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아이를 돌보다 보니 하루 중 가장 기다리는 시간은 아무래도 아내의 퇴근 시간이다.
퇴근 뒤 아내가 함께 해주는 집안일이 특별히 많은 건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쉴 틈이 생기고, 스트레스도 털어놓을 수 있으니 둘이 있으면 훨씬 마음이 가볍다.
하지만 아내는 야근을 자주 한다.
그럴 땐 농담으로 
"나, 대기업 임원 아내랑 사는 거야?" 하고 묻지만, 
아침부터 밤에 잠들 때까지 아이들과 지내는 게 만만치는 않다.
첫째와 둘째가 유치원에서 오면 저녁을 준비해서 같이 먹고(15개월 된 막내는 먹여주고), 
놀아주거나 그림책 읽어주고,
목욕시키고, 머리 말린 뒤 재울 때쯤 되면 정말 지친다.
특히 첫째와 둘째는 딸이고, 머리가 길다 보니 머리를 말리는 데도 시간이 한참 걸린다.
머리를 기르고 싶어하는 데다 꿈이 라푼젤이라고 하니 억지로 자르게 할 수도 없다.
그럴 땐 아이들이 어서 좀 더 자라서 혼자서도 머리를 말릴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생각해보니 첫째가 벌써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되었지만
뱃 속에 있을 때는 '아이가 어서 뱃 속에서 나왔으면...'하고 바랐던 기억이 난다.
어르신들은 '그래도 뱃 속에 있을 때가 가장 편한 거야.'라고 말씀하셨지만,
아내와 나는 어서 아이가 태어나길 바랐다.
입덧이 열 달 내내 계속되는 걸 견뎌야 하는 아내나 그걸 지켜봐야 하는 나나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기만 하면, 그래서 입덧이 없어지기만 하면 세상은 천국이라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웬 걸, 어르신들 말씀이 딱 맞았다.
갈수록 태산이었다. 
아이가 조금씩 커갈 때마다 그만큼의 보살핌이 더 필요했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의 '소망 목록'은 하나씩 늘어갔다.
 
'아이가 어서 젖을 떼었으면..'
'어서 오줌을 가렸으면...'
'어서 말을 할 수 있었으면...'
'어서 혼자 머리를 말릴 수 있었으면...'

특히 첫째가 오줌 가리는 걸 배울 무렵에는 '어서 오줌을 변기에 누어야 할텐데' 하며 얼마나 조바심이 났던지...
하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아이의 괄약근이 발달하면서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변기에 누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다.
때가 되면 다 할 수 있게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부모로서 지치고 힘들거나 불안할 땐 '어서 우리 아이가 ...했으면'하고 바라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그렇지만 아이들은 지금 이대로가 사랑스러울 때가 훨씬 많다.
막내 수현이가 좋아하는 익은 양파를 주면 새끼 새처럼 입을 크게 벌릴 때,
내가 '새 연필은, 이미 깎아놓은 연필 다 쓰고 나면 깎아준다'고 하자 
네 살 선율이가 "싫어. 나 화났어." 하며 옆방으로 뛰어들어갈 때,
놀러 나간 신영이가 약속한 귀가 시간보다 늦게 들어오면서 난감하고 미안한 표정으로 "죄송해요."라고 말할 때,
아이들은 사랑스럽다.
크기변환_박수현 239.JPG

아침에 유치원에 가면서 신영이와 선율이가 서로 빠르다며 달려갈 때도,
누나들이 달려가는 동안 유모차 타고 가는 수현이가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웃을 때도,
아이들은 정말 사랑스럽다.

셋이 저마다 다른 자세로 곤히 잠들어 있는 모습도,
수현이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방문을 열고 비틀비틀하며 거실에 있는 엄마아빠를 보며 걸어올 때도,
걸어오면서 고개를 가우뚱하며 이쁜짓을 할 때도,
신영이와 선율이가 사이좋게 얘기하며 그림을 그리거나 역할을 나눠 소꿉놀이를 할 때도,
아이들은 참 사랑스럽다.

신영이가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한 뒤 자기 작품을 보여주며 수줍게 엄마 아빠의 반응을 기다리는 모습이나
내가 선율이를 안아주면 수현이가 내 품으로 파고 들거나 서서 안아달라는 뜻으로 발 뒷꿈치를 들 때 아이들은 정말 예쁘다.

15개월 된 수현이가 잠에서 깨어 기지개를 켜거나
선 채로 끄응 하며 힘을 주어 응가하느라 입 모양이 옆으로 일 자가 되며 얼굴이 붉어지는 모습을 볼 때,
그리고 의자를 밀고 가서 자기가 올라 가고 싶은 곳에 오른 뒤 환하게 웃을 때,
아이 키우는 행복을 느낀다. 

 
그런데 가끔은 신영이나 선율이의 어렸을 적 모습이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
아내랑 나는 '신영이가 수현이만 했을 때 어때더라?', '선율이 기기 시작할 땐 어땠지?' 하며,
서로 그때가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한다.
이런 경우에 비추어 보면 아직 오지 않은 젖을 떼는 시기나 오줌을 가리는 시기, 
그리고 말을 할 수 있는 시기를 기다릴 게 아니라
지금 눈 앞에 있는 아이들 모습에 더 많이 관심을 쏟는 게 부모로서 현명한 자세인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고 싶다.
때론 힘들고 지쳐서 '어서 우리 아이가 ~를 했으면...'하고 바라기도 하지만
사실 자라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아이들은 그 모습 그대로 정말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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