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495092801_20140203.JPG » 손혜정씨는 “처음엔 가진 게 엄마라는 타이틀밖에 없어서 엄마배우라고 했지만, 지금은 엄마인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한다. 어린이극을 하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고 있어도 ‘건강한 아동극’을 지켜내야 한다는 엄마의 사명감으로 꼬부랑 할머니가 될 때까지 어린이극 전문배우로 서겠다고 다짐했다.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아동극 전문가 ‘엄마 배우’ 손혜정

“엄마배우요? 정성스럽게 밥을 짓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공연을 만들겠다는 다짐을 담은 별칭이에요.”

아동극 전문배우이자 연출가, 작가까지 ‘1인 3역’을 소화하며 아동극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한 손혜정(40)씨는 늘 스스로를 ‘엄마배우’라고 소개한다. 손씨는 실제로 올해 11살, 7살, 4살, 세 아이를 둔 엄마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내가 아이들의 보호자라기보다는 아이들이 내 아동극 작업의 제일 큰 조력자”라고 했다. 세 아이를 낳고 기르는 동안 아이가 칭얼대면 업고 연습을 하고,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공연을 하러 갈 수밖에 없었던 현실 때문에 아이들은 늘 그의 첫 관객이었다. 손씨는 “내 아이의 반응을 보며 작품을 고치고 다듬다 보니 다른 아이들의 눈높이에도 맞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나 보다”고 했다.

“성인극이 완벽한 작품을 만들어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목표라면, 아동극은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며 시너지를 내는 것이 목표예요.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해야 하기에 늘 작품엔 공백이 있어야 하죠. 그 공백을 아이들과 함께 채워가는 거예요.” 손씨는 성인극과 아동극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동안 만들어 온 <달려라 달려 달달달 1>, <꿈꾸는 거북이>, <이히히 오호호 우하하>, <귀를 기울이면> 등은 모두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작품들이다. ‘일방향’이 아닌 ‘쌍방향’ 소통이 핵심인 셈이다.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는 손씨. 그는 본래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다고 했다. 컬러텔레비전이 마을을 통틀어 딱 한 대뿐인 전라남도의 한 ‘깡촌’에서 나고 자란 그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이야기꾼’으로 통했다. “책을 읽고 재밌게 각색해 친구들에게 들려주는 재미에 푹 빠졌죠.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제가 지어서 들려주곤 했어요. 친구들이 그다음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라댈 만큼 인기도 많았죠.” 누구나 부러워하는 교사의 길에 들어섰지만 끝내 배우의 꿈을 버리지 못한 그는 뒤늦게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2005년 극단 ‘마실’을 창립하면서 배우로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배우 꿈 이루려 교사직 포기 
처음엔 내 아이 둘러업고 
놀이터·유치원 다니며 공연 
전통설화에 우리 음악 융합극 
입소문 타며 아이들 사랑받아 
“캐릭터 공연 치중 현실 아쉬워” 

그러나 새로운 길이 수월할 리 없었다. “처음 <달려라 달려 달달달 1>의 대본을 완성했을 땐 불러주는 곳이 없었어요. 아이를 둘러업고 먼지 날리는 놀이터를 찾아다니며 공연을 했죠. 제가 얼굴도 안 예쁜데다 당시 굳은 결심을 한다며 삭발까지 한 탓에 아이들이 저를 보고 줄행랑을 치더라고요. 하하.” 그렇게 동네 공원, 유치원 등 닥치는 대로 ‘찾아다니는 공연’을 하다 비로소 2007년 신진지원프로그램에 선정이 돼 대학로 공연장에 발을 들였다. “지원금 700만원을 받았는데, 대관료만 1200만원이더라고요. 아동극 현실이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우리나라 전통 설화를 뼈대로 한 ‘어사 박문수’ 얘기에 전통음악을 결합한 음악극 <달려라 달려 달달달 1>은 결국 입소문을 타면서 아이들과 엄마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아동극계에 손씨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친근한 할머니(엄마)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 방식, 아이들이 직접 극에 참여하는 참여극 형식은 ‘손혜정 고유의 색깔’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어린이극도 많이 생겨나고 관객들도 크게 늘었지만, 손씨의 시름은 깊어만 간다. 대부분의 어린이 공연이 <또봇>, <구름빵>, <로보카 폴리> 등 볼거리 위주의 ‘캐릭터형 공연’이기 때문이다. “어린이극이 점점 상업화·획일화돼 가고 있어요. 보기엔 화려할지 모르지만,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워주기엔 역부족이죠. 먹거리 하나도 유기농만 고집하는 까다로운 엄마들도 공연을 고를 땐 유행만 쫓는 듯해요.” 아이들의 반응을 세심히 살피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연기를 펼치는 ‘아동극 전문배우’가 줄어드는 것도 위기감을 키우는 이유다. “제대로 된 아동극 배우가 되려면 최소 3년이 필요해요. 극단 ‘마실’이 전문배우들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왔는데, 먹고살기 힘들다 보니 배우들도 하나둘 떠나가고 있어요.”

하지만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손씨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다. 오는 13~16일에는 서울 필동 남산국악당에서 <달려라 달려 달달달 2: 수수께끼 항아리>를 공연한다. 이번엔 어사 박문수가 관객들(아이들)과 힘을 합쳐 옆 나라가 낸 수수께끼를 풀어 전쟁을 막는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가야금, 장구, 북 등 우리 악기들이 들려주는 역동적인 음악도 함께한다.

“공연이 끝나고 나면 항상 할머니 분장을 한 채 아이들을 한 명씩 꼭 안아주며 인사를 해요. 아이들에게 공연뿐 아니라 할머니의 정도 함께 나눠주고 싶어서요. 정말 할머니가 돼 분장이 필요 없을 때까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것이 제 소원이에요.” 
전석 1만2000원. (02)2261-0513.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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