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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라이프
형식적이고 과시적인 예식의 관습 깨고 유쾌한 축제로 만든 세 커플의 특별한 결혼식 이야기

색다른 결혼식은 남들보다 더 들여야 할 비용과 시간 앞에서 좀처럼 실현되기 어려웠다. 꿈을 현실로 만들어낼 방법은 없을까? 내년 초 발간하는 책 <좋아서 하는 결혼식>(이야기나무 펴냄)을 쓰고 있는 안선희 작가의 소개로 부부가 기획하고 하객이 제작에 참여한 작은 결혼식들을 둘러봤다. 파티 같은 결혼식을 만들어낸 부부들의 비결은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간에서 식을 치르는 것이었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각 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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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3일 ‘웨딩 캠핑’

신랑은 나무와 나무 사이에 걸쳐진 줄을 타고 내려왔다. 카라 꽃송이를 들고 캠핑장 한가운데 서 있던 신부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랑을 보고 웃음과 눈물을 동시에 터뜨렸다. 2013년 6월15일 저녁 6시, 경기도 양평 신화 캠핑장에서 열린 임현수(31)·김은주(30)씨의 결혼식은 이렇게 시작됐다.

아니, 사실 결혼식은 그 전날 시작됐다고 해야 한다. ‘웨딩 캠핑’에 초대받은 손님 50명은 그 전날부터 캠핑장에 모여 함께 결혼식장을 꾸미고 밤새 웃고 떠들며 ‘결혼 전야’를 밝혔다. 산에서 연애하고 산에서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이 부부의 하객들도 대부분 캠퍼. 각자 캠핑의자와 랜턴, 해먹을 음식들을 가지고 와서 ‘웨딩 캠핑’은 자연스럽게 캠퍼들의 잔치가 됐다. 결혼식날 아침, 결혼식 디제이를 맡은 파워블로거 마늘(닉네임)이 아날로그 턴테이블에 연결한 야외용 스피커로 아침부터 음악을 틀고, 손님들은 더운 초여름날 캠핑장 한켠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하며 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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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혼선언문을 읽고 결혼반지를 주고받은 뒤 인디밴드 ‘슈가 도넛’의 기타리스트 출신인 신랑이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신부는 직접 써온 손편지를 읽는 것으로 본식은 짧게 끝났지만 전야제부터 결혼 축하 파티까지 이어진 결혼식은 2박3일이었다. 캠퍼들의 일용할 양식인 바비큐와 맥주가 돌고 돌며 결혼 파티는 그 다음날 아침 해 뜰 때까지 이어졌다.

옥탑방 트래커(blog.naver.com/octoptracker)라는 블로그로 백패커 연인과 부부의 일상을 전해온 임현수·김은주씨는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준비하며 돈을 아낀 덕에 대신 신혼여행으로 한달 동안 유럽을 여행하는 호강을 누렸다. 캠핑장을 빌리는 돈까지 합쳐서 250만원, 신혼여행에 든 돈은 1000만원. 결혼식은 이들이 살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예고편이었다. 그렇게 결혼한 부부는 주말마다 늘 산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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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 마당에서 ‘집들이 결혼식’

서창호(36)씨와 홍세정(33)씨는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 한옥을 신혼집으로 정했다. 전셋집을 공들여 고치면서 예비 신랑·신부는 집수리든 잔치든 동네에서 모두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광고기획자로 일하는 남편과 산업디자이너로 일하는 부인은 두부공장에서 찍어내듯 신랑과 신부가 말 한마디 못하는 결혼식을 싫어했다. 그래서 정했다. 신혼집에서 집들이 같은 결혼식을 올리기로.

지난 5월17일, 한옥집 대문 앞에 ‘소행성 발견 그리고 착륙’이라고 쓴 간판이 세워졌다. 남편이 이곳에서 작은 행복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자신들의 집을 소행성이라고 이름 붙였던 것이 결혼식 이름이 됐다. 손님들은 마루에서 다락까지 집안 곳곳에 걸터앉았다. 안방에선 부부가 찍은 동네 모습이, 작은방에선 집을 고치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상영됐다. 마루엔 부부의 사진들이 전시됐다. 인조잔디가 깔린 23㎡ 남짓한 작은 마당은 결혼식 무대가 됐다. 마당 한켠에 축의금을 넣는 ‘축으리금’이라는 함이 없었다면 결혼식인지 알기 어려웠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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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 캠핑장에서 
2박3일 야영 결혼식 
신혼집 차리는 한옥집 마당서 
잔잔하고 아기자기한 파티 
동네 놀이터에서 
꼬마 주민들과 한바탕 잔치

그룹 ‘아이투아이’의 나래가 축가를 부르고 신랑 서창호씨가 ‘우리 이제 연인인가요’를 불렀던 것을 빼면 결혼식은 조용하고 소박하게 흘러갔다. 집안은 동네 꽃집에서 보내온 백일홍, 달리아, 작약, 줄맨드라미로 꾸며졌고 동네 식당에서 만든 소시지, 감자튀김, 맥주가 한켠에 차려졌다. 흰색 웨딩드레스보다도 이 집에 잘 어울리는 옷을 찾던 홍세정씨는 동네 의상실에서 초록색 인견으로 만든 옷을 입었다. 늦은 오후 결혼식이 끝나고 손님들은 자정까지 마루에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린 이제 막 소행성에 도착한 거죠. 하객들도 이 공간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이해하게 되고 저희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했어요. 말하자면 우리 결혼식은 우리 이야기를 나눈 전시 같은 것이었죠.” 소행성에 터 잡은 홍세정씨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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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놀이터에서 ‘가족의 탄생’

지난 7월6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2동 한 놀이터에서 요란한 사물놀이 소리가 울려퍼졌다. 놀이터 한가운데 레드카펫 대신 깔린 하얀 벽지를 밟고 신랑 김영욱(32)씨와 신부 함화정(29)씨가 들어왔다. 진작에 미끄럼틀이며 그네는 모두 하얀 꽃송이와 풍선으로 곱게 장식된 참이었다. 목발을 짚고 식장에 들어선 신부 함화정씨는 지체장애 4급이면서 서울시 사회복지재단에서 일하고 있는 복지사다. 함씨가 5년 동안 한집에 살며 돌봐온 지적장애를 가진 나현씨가 결혼식에서 축가로 ‘아빠, 힘내세요’를 부르면서 분위기는 후끈 달아올랐다. 풍물 공연과 기타 연주, “너희들은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것 같지만 잘 살기 바란다”라는 친구들의 험담 같은 덕담, 그리고 동네 주민들과 박 터뜨리기가 진행될 동안, 놀이터에서 놀던 어린이들이나 종일 이야기를 나누던 노인들은 각자 하던 일을 계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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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랑 김영욱씨는 “식 자체는 엉망진창이었다. 다들 마음대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했다. 그래서 좋았다”고 결혼식을 돌아본다. 결혼식을 준비하며 시간과 출연자는 물론 대사까지 꼼꼼하게 적은 대본을 나눠줬지만, 막상 결혼식 당일엔 풍물을 맡은 ‘맥놀이’도, 축가 공연자도 마음대로 부르고, 심지어는 신부 화장을 맡은 사람조차 하고 싶은 대로만 하면서 그야말로 각자 좋아서 하는 결혼식이 됐다.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신랑의 아버지는 다리가 불편한 신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끝까지 식장에 나타나지 않았던 신랑 가족에 대한 선언 같은 결혼식은 아니었다. 김영욱씨는 오히려 “혈연을 기반으로 한 공동체만 득세하는 한국 사회에서 앞으로는 혈연 너머의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 같은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이 결혼식의 이름은 ‘가족의 탄생’이 됐다. 게다가 마을살이 활동가로 만나 결혼한 두 사람에게 동네 놀이터보다 어울리는 결혼식 무대는 없었다.

두 사람은 결혼식이 열렸던 놀이터 바로 뒷집에 산다. 신랑은 집안일을 도맡고, 신부는 공동체 활동을 알려주면서 새로운 가족으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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