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창시절 보통의 여학생들과는 달리 체육시간을 제일 좋아라 했다.

비라도 내려 체육시간이 이론수업으로 대체되면 다들 환호했지만 나는 속상했다.

잘하지는 못해도 공으로 하는 운동은 거의 다 좋아하면서도 배구만은 싫어하는데,

리시브-양쪽 팔뚝으로 공을 받아내는 순간의 통증이 너무도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몇 개의 공을 받아내면 벌겋게 부풀어 오르는 양쪽 팔뚝.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아예 하고 싶지 않은 운동이 바로 배구다.

 

근데, 우리 엄마는 배구선수 출신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처럼 생활체육이 활성화 되었다면 지금까지 배구를 하셨을지도 모른다.

체육관에만 들어서면 가슴이 뛴다고 하시면서.

 

1943년생, 167Cm.

엄마는 운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당시로써는 평범하지 않은 신장이 화근(?)이었다.

단지 키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다니던 중학교 배구팀 코치에게 찍힌 것.

같은 재단 고등학교 교감 선생님이셨던 외할아버지께서도 처음에는 반대하셨으나, 자기 자식만 위한다는 주위의 비난에 항복. 결국 엄마는 중학교 3학년때 배구를 시작하셨다.

 

운동하느라 배가 고픈 배구팀원들을 이끌고 학교 앞 중국집에서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팔아 외상으로 거침없이 먹고.

월급날 학교 앞 중국집에서 월급봉투째 탈탈 털리고 귀가하신 외할아버지께서 노발대발 하시며 엄마를 찾을 때는 잽싸게 도망쳐 위기를 모면했다는 엄마의 신나는 무용담을 들을 때면 많은 생각이 들었다.

울 엄마 정말 통 크셨구나.

내가 저렇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죽지 않을 만큼 어쩌면 죽을 만큼 맞지 않았을까?

 

국가대표는 아니었지만, /고등학교 시절 전국대회 우승 경험도 있고.

소년체전 혹은 전국체전에서 금메달도 딴 실력 있는 팀 선수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아주 짧게 실업팀 선수생활도 했었으나 집(전북 군산) 떠나서는 못살겠노라 바로 귀향하셨고 배구와는 그렇게 결별하셨다.

 

1977.

국민학교 2학년이었던 나와 4,5세 연년생 남동생 둘을 두고 엄마는 배구를 다시 하게 되셨는데, ‘..공군 장교 부인 배구대회때문이었다.

일회성 대회였던 것 같은데, 박통시절 기획이다.

엄마의 남편 즉, 친정아버지가 육군 장교로 복무 중이셨는데, 전산화도 안되었던 시절에 배우자가 선수 출신이라는 것은 어찌 알고 차출을 했는지그 정보력에 지금도 혀를 내두르신다.

애를 셋이나 낳은 30대 중반의 엄마는 국가의 부름을 받고 15년 넘게 쉬었던 배구를 다시 시작했고 혹독한 45일간의 합숙훈련을 견뎌내야 했다.

 

그 기간 내게 나쁜 일과 좋은 일이 있었는데,

나쁜 일은 우리 3남매를 돌보기 위해 전북 군산에서 부산으로 오신 외할머니께서 생후 한번도 자르지 않았던 나의 긴 머리카락을 바가지 머리로 싹둑 잘라낸 것이고,

좋은 일은 나의 생일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하루는 친정아버지께서 출근하시면서 500원짜리 종이돈을 내미셨는데,

아빠가 돈을 주시는 것은 더군다나 그런 큰돈은 처음이라 정말 받아도 되는 것 인지 망설였다.

오늘 네 생일인데, 엄마도 없고이걸로 학용품이나 사라

? 생일이 뭐예요?”

우리는 그때까지 생일이라고 뭘 특별히 챙겨 주거나 한적이 없었기에 생일도 몰랐던 것이다.

어쨌거나 문방구로 달려가 연필 한 다스(12자루)를 샀던 것 같다.

 

내 생일은 8월이니 엄마는 이런 무더위 속에서 훈련을 하셨던 거다.

박통시절이라 이 대회는 전국에 중계방송까지 되어서 우리는 TV에서 엄마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우리는 그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처음엔 TV에 나온 엄마가 자랑스럽기만 했는데, 몸 여기저기 반창고와 붕대를 칭칭 감은 엄마가 몸을 던져 수비하는 모습이 점점 아프게 느껴졌다.

나의 기억에는 엄마에 대한 안쓰러움만 있는지라 이 글을 쓰면서 엄마께 확인 해 봤다.

그때 어떠셨냐고.

                                                                                                         

45일간의 합숙훈련 끝자락에 다리 부상을 입어 출전 자체가 불투명했는데 코치가 엄마의 서브를 포기 하기엔 너무 아깝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여 대회에 출전할 수 있었다고.

그 코치의 추천에 화답하듯 15 1세트에 무려 13점을 서브로 득점하셨다니 정말 무서운 실력의 선수였던 것이다.

나중에는 원활한 경기를 위해 서브 좀 살살 넣어 달라는 요청을 받으셨을 정도였다고.

결과는 당연히 육군 장교 부인회 우승!

 

국민학교 5학년.

다니던 학교에 양궁팀이 생기면서 담임 선생님께서 내게 양궁을 권하셨는데,

엄마처럼 키가 커서가 아니라 양궁장비를 마련할 형편이 될 것 같다는 다소 어이없는 이유였다.

어쨌거나 엄마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칼에 거부하셨다 운동은 안 된다고 절대 안 된다고.

훗날 1988년 나와 비슷한 이름을 가진 김수녕 선수의 활약을 보면서 한마디 하시긴 했다.

네가 그때 양궁을 했더라면김수녕 처럼 금메달을 땄을랑가?”

엄마가 배구를 하지 않았더라면, 내가 양궁을 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겠지?

 

개똥이를 비롯한 조카들이 조금 더 커서 배구공을 다룰 줄 알게 되면 할머니의 강서브를 맛보게 해 주고 싶다.

그때는 내 팔뚝이 아프더라도 꾹 참고 엄마의 서브를 받아 보리라. 기꺼이. 기쁘게.

아니다 엄마는 이미 많이 늙으셨다 더위가 가시면 배구공을 사야겠다.

더 늦기 전에. 후회하지 않게.

 

201607_엄마(용눈이오름).jpg  

- 몇년전 다친 무릎이 회복되어 제주 용눈이오름에 도전했던 엄마

 

201607_엄마(성산일출봉).jpg

- 용눈이오름에 이어 성산일출봉에 올라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엄마.

 

 

 

강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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