이가 좋아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이야길 안 나누었다는 거야?순영 응.나 이제 네가 엄마에게 물어봐.순영 딸의 취미는? 설마 이것도 모르면 친엄마가 아니겠지. 진짜 모르는 것 아냐?나 아니, 잠깐. 너의 취미는… 힌트 좀 줄래?순영 걸스데이. 그게 힌트야. 여기서 모르면 진짜 엄마가 아니야.나 엄마 되기 참 쉽네.순영 응. 되게 쉽지. 십초 안에 대답 안 하면 음… 십, 구, 팔, 칠….나 알았다! 걸스데이 노래 부르고 춤추기야.순영 땡! 덕질.나 덕질이 뭔데? 그것이 무슨 전문용어야.순영 팬질. 팬질과 덕질이 같은 거야. 모르면 그냥 관둬. 괜찮아, 엄마. 모르는 게 나쁜 건 아냐.나 위로해줘서 고맙긴 한데 이것 못 맞히면 엄마가 아니라며.순영 응. ㅎㅎ.나 그러면 결론을 내려보자. 우리가 지금까지 인터뷰를 했어. 서로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 우린 이제 친해진 거야?순영 아니. 내가 원하는 대답을 얻지 못했어.나 네가 원하는 대답이 뭔데?순영 차별하지 마. 오빠랑.나 난 그런 적 없는데. 그래도 네가 그렇게 느낀다면 고치도록 노력할게. 난 걸스데이 이야기를 하는 동안 네 질문을 잊고 있었는데. 어떻게 하면 차별을 안 하는 거지?순영 오빠가 실수를 할 때는 부드럽게 대하고 내가 실수를 하면 엄마가 왈왈댄다구.나 (왈왈? 하지만 지금은 참아야지) 내가 그랬나? 그것만 고치면 돼?순영 아니, 엄마는 오빠랑 나를 차별한 적이 없다고 말하지. 하지만 오랫동안 밤에도 오빠만 재워주고 오빠랑 같이 자고, 오빠가 예전에 남산에 있는 학교 다닐 때 운동회 날이 겹치면 오빠 운동회만 아빠까지 데려가 버리고. 맛있는 것도 내가 먼저 달라고 했을 때도 오빠에게 먼저 주었지. 예전엔 80점 이상만 받으면 된다고 하고는 이번에 수학을 90점을 받아왔는데도 칭찬도 안 해주고, 더 열심히 하라고만 하고.나 그래, 네 말이 맞아. 오빠가 섬세한 에이(A)형이고 너는 씩씩한 비(B)형이었기에 엄마는 늘 네 염려는 해본 적이 없지. 오빠가 13개월 때 크게 다쳐서 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이후로 엄마는 오빠를 생각하면 늘 미안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단다. 물론 지금은 오빠가 쑥 커버려서 엄마가 더 이상 그런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너보다 오빠를 먼저 더 많이 챙기는 것이 습관이 되고 말았네. 외갓집에서 잠시 너를 키워주었는데 네가 아기 때도 얼마나 밝고 씩씩하고 순한 지… 난 네 걱정을 해 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어. 숙제도 준비물도 혼자 다 알아서 했지.순영 오빠가 크면 나랑 같이 자겠다고 약속해놓고 이제 오빠가 육학년이 되었는데 엄마는 아직도 나랑 같이 자지 않잖아. 다리를 붙잡고 애원해도 맨날 피곤하다고 ‘다음에, 다음에’라고 하고.나 순영아, 그 점은 정말 미안해. 하지만 네가 밤 1시까지 자지 않잖아. 엄마도 피곤해. 그 전엔 실컷 놀다가 엄마가 피곤해서 쉬고 자려고 하면 네 방으로 오라고 막 불러대지. 모두 자야 하는데. 엄마도 이제 너희들이 좀 컸으니 밤에 엄마 시간을 가지고 싶어. 그리고 이제는 오빠랑도 안 자잖아. 그러니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순영 엄마는 항상 ‘다음에 너랑 같이 잘게’라고 하고 늘 ‘다음에’라고만 해. 난 지금 사랑이 필요하다구.나 그렇구나. 미안해. 그 점에서 달라지도록 하겠음. 다음은 또 뭐였지? 요즘 성적에 대해 엄마가 강조했다는 거? <솔로강아지> 이후 너에 대해 내가 생각이 많아졌어. 너를 응원해준 많은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게 훌륭하게 자라주었으면 했고….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했나봐. 그건 엄마도 너도 피곤해지는 건데. 우린 우리 식대로 살자.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자유롭게.순영 그래. 그럼 예전처럼 80점 이상이면 칭찬해주는 거지?나 이제 한 학년 올라가니 90점으로 하는 게 어때?순영 그래, 알았어. 최대한 노력해볼게, 마마야.나 엄마는 너희들을 키울 때 불필요한 질투나 경쟁심을 심지 않으려고 너희들에게 공부해라 한 적도 없었고. 네 말대로 공부하라는 말을 최근에 많이 했었지. 엄마가 잘한 점도 알아주면 고맙겠는데.순영 나도 알아. 하지만 그걸 떠올릴 수 없는 다른 일들이 많았잖아. 그리고 나도 이 말을 하고 싶어. 엄마, 사랑해.나 네가 키워달라고 집으로 가져왔던 온갖 동물들, 엄마가 정성껏 돌봤잖아. 남이 버린 햄스터들, 이구아나, 소라게, 장수풍뎅이들. 그리고 개도 키우고 있잖아. 우리 좋은 일만 기억하자. 짧은 인생에.순영 그래. 그럼 끝내자. 우리 처음의 행복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자.재복 순영아, 빨리 게임하자.나 아니, 순영이 너도 재복이도 게임 못해. 둘 다 차.별.없.이. 똑같이 못하게 해 주마.재복, 순영 안~돼. 안~돼.순영 나중에 <걸스데이의 어느 멋진 날> 같이 보자구. 그랬다. 이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가까스로 화해했다. 아이랑 소통한다는 것은 어른의 입장에서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것이 아니다. 딸이 엄마에게 바라는 것은 엄마가 딸에게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작고 순수하고 예쁜 거였다. <걸스데이의 어느 멋진 날>을 같이 보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 엄마가 부족해도 끊임없이 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는 것. 이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순영이 엄마 김바다 시인
(*위 내용은 2015년 10월2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