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 태명을 닮아 자라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신기하게도 태명을 지으면서 아내와 내가 담았던 바람과 비슷한 모습으로 아이들이 커가는 것 같다.


지금 일곱 살인 첫째 딸 신영이의 태명은 동글이였다.
원만하고 조화롭게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소중한 마음을 담아 사랑스럽게 부르던 태명이었지만
신영이가 태어난 뒤로는 태명을 부르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태명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신영이의 태명을 다시 떠올린 건 둘째가 조금 자란 뒤였다.
둘째가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내나 나에게 화가 나거나 속상해 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럴 때마다 신영이가 나섰다.
"선율아, 지금 뭣 때문에 화났어? 엄마가 그림 그려줬으면 좋겠어?"라고 물은 뒤
엄마에게 달려온다.
그리고는
"엄마, 지금 선율이는 엄마가 그림 그려준 다음에 안아줘야 화가 풀릴 거야."라면서
엄마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율이가 엄마와 아빠에게 토라질 때마다 신영이는 중재자로 나섰다.
아내나 내가 선율이의 화난 감정을 무시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신영이는 중간에서 화해시키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곤 했다.
그때, 신영이의 태명이 동글이였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동글이라는 태명에 담은 바람대로 신영이는 평화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 셋 모두 나온 사진(나는 요리중).jpg

둘째 딸 선율이는 올해 네 살이다.
선율이의 태명은 동동이였는데, 그렇게 지은 이유는 그림책과 관련이 있다.
그 무렵 신영이에게 읽어주던 그림책 중에 <짧은 귀 토끼>가 있었다.
주인공이 동동이인데, 귀가 짧은 자신의 약점을 재치있게 극복한다.
그림책의 주인공 동동이처럼 씩씩하게,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갖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둘째 태명을 동동이라 지었다.
신영이의 태명인 동글이와 잘 어울린다는 점도 고려했다.

선율이는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돼!"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아내나 내가 '선율아, 그건 위험해서 안 돼.',  '지금은 시간 없어서 안 되니까 다음에 하자.'라며
'안 돼.'를 말할 때마다 선율이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돼!"
아무리 안 된다고 말해도 선율이는
'가능하다',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된다'고 말하곤 했다.
자기 의견을 좀 더 길게 표현할 만큼 말을 배운 뒤로는 "이렇게 하면 돼."라며 방법까지 말하기 시작했다.

선율이가 세 살일 때의 일이다.
하루는 아내가 처가에 가서 장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가려고 준비하는데, 
선율이가 빵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내가 '지금은 할머니 병원 가야 하니까 다음에 같이 가자.'고 하자
이렇게 대답했다.
"(병원 갔다 온 다음에) 집에 들어왔다가 나 태우고 가면 되잖아."
이 말을 들은 아내와 나는 웃고 말았다.
세 살짜리 아이가 방법을 말하면서 된다고, 가능하다고 말하는데, 
더 이상 안 된다고 말 할 수 없었다.
결국 병원 다녀온 뒤에 빵집에 함께 갔다.

처음엔 안 된다는 걸 자꾸 된다고 하는 게 고집이나 억지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돼!' 하면서 소리치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특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조그만 머리로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만드는 걸 볼 때마다 웃음이 나왔다.
그럴 때마다 '선율이는 아주 당차고, 씩씩하고, 자신감 있고, 긍정적인 아이구나.' 생각한다.
그리고 선율이의 태명 역시 예언이라도 되는 듯이 
자라는 모습에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셋째 아들 수현이의 태명은 신영이와 선율이가 지어주었다.
'신동선동이'다.
신영이 동생, 선율이 동생이란 뜻이다.
우리 부부가 따로 짓지 않고, 두 아이의 의견을 받아들여서 그대로 태명으로 썼다.
누나들의 태명에 '동-' 자가 들어가는데, 
우연히도 수현이 태명에도 '동-' 자가 들어가게 되었다.
아직 15개월이라 어떤 모습으로 자랄지 알 순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누나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동생이라는 점이다.
이것도 태명을 닮은 거라면 닮은 것일 수 있겠다.^^


'오늘의 운수'를 보고 나면 그날 일어난 일을, 자기가 보았던 운수와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오늘의 운수'가 맞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아이들이 태명을 닮아 자라고 있는 것으로 보는 내 모습 역시 '오늘의 운수'를 보고 난 사람들의 경우와 비슷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모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기대를 유지하고 싶다. 
'상대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상대의 긍정적인 행동 가능성을 높여준다'는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말처럼
아이를 보는 부모의 긍정적 시선이 가진 힘을 믿기 때문이다.

물론 아이들은 타고난 본성대로, 자유롭게 자랄 것이다.
동글이와 동동이, 신동선동이가 어느새 이만큼 자라서
세상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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