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

저에요. 막내딸 ^^ 

평소엔 '막내'라는 말이 입밖으로 잘 안나오는데...

맘 먹고 편지를 써야겠다... 했더니 저도 모르게 스르륵 흘러나오네요.

참 이상하죠? 하루종일 두 아이들 따라다니면서 뒷치닥거리하랴, 남편 챙기고 집안일하랴,

단 1분 1초도 막내딸로 살지 않았는데, 아니, 살 수가 없는데, 밤만 되면 나는 엄마고, 아내고, 이런거 다 잊고 막내딸이 되어버린다니깐요 ^^ 마치 마법에 걸린 신데렐라처럼 말에요...

동화 속 신데렐라는 무도회장에 가서 춤을 추지만, 나는 이런저런 상상을하며 친정에 갈 계획을 짜요^^

'주말엔 친정가서 푹 좀 쉬었다와야지.'

'엄마가 해놓은 간장게장에 밥 좀 맘편히 비벼먹어야지.'

'아빠한텐 아이들 좀 봐달라해야지.'

'이번 주말엔 어떤 책을 가져가서 볼까...... 낮잠이나 실컷 자다 올까?'

 

그러다가 다음날 아침이 되면, 난 마법에 풀려난 신데렐라처럼 또 집안을 종종거리며 아이들 뒷치닥거리하고, 남편 챙기기에 바빠요.

그런데 어느 날, 우리 나일이가 저에게 "엄마는 신데렐라같아요" 하는거에요.

순간, 뜨끔한 마음으로 나일이를 바라봤더니 우리 나일이, 천진난만하게 "신데렐라처럼 집안일을 많이 하잖아요" 하네요. 웃고 넘겼지만, 마음이 아팠어요. 5년 전만 해도, 난 늘 마법에 걸린 신데렐라였는데..... 그래서인가봐요. 주말이면 내 발길이 자동적으로 친정에 닿는 이유가...

친구들하고 '친정가면 한번 보자' 했던 약속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1박 2일동안 친정에서만 뒹굴뒹굴 하잖아요. 내가 머무르는만큼 엄마 아빤 힘드실텐데....

 

알아요. 아무리 아니라고, 괜찮다고 하셔도...

제가 엄마아빠랑 같이 산게 26년인데... 표정만 봐도 다 알지요.

다섯살인데도 자꾸만 안아달라는 나일이때문에 외할아버지 팔은 지금 빠질 지경이라는 거, 밥생각 없다고 먼저 먹으라고 하면서 5개월된 민석이 안아주는 외할머니도 실은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느라, 아침부터 뱃속에 들어간 음식은 한젓가락 남짓이라는 거......

그런데도 못난 저는 엄마 아빠께 죄송하단 말도, 고맙단 얘기도 못하네요.

한번씩 사들고 가는 선물로 대신할 뿐.

 

그런데 엄마, 아빠.. 이거 아세요?

제가 나일이랑 민석이를 키우다보니, 그 옛날 제가 이해할 수 없었던 부모님의 모습이 모두, 아니 거의 80%는 이해가 돼요. 두 분이 부부싸움을 할 때마다 저는 "이렇게 서로 미워하면서 왜 헤어지지 않느냐"고 따지곤 했었죠. 그때마다 엄마 아빤 하나같이 "다 너랑 네 언니 때문이지"하셨잖아요.

그땐 '저도 이제 컸으니까 저랑 언니 걱정말고 두분이 이혼하세요'하며 철없는 말들을 마구마구 뱉어냈는데..... 지금 생각하니 못나도, 그렇게 못날수가 없네요.

나일아빠랑 같이 살아보니,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한 부부일지라도 좋은 날만 있을 순 없고, 아이들을 생각해서 억지로라도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아이들이 아플 땐 또 어떻구요. 대신 아파줄 수 없어서 바라보는 것도 힘들고, 잠도 잘 수 없겠던데... 부모님도 나를 이렇게 안절부절한 마음으로, 지극정성으로 키우셨구나 생각하니, 그동안 제가 벌렸던 잘못들이 제 가슴을 마구 방망이질 했댔어요. 어쩜 이렇게 못날 수 있냐고...... 그렇게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도 되는거였냐고......

죄송하다말도 이젠 너무 늦은 것 같아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앞으로 잘할게요. 지켜봐주세요.

 

엄마, 아빠.

이제 제가 두분께 바라는 것은 딱 한가지 뿐이에요.

건강. 제발 건강하셨음해요.

두 분, 야채스프 꼬박꼬박 잘 챙겨드시고, 산에도 다니고, 해외도 다니면서 재밌게 사세요.

막내딸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서 두 분을 기쁘게 해드릴게요.

나일이가 큰 인물 될거라고, 대통령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셨던 아빠 말씀처럼, 우리 나일이 잘 키울테니 꼭꼭 지켜봐주시고, 시집가서 나일이 닮은 아들 딸 낳는것도 꼭 보세요.

민석이 눈에는 총기가 있어서 남다르다는 엄마 말씀처럼, 우리 민석이 크게크게 키울테니, 오래오래 엄마가 제 버팀목이 되어주세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바로 엄마에요. 아빠가 서운해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엄마의 머리카락 한올까지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 어려운 환경에서도 힘든 내색 한번 보이지 않고, 집안을 일으키셨잖아요. 그러니 제발 부탁이에요.

이제 좋은 날만 누리세요.

꼭, 약속해주세요. 저랑 언니때문에 그동안 해왔던 근심걱정들 모두 내려놓고, 두 분 인생 맘껏 즐기시기로~~

 

막내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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