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JPG » 1972년 생긴 카페 가무는 명동에 들어온 서양식 소비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다.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 서울의 오래된 카페들
서울 신식문화, 청년문화 전파자 명동과 신촌, 대학로 카페와 다방

서울 미래 유산에 선정된 카페들 중 반세기를 넘기며 여전히 문을 열고 있는 곳은 대학로 학림다방 하나뿐이다. 올해로 58년째 한자리를 지켜온 학림은 여러 세대가 함께 찾는 곳이다. 지난 1월29일 찾아간 학림다방은 대부분 다방 나이보다도 어린 손님들로 꽉 차 있었지만 클래식 음악만을 틀고 2층 다락 난간이 음악가들의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는 다방 풍경은 여전했다. 학림다방 이충렬 대표는 “1987년 다방을 인수할 때쯤 음반사에서 준 달력사진을 붙인 건데 세월이 지나니 그대로 두기만 해도 앤티크가 되더라”고 웃었다.

그러나 카페가 추억만을 파는 곳이 될 수는 없다. 십수년 전 만들어진 학림다방 로얄 블렌드 커피는 반세기 만에 다방 이미지를 새로 썼다. 7잔 분량의 커피를 한잔에 우려낸 로얄 블렌드 커피는 학림다방 유학파 손님들이 외국 에스프레소 커피를 찾자 이 대표가 만들어낸 ‘한국식 에스프레소’다. 로얄 블렌드 커피는 뜻밖에 쓰지 않고 구수하고 신맛이 감돌았다. 조금 지나자 정신이 번쩍 들기 시작하며 기운이 불끈 치솟았다. 수십년 세월의 부침을 이겨온 학림다방의 커피는 이렇듯 셌다.

학림다방이 대학로 청년 시절을 구가할 무렵 신촌 카페에도 젊은이들이 모였다. 그중 지금까지 문을 닫은 적이 없는 곳은 1975년 시작한 커피전문점 미네르바다. 1월30일 밤 여전히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미네르바 문을 열자 가운데 테이블에서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커피를 마시는 부부가 눈에 띄었다. 미네르바 주인인 현민선(52)씨는 “연애 시절 주로 여기에서 만났던 부부인데, 아이들에게 사이펀 커피를 보여주고 싶어서 데려왔다고 하더라”고 귀띔했다. 사이펀 커피는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와서 원두를 적시고 다시 내려오는 방식으로 추출하는 커피다.



7.JPG » 올해로 40년째를 맞는 신촌 커피전문점 미네르바.
2000년부터 이 가게를 인수한 현씨는 “처음에 커피 좋아하는 한 연세대 대학원생이 친구들과 카페를 열었다고 들었다. 물도 나오지 않아 물통에 물 길어가며 사이펀 커피를 만들었는데 그게 대박이 났다. 예전엔 손님들이 밖에서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가 손님 한명이 나와야 들어가는 식이었다”고 미네르바의 전성기를 전한다. 주인 말에 따르면 “신촌에서 독수리다방은 이정표였다면 미네르바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단다. 아지트에 숨어서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을 듣고 한국엔 희귀했던 사이펀 커피를 마셨던 사람들이 “여기가 아직 있냐”며 요즘 다시 온다. 현민선씨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는 신촌에서 미네르바라도 계속 있어야겠다. 건물이 헐리지 않는 한 카페를 닫을 수가 없다”고 했다.

명동에선 대학가 문화와는 다른 종류의 커피 문화가 꽃을 피웠다. 명동 패션거리를 지나 한 골목에서 마주 보고 있는 카페 가무와 카페 포엠은 1972년부터 같은 자리를 수십년 동안 지켜온 명동의 터줏대감이다. 명동이 소비의 중심지였던 시절이 그들의 전성기였다. 카페 가무에서 35년 동안 일했다는 직원은 “그때 이 카페는 대한민국 상위 10퍼센트가 모이던 곳이었다. 대학 나온 여자들, 기업 회장이나 은행 간부들이 주요 손님이었다. 그래도 손님이 워낙 많아 한명이라도 더 앉을 수 있도록 긴 벤치와 기다란 테이블을 두어 처음 본 사람들이 마주 앉아 차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천장과 벽은 온통 금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었다. 그때 참 예뻤다”고 회상했다.


8.JPG » 비엔나커피 또한 1972년 명동에 들어온 서양식 소비주의의 상징이다.
한국에 막 도착한 서양식 소비주의의 상징은 비엔나커피였다. 직원이 말하길, 지금은 커피 한잔에 커피가 80그램 정도 들어가는데 당시엔 3배를 넣었다고 했다. 여기에 생크림과 설탕을 듬뿍 넣었다. 달고 양이 많고 진하면 최고라고 알았던 시절이다. 다방에서 커피값이 보통 30원이었던 시절, 카페 가무는 100원을 받았다. 지금으로 치면 2만원짜리 커피인 셈이다. 커피값이 과한가 싶어 핫케이크를 함께 냈다. 카페 가무에선 지금도 가장 잘 팔리는 비엔나커피를 시키면 조각 케이크가 함께 나온다. 70년대만큼은 아니라지만 여전히 달았다. 이제는 긴 벤치를 치우고 예스러운 의자와 테이블을 놓았다.

여전히 고풍스러운 인테리어를 고수하고 있는 카페 가무에 비해 카페 포엠은 여느 커피전문점과 비슷했다. 부모님에 이어 카페 포엠을 지키고 있던 며느리 이상미(41)씨는 “예전엔 작가와 화가들이 많이 찾았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젊은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포엠이라는 상호는 지켜왔지만 인스턴트, 헤이즐넛, 에스프레소, 원두커피 등 커피 유행을 따라잡으며 운영해왔다”고 전했다.

비슷한 시기 전혀 다른 처지의 청년들이 마시던 커피도 아직 남아 있다. 서울 청계천 통일상가 건물 2층에 있는 명보다방도 40년을 넘긴 찻집이다. 재단사 전태일이 동료들과 바보회를 만들었을 무렵 자주 모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십년쯤 전에 이곳을 인수한 이지영(55)씨는 “아침 7시30분 문을 열면 새벽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상인들이 쉬었다 간다.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11월엔 외국에서 돌아온 교포나 외국인 노동자들까지 들러본다. 나는 명보다방 역사는 잘 모르지만 손님들은 내가 오래 이곳에서 장사했다는 이유만으로 내게 고마워한다”고 했다. 테이블마다 기린표 성냥갑이, 계산대엔 전 주인들이 쓰다 간 오래된 전화기 3대가 쌓여 있었다. 마담이 커피 마신 손님과 담배 시킨 손님을 구별하기 위해 놓는 비표들에 먼지가 쌓일 만큼 다방은 한가했다. 이씨는 “이젠 가게마다 뜨거운 물이 나오는 정수기가 있어서 굳이 다방을 찾질 않는다. 그래도 중요한 계약이나 담판을 지을라치면 여기로 온다”고 했다. 상인들이나 노동자들이 주로 찾는 이곳의 커피는 3000원. 네 종류의 인스턴트커피를 섞어서 끓여낸다는 그야말로 다방 커피다. 가난하고 오래된 커피의 맛도 똑같이 달고 썼다.

글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신문 2014년 2월 6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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