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가족 / 고부 사이, 한 남자의 생존기

▶ 국민남편 방귀남(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 속 주인공)씨도 난처하게 만든 일, 그건 바로 고부갈등입니다. “돈 아껴 써라” “일도 중요하지만 애도 낳아야 할 거 아니냐?”고 잔소리를 하는 어머니와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 신세대 아내의 갈등 속에서 방귀남씨의 속이 타들어갑니다. 국민남편이 이럴진대 평범한 아들·남편은 오죽하겠어요? ‘시월드’ 갈등 중재 교실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는 평범남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휴대전화를 귓바퀴에 댈 수 없다. 어머니의 말소리 데시벨이 높고 말 속도가 빠르다. 이미 발성은 입천장과 비강에서 이뤄지고 있다. 평온하고 정상적인 상태였다면 아마 성대에서 공명이 이뤄졌을 것이다. “전화 좀더 자주 하면 안 되니? 자주 통화하면서 친해지는 거지.” 아들은 일단 잠자코 듣고만 있다. 밤 9시30분. 일단 집에서 뛰쳐나오길 잘했다. 지르는 소리 듣기에도, 소리 지르기에도 편하다. 무엇보다 아내의 귀를 피해야 한다. 어떤 이유로 싸우는지조차 숨겨야 한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서 중재다운 중재를 하려는 아들의 기본 태도다. 너의 왼손의 싸움을 오른손이 모르게 할 것.

“사람 사는 게 뭐니, 서로 전화 자주 해야 부대끼면서 나는 ‘딸 하나 새로 생겼다’고 생각하고 또 ○○(며느리)는 새어머니 한명 새로 생겼다고 여길 것 아니니.” 아들은 순간 귀를 의심한다. 헛걸 들었나. 땀으로 귓구멍이 막혔나. 아니면 군 훈련소 시절 교관이 늘 말하던 대로 ‘내 귀에 ×라도 박힌’ 건가. ‘딸 하나 생겼다’는 멘트는 드라마에서만 듣던 문장인데. “누나랑 여동생 2명까지 어머니 벌써 딸이 3명인데!”라는 말이 목까지 차오른다. 그러나 할 수 없고, 해서는 안 될 말이다. 아들은 싸움도 맘대로 할 수 없다. 그 사실을 결혼 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깨달았다. 싸움이 커지면 그 앙금은 고스란히, 싸움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아내에게 간다는 걸.

합리적 심판자라 자처했거늘 엄마에겐 ‘꽉 잡힌 아들’
아내에겐 ‘마마보이’ 급기야 정신분열이 오고 있어

“안부전화 좀 자주 하면 안되니?” 오늘도 불만이 접수됐다
자, 빨리 대충 얼버무려야 해, 그런데 왜 한숨부터 나올까

숨 한번 고르고 다시 묻는다. “그러니까 화내지 마시고, 얼마나 자주 전화했으면 좋겠는지 그냥 솔직히 말해주면 안 돼요? 빙빙 돌리지 말고?” 어머니는 결코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몇 번 하기로 정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생각날 때 그렇게 전화하고 가까워지면 되는 거 아니냐.”

며느리가 자연스럽게 시어머니에게 전화하고 싶어진다면, 참 좋은 일이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일을 마치면 회사 앞 호프집에 동료들이 하나둘 모이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적’으로 ‘자연스럽게’ 통화가 이뤄진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한데 그게 가능하긴 한가? ‘결혼’과 ‘아들’이라는 고리로 맺어졌다고 해서, 30년 넘게 남으로 지내온 어머니와 아내가 금세 딸처럼, 새어머니처럼 가까워질 수 있다고 믿는 게 과연 합리적이긴 한 건가.(혹은 믿는 것처럼 행동하거나.) 혀끝까지 치미는 말을 꾹꾹 눌러삼키며 일단 후퇴했다. 아내의 잘못을 이슈로 어머니와 하는 전화는, 오래 할수록 무조건 손해다. 커질수록 덧난다. 뭣도 모르던 시절, 어머니와 아내 사이에서 ‘나는 합리적인 동물이요 심판자’라고 생각했다. 그때그때 가장 합리적인 쪽 편을 들었다. 미혼 시절처럼 쿨하게 말하고 행동했다. 사춘기 중2 시절 처음 반항했을 때 들었던 욕의 정확히 3배 반의 욕을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의절당할 뻔했다. 나는 합리적 심판자가 아니었다. 이럴 때 마누라 편 들면 전쟁이 커진다는 사실쯤은 이미 알고 있다. “죄송해요, 전화 더 자주 하라고 이야기할게요.” 아들은 적당히 사과하고 대충 얼버무리며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나온다.

‘기본 일주일에 통화 한번’으로 조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거는 쪽과 받는 쪽의 체감은 달랐다. 받는 쪽은 너무 적다고, 섭섭하다고 느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내리 사랑 주는 사람은, 늘 배고프니까. 놀라웠던 건 따로 있다. 미혼 시절 아들의 헛소리에 맞장구를 치고, 문자와 전화를 즐겁게 주고받던 어머니는 더이상 아들의 전화와 문자와 방문에 그닥 기뻐하지 않았다. 전화를 걸면 들려오는 첫 대답은 “○○는 잘 있냐”였고, 간혹 혼자 찾아가면 먼저 “○○(며느리)는 안 오고?”라고 물었으며 장난문자를 보내면 답신으로 “○○는 언제 오니?”라는 문장을 보냈다. 아들은 더이상 그냥 ‘아들’이 아니었다. 그는 ‘며느리의 남편’이었다. 놀라운 관계의 연금술(혹은 흑마술인가?).

그 연금술의 한가운데서 아들은 계속 작아진다. 어머니 앞에서는 아내가 좀더 자주 전화와 안부 문자를 하도록 설득(혹은 강제 혹은 유인)하지 못한다는 자책에 빠졌다가, 아내 앞에 서면 시어머니에게 전화할 때의 긴장과 두려움을 몰라주는 마마보이 수컷이라는 자괴감에 술잔을 기울이게 된다. 그러다 급기야 정신분열증에 걸린 사람처럼, 혼잣말을 웅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결혼으로 얽힌 시어머니와 며느리, 나아가 두 집안의 관계도 그렇다. 사소한 행동 양식도 오해를 불렀다. 아들의 어머니가 사돈댁에 제철 사과를 한 상자 주문해 보냈다. 아들의 장모님은 “고맙습니다, 사과가 무척 알차네요, 잘 먹겠습니다”라고 정성껏 문자를 보냈다. 며칠 뒤 어느 저녁 아들은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다. 볼멘 목소리였다. “어떻게 사람이 선물을 보냈는데 ‘?煉 문자 한통 보낼 수 있냐?” 낯가림이 심한 성격의 장모는 고민 끝에 장문의 감사 문자를 보냈던 것인데, 그게 오해를 불렀다. ‘시댁의 언어’를 사용하는 쪽은 감사 문자를 ‘전세금도 한푼 안 보탰는데 목에 힘주고 선물을 보냈더니 건방지게 전화가 아니라 문자만 덜렁 보낸 철없는 짓’으로 해석하고 만다. 아들이 아무리 그런 게 아니라고 얘기해봤자, 처가댁 역성들기가 될 뿐이다. 아내가 적절한 상황에서, 적절한 언어와 말투로 시어머니가 잘 납득하실 수 있도록 설명하면 좋으련만, 아내 역시 숫기 없기는 매한가지다. 아내와 어머니는 생략부호가 너무 많고 완곡어법이 지나치게 발달했으며 한 단어가 쓸데없이 많은 뜻을 가진 동음이의어가 너무 많은 외국어로 대화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들이자 남편인 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어쩔 수 없이 동시통역을 하다가 양쪽에서 뺨을 맞기 일쑤다. 그렇다고 아내한테도 서운한 맘이 없는 건 아니다.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남편을 진정 사랑한다면, 남편에게 때때로 과한 요구를 하는 어머니가 있다는 그 현실조차 어느 정도 사랑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 자문에 대한 답은, 어머니와 통화한 뒤와 아내와 이야기를 나눈 뒤 수시로 바뀐다. 어쨌든 언 발에 오줌 누기로 오늘도 대충 동시통역을 마쳤다. 동시에 큰 과제가 남아 있다. 올해 추석에 이어 내년 설 명절에 아내가 당직에 걸릴 경우, 그게 ‘명절날 전 부치기 싫어 자원한 당직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머니의 자존감과 아내의 기분을 둘 다 상하지 않는 방법으로 동시통역해야 한다. 일본어능력시험(JPT) 공부가 차라리 쉽다.

아들 그리고 남편 엠(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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