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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인터뷰;가족 중2 딸과의 대화

망설인다. 끼어들까 말까, 끼어들까 말까. 거실에서 자꾸만 거슬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만했으면 하련만, 그치지 않는다. 매일 계속되는 모녀간의 분쟁. “엄마, 내 폰 줘.” “안 돼, 집에선 안 보기로 했잖아.” “하, 짜증나.” “약속을 지켜야지.” “아니, 노트북이 안 된다고요. 폰이 필요하다고요.” “약속은 약속이야.” “하, 짜증나.” “넌 잠깐 본다고 하고 절대 안 가져오잖아.” “하 짜증나. 내 폰 달라고.” “안 된다고.” “하, 짜증나. 달라고.” 같은 말은 계속 반복되고, 나의 인내심도 바닥이 났다. 거실로 나간다. 나는 말한다. “민솔(가명)아. 그게 말이야.” “아빠! 끼어들지 마!!” “너도 약속을 지켜야지.” “아빠는 끼어들지 말라니까!!”

아빠
스마트폰 공기계 그거그거
난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네
엄마랑 왜 안 통하는 걸까?
맨날 누구 만나 뭐 하고 놀아?


공부든, 청소든, 핸드폰이든
알아서 할테니 잔소리 좀 그만
오빠랑 대화해서 이득 없고
아빠는 끼어들지 말라고요

아빠는 말이 안 통하는 존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한집에 살면서 소통할 수 없는 슬픔. 우리집에 사는 중2 여학생은 어떤 별에서 왔다. 외계인이다. 같은 한국어인데 이해가 안 된다. 모녀가, 부녀가 상호간에 정상적으로 말을 이어갈 수가 없다. 그 위기감이 이 자리를 만들었다. 말 좀 하자, 말 좀 하자고. 건설적인 대화가 아니어도 좋다. 10분 이상 말 좀 이어가보자, 딸아.

맛있는 걸 사준다고 꼬셨다. 아침 10시에 도너츠집으로 함께 향했다. 방학이라 딴 날 같으면 11시 넘어 일어났을 아이가 짜증을 내지 않을 도리가 없다. “꼭 해야 해? 잠도 못 자게 하고.” 용돈 1만원을 걸지 않았다면 중2 딸을 감히 인터뷰할 수 있으랴. 아이 몫의 차가운 버블그린티와 내 몫의 커피, 그리고 두 개의 도너츠를 앞에 놓고 부녀가 마주앉았다.

 

 민솔아.

 왜?(계속 액정이 깨진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음)

 뭐 해?

 어. 친구한테 카톡이 왔어.

 

아빠도 민솔이가 바라보는 스마트폰에 시선을 던진다. 액정이 깨진 정도가 아니다. 산산조각이 났다. 그날을 기억한다. 민솔이의 엄마는 한달 전 공구함에서 망치를 꺼내 휘둘렀다. 스마트폰 액정을 향해 사정없이 내리쳤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그걸 바라보는 민솔이의 눈길은 무심했다. 스마트폰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를 입에 달고 살던 엄마는, 받아쥔 기말고사 성적표를 보고 실성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망치부인’이 되었다. 뿌지직 깨진 스마트폰 앞에서 엄마는 비로소 자유와 안식과 평화를 얻는 느낌이었다. ‘이제 전쟁이 끝났구나.’

 

 그 스마트폰 참 명도 길다. 아니 망치로 내려치고 해지까지 했건만 아직도 들고 다니냐? 그렇게 부서진 거 들고 다니기 창피하지 않아?

 뭐 어때? 엄마는 망치로 깨고 끝인 줄 알았겠지? 해지를 해도 쓸 수 있다는 걸 몰랐을 거야. 와이파이만 되면 카톡을 할 수 있잖아. 음악도 들을 수 있구.

 그런 걸 ‘공기계’라 부른다며? 개통하지 않아도 문자와 전화만 빼고,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는 기계.

 이런 거 가진 애들 많아. 엄마한테 폰 뺏기면 친구한테 공기계 하나 빌리면 돼.

 엄마가 2G폰도 사줬는데 그것만 쓰면 안 돼?

 생각을 좀 해보세요. 와이파이만 터지면 문자가 무제한인데 왜 굳이 2G폰을 써.

 

 결국 원점으로 돌아왔다. 엄마와 딸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부숴진 스마트폰은 ‘공기계’로 부활했다. 딸은 집에서 시간을 정해놓고 ‘공기계’를 가져갔다가 숙제나 공부를 할 시간에 반납한다. 망치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딸아이가 폰을 두 개씩 갖고 다니는 결과만 낳았다. 민솔이만 그런 건 아닌가 보다. 엄마가 망치를 휘두른 뒤 민솔이를 데리고 핸드폰 대리점을 갔을 때, 직원은 아이를 살피자마자 묻지도 않았는데 2G폰을 꺼냈다. 중학생들 사정 다 안다는 눈치였다.

  

 스마트폰 공기계로 주로 뭘 해?

 난 음악을 가장 많이 들어. 주로 학원 갈 때.

 주로 뭘 듣는데?

 (뮤직플레이어 앱을 만지작거리며) 내가 6일 동안 415회를 들은 노래가 있네. 비스트의 ‘12시30분’이야. 그다음이 281회 들은 에디 킴의 ‘너 사용법’이야. 난 에픽하이와 크러쉬도 무지 좋아하는데.

 또 뭘 해?

 웹툰도 보지.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야?

 다 좋아. 하나만 꼽으라면 조석의 ‘마음의 소리’.

 카톡으로 친구랑 무슨 얘기 해?

 드라마 얘기. 요즘 <힐러> 갖고 수다 많이 떨어. 학원 얘기도 하고. 약속 잡고.

 집단 카톡을 하니?

 옛날엔 친한 친구 8명이 함께 카톡을 했는데, 요즘은 일대일로만 해.

 넌 맨날 친구랑 약속이 있더라. 뭘 하고 놀아?

 떡볶이도 먹고 도너츠도 먹고, 노래방도 가고. 아, 난 김범수의 ‘보고 싶다’ 부르는 게 젤 좋더라. 아, 노래방 가고 싶다. 친구들이랑 노래방 갈 때가 가장 행복해.

 또.

 친구들이랑 맛있는 거 먹을 때. 상 탈 때. 내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이 택배로 올 때.

 그렇게 엄마랑 말이 안 통하니?

 엄마는 절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아.

 엄마 입장에서 생각 좀 해보지?

 난 항상 숙제 한 다음에 스마트폰 공기계를 달라고 하는데….

 엄마가 싫어?

 싫지 않아. 근데 덜 했으면 하는 말들이 너무 많아.

 뭔데?

 아휴, 정말. 그걸 다 이야기해야 하나? 좋아. 말해볼게. “방 좀 치워라, 핸드폰 내놔라, 빨래 좀 널어라, 스타킹 좀 정리해라, 친구 좀 그만 만나라, 학원 늦지 마라, 그만 좀 사먹어라, 접시 좀 갖다 놔라, 일찍 자라.” 학교에서도 선생님이 이런 말들을 하거든. “쉬는 시간에 핸드폰 쓰지 마라, 복도에서 신발 신지 마라, 가방을 옆으로 매지 마라, 염색하지 마라, 화장하지 마라, 치맛단 줄이지 마라, 수업시간에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쓰지 마라, 종 쳤을 때 자리에 앉지 마라, 엎드려 있지 마라, 쉬는 시간에 과자 먹지 마라, 귀걸이 하지 마라, 아래에 떨어진 쓰레기 좀 주워라.” 헉헉. 이렇게 내가 학교에서도 잔소리 듣는데, 집에서도 들어야겠어?

 

 민솔이는 기다란 꼬리빗을 늘 손에 들고 다닌다. 스마트폰의 거울로 수시로 얼굴을 보며 앞머리를 빗질한다. 가장 신경 쓰는 건 눈화장이다. 치마를 입을 때면 꼭 얇은 살구색 스타킹을 네 개씩 겹쳐 신는다. 희한하다. 두꺼운 스타킹 하나만 신으라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검은색 싫단다. 살구색 하나만 신으면 춥단다. 의자 모서리에 걸려 스타킹 네 개의 코가 한꺼번에 나갈 때면 엄마의 속이 터진다. 민솔이는 개의치 않는다. 코가 나가든 말든 다음날 또 신는다.

 

 넌 어떻게 (두살 위)오빠랑 한마디도 안 하냐? 같은 집에서 살면서.

 말해 봤자 이득이 없잖아.

 헐. 진리다. ㅎㅎ 꿈은 옛날하고 같니? 미대 나와서 디자이너 되는 거였잖아.

 난 그림을 잘 그리지. 작년에 그림하고 글짓기로 상을 여섯 번이나 탔지 않았겠어? 스케치 선이 좋고 소묘를 잘해. 선생님이 베이스가 강하댔어. 색칠이 약하지만 앞으로 늘 거야. 디자이너는 안 하기로 했어.

 그럼 뭐?

 나 그냥 지금 다니는 미술학원의 선생님 될래.

 왜?

 애들을 가르치고, 내 미술 실력을 뽐낼 수 있고, 쉬워 보여서.

 선생님 될 거면 니가 지금 다니는 중학교의 미술선생님이 될 수도 있잖아.

 선생님 되기 힘들잖아. 학원에는 학생 많지. 또 지금 집에서 가깝지. 이 학원 분원이 무지 많아. 우리 동네서 안 되면 다른 동네 분원 선생님으로 지원하면 되고. 10개가 넘을걸.

 (어처구니없는 눈길로) 니 마음대로 하세요. 근데 얼마 전에 너 소파에서 잔 적 있잖아. 방이 너무 더럽다고. 정말 방에 갔더니 침대까지 어질러져 있더라. 와, 돼지우리. 정말 가관이었어.

 내가 알아서 치울 거야. 잔소리하지 마.

 당신은 인생의 불만이 무엇입니까?

 집이 좁은 거. 내 방 진짜 좁아. 아빠, 제발 이사 좀 가자.

 아빠는 니 성적이 바닥인 게 좀 불만인데.

 나 중간이거든.

 니 성적이 우수하지 않아도 좋아. 다만 성적이 넘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A, B, C, D, E 중에 어떻게 다 E투성이냐.

 B도 있었거든? 심지어 지난 학기에 영어는 A였다고.

 

 아이고, 의미 없다. 이런 유치한 이야기를 나눴다. 앞에서도 밝혔지만, 건설적인 대화는 개뿔. 인터뷰를 하다가 더 열불이 났다. 어라, 그런데 모르던 걸 많이 알았다. 딸이 좀더 구체적으로 보인다. 그래, 잔소리가 무엇을 해결해주랴. 스스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영원한 질문.

 

 너 아빠가 더 좋아, 엄마가 더 좋아?

 하, 짜증나. 아빠는 오빠가 더 좋아, 내가 더 좋아?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고양시에서 고양이 안 키우는 민솔이 아빠

▷ 관심 없는 아빠입니다. 딸이 몇반인지 모릅니다. 학교 담임 선생님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릅니다. 학원을 몇 군데 다니는지 모릅니다. 아무튼 아빠는 모릅니다. 그래서 딸을 인터뷰했습니다. 대화하는 새로운 가족상을 만들어가는 ‘인터뷰; 가족’은 독자 여러분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실명과 익명 기고 모두 환영합니다. 보내실 곳 gajok@hani.co.kr. 200자 원고지 기준 20장 안팎. 원고료와 함께 사진도 실어드립니다.


(*위 내용은 2015일자 1월 24일자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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