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매거진 esc] 커버스토리
여름철 별미 시원한 물회 본고장 포항·장흥 맛집 탐방…고추장·된장 등 앙념장 다양, 한우도 물회로
물회는 어부의 애환이 촘촘히 박힌 음식이다. 고된 노동을 마친 어부들이 주린 배를 채우려고 잡고 남은 생선에 장을 넣어 쓱쓱 비비고 맹물과 밥을 넣어 먹은 한 끼 식사였다. 점심나절이면 밥은 차갑게 식었다. 뱃사람들의 거칠고 투박한 음식이 이제는 냉면만큼이나 여름을 대표하는 먹거리로 인기다.

포항이나 장흥 지역민들의 증언과 기록을 살펴보면 물회는 60년대 바닷가 마을을 중심으로 번성했다고 한다. 딱히 돈을 받고 파는 음식이 아니라 집에서 손쉽게 만들어 먹은 가정식이었다. 경남 포항, 전남 장흥, 제주도 서귀포, 강원도 속초 등 물회가 유명한 지역 대부분이 바닷가인 이유다. 물회의 고향이라고 자부하는 포항과 된장물회가 발달한 장흥을 지난 8일과 9일에 다녀왔다.

‘마라도회식당’ 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마라도회식당’ 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포항물회, 비벼야 제맛!

이걸 비벼야 되나! 비비고 물을 부어야 하나! 물을 붓고 비벼야 하나! 밥을 넣어야 하나! 국수를 말아야 하나! 포항시 영일대해수욕장 인근 설머리지역(포항시 두호동과 환호동 일대)의 물회전문점 ‘마라도회식당’의 도다리물회는 여행자를 심각한 고민에 빠뜨린다.

여름이 되면 포항의 웬만한 횟집에는 물회가 있다. 설머리지역과 구룡포항, 죽도시장과 북부시장에는 전문점이 몰려 있다. 설머리지역에만도 25곳이 넘는다. 문 연 지 30년이 넘은 마라도회식당. 주문을 하자 흥건한 국물에 활어가 폭 담긴 물회가 아닌, 비빔밥 같은 물회가 나온다. 김 가루, 미나리, 파가 그릇에 깔리고 그 위에 잘게 자른 도다리가 수북하다. 고추장도 눈에 띈다. 푸짐한 깨소금도 특징이다. 주인 손휘준(55)씨는 “원래 포항물회는 비벼 먹는 것”이라며 “어부들이 빨리 먹으려고 물을 넣어 후루룩 먹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을 따라 한참 숟가락으로 비비자 달콤한 하얀 배가 매콤한 고추장과 자웅을 겨룬다. 60년대 포항물회는 각종 잡어, 고추장, 참기름, 마늘, 설탕, 얼음 등이 재료였다. 식초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것을 비벼 먹다가 맹물이나 밥을 넣었다.

‘돌고래회식당’ 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돌고래회식당’ 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영일대해수욕장 초입에 있는 ‘별미복별미회’의 종업원은 “본래 포항물회는 비벼 먹는 것”이라면서 물과 같이 먹고 싶다면 맹물을 그냥 부으라고 한다. 물이 들어가기도 하고 아니기도 했던, 비벼 먹던 물회가 본격적으로 ‘물’과 만난 것은 대략 15년여 전이다. 이른바 ‘육수’라는 것이 생겨나면서부터 어느 식당이나 육수가 같이 나온다. 육수는 숙성시킨 고추장과 매실엑기스나 설탕, 물을 섞고 배와 사과, 양파, 식초 등을 갈아 넣은 것이다. 손씨는 “요즘 젊은층이 좋아하는 새콤하고 매콤한 맛”이라며 “사이다를 넣는 집도 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다”고 한다. 서울 등지에 퍼진 포항물회는 이 육수를 탄 물회다. ‘돌고래회식당’ 주인 황학준(62)씨는 “초고추장을 탄 물회는 포항물회가 아니다”라며 “숙성시킨 고추장으로 맛을 낸 것이 진짜”라고 말한다. 손씨가 알려주는 물회 먹는 법은 비벼서 생선을 한껏 즐기고 난 다음 국자로 육수를 2번 부어 먹는 것. 기호에 따라 밥이나 국수를 넣어 먹으라고 한다. 물회의 짝으로 국수가 등장한 것은 5~6년 전부터다. 면 애호가들이 늘면서 생긴 변화다. 도다리, 가자미, 광어, 우럭 등의 흰살 생선이 주재료지만 북부시장의 ‘새포항물회집’처럼 비릿한 고등어를 넣는 곳도 있다. 선술집 ‘자갈치아지매’를 운영하는 지역주민 강연수(52)씨는 “포항 사람들은 주로 북부시장 가 물회를 먹지, 설머리나 구룡포 일대는 안 간다”며 “그곳은 주로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고 말한다.

뱃사람의 주린 배 채우던 거친 음식
본고장에선 냉면 앞선 여름음식으로
맹물 부어 먹다가
새콤달콤 육수로 맛내

‘시장횟집’ 도다리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시장횟집’ 도다리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북부시장은 1955년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재래시장이다. 80년대 활어와 고추장, 물만으로 맛을 낸 물회집이 번창했던 시장이었다. 2000년대 포항시청이 남구 대잠동으로 이전하고 영일대해수욕장이나 구룡포 일대가 관광지로 개발되면서 북부시장은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부시장 일대의 ‘포항특미물회’, ‘오대양물회’, ‘새포항물회집’ 등은 명성이 자자해 여전히 찾는 이들이 많다. 아침 7시에 문 연 북부시장의 ‘시장횟집’은 주문을 하자마자 작은 수족관에서 도다리를 냉큼 잡아 식탁에 내온다.

포항물회를 거론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가 있다. 1960년대 최초로 포항물회를 상품화해 식당 ‘영남물회’를 연 허복수 할머니다. 자타공인 포항물회식당의 원조다. 1991년 한 일간지는 허 할머니가 1961년에 개업했다고 보도했으나 그의 셋째 아들인 김태식(57)씨는 사업자등록증을 낸 1967년이 정확한 개업 시기라고 말한다. 그는 “10년 전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의 제조법은 아내 전경화(50)와 내가 그대로 배워 운영한다”고 한다. 아들이 기억하는 허 할머니는 솜씨가 좋은 여장부였다. “어머니는 유과부터 소고기국밥까지 못 하시는 것이 없었다. 동네잔치 때마다 불려가 큰 잔칫상을 턱턱 만들어내셨다”고 한다.

‘원조영남물회’ 물회
‘원조영남물회’ 물회
모자는 물회집을 운영하면서 해물탕집, 한식뷔페식당 등을 열어 사업을 확장하다가 1994년에 영남물회를 닫았다. 해물탕집과 뷔페식당 운영만도 힘에 부쳤다. 지금 김씨는 6년 전에 재개업한 ‘원조영남물회’만 운영한다. 다른 곳과 달리 마늘이 많이 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구수하다! 장흥 된장물회

‘싱싱회마을’ 된장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싱싱회마을’ 된장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장흥삼합’(소고기, 키조개, 표고버섯을 같이 구워 먹는 것)으로 유명한 전남 장흥군은 요즘 물회를 찾는 관광객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매콤한 물회가 지겨운 이들이 이곳에서 만나는 물회는 누런 된장이 자박자박하게 들어간 된장물회. 장흥읍에서 ‘싱싱회마을’을 운영하는 강기원(58)씨는 “한여름이면 앉을 자리가 없다”며 “본래 바닷가인 회진면의 된장물회가 유명했는데 17년 전에 그걸 배워서 읍내에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된장을 푼 물에 오이, 고추, 파프리카, 활어가 가득 들어 있어 마치 어족이 풍부한 바다에서 고기를 신나게 건져 올리는 듯한 기분이 든다. 가장 큰 특징은 시큼한 열무김치가 주재료라는 것. 식초를 따로 넣을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는 “원래 전남은 된장을 많이 먹었다. 돼지고기주물럭도 된장으로 버무렸다”며 “전라도 김치 하면 열무김치다. 시간이 오래 지나도 모양새가 흐트러지지 않아 좋다”고 한다. 그는 “다른 지역에는 해삼, 멍게, 소라 등을 넣은 물회도 있다던데, 우리는 여름에 갯장어(하모)물회가 있다”고 자랑이다.

장흥 회진면의 ‘우리횟집‘의 주인 안재만씨가 물회를 만들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장흥 회진면의 ‘우리횟집‘의 주인 안재만씨가 물회를 만들고 있다. 사진 박미향 기자
‘우리횟집’의 된장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우리횟집’의 된장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그가 원조 식당이라고 알려준 회진면의 ‘우리횟집’도 물회의 모양새는 다르지 않다. 허리가 휘어 구부정한 안재만(73)씨는 “아버지가 드시는 것을 보고 24년 전에 식당을 열었다”고 한다. 도다리회, 매실식초, 설탕, 집에서 담근 열무김치와 된장이 맹물을 만나 흥건하다. 이 집 물회에는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회진면에서 3분 정도 차로 달리면 삭금마을(진목리)이 나타난다. 지역민들은 삭금마을이야말로 장흥 된장물회의 출발지라고 말한다. 현재는 삭금횟집 등 4군데만 영업을 한다.

‘명희네’ 한우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명희네’ 한우물회. 사진 박미향 기자
‘용궁횟집’을 운영하는 삭금마을 박종호(53) 전 이장은 “우리 동네는 쑤기미(수심 200m 미만 연안의 모래나 진흙바다에 사는 작은 생선)로 만든 된장물회가 유명하다”며 “지금이 딱 먹을 철”이라고 한다. 장흥삼합도 군민이 합동해서 개발했듯이 장흥군은 최근 독특한 물회를 세상에 내놨다. 장흥읍 토요시장 안 ‘명희네음식점’의 주인 최명희(60)씨가 앞장서서 한우물회를 판다. 된장물에 오이, 파프리카 등의 채소와 기름기가 없는 한우 우둔살이 올라가 있다. 매콤한 초고추장 국물을 살짝 얼려 한우 생고기와 비벼 먹는 서울, 경주 등의 한우물회와는 사뭇 다른 맛이다.

포항 장흥/박미향 기자 mh@hani.co.kr

포항·장흥 맛집 정보

포항

● ‘마라도회식당’은 에스비에스 <생활의 달인>물회 편에 주방장이 출연해 유명해졌다. 주방장이 개발한 최강달인물회(2만2000원), 도다리물회(2만5000원) 등.(포항시 북구 두호동 158번지/054-251-3850)

● 별미복별미회의 도다리물회(1만5000원)는 육수가 아예 나오지 않는다. 재료가 많이 들어간 비빔밥을 비벼 먹는 것 같다. 생선지리국과 5가지 반찬이 나온다.(포항시 북구 중앙동 삼호로 168/054-247-3727)

● 돌고래회식당은 도다리물회(1만5000원) 한가지로 포항의 전통식 물회와 육수가 나오는 물회을 골라서 주문할 수 있다.(포항시 북구 두호동 167번지/054-252-7000)

● 포항 최초의 물회 전문점인 ‘원조영남물회’는 창업자 허복수 할머니의 아들 김태식씨가 전통을 이어 물회를 판다. 1만2000~1만5000원.(포항시 남구 대도동 147-5/054-273-3232)

● 고등어물회가 있는 ‘새포항물회집’와 ‘포항특미물회’, ‘오대양물회’ 등은 포항시 북부시장의 대표적인 물회 전문점으로 지역민들이 자주 찾는 식당들이다. ‘시장회집’ 등 시장 안의 다른 식당들도 물회를 판다.

장흥

● ‘싱싱회마을’은 여행객이 많은 횟집으로 구수한 된장맛과 넉넉한 양의 된장물회(4인분 4만원)가 인기다. 여름에는 갯장어물회도 판다.(장흥군 장흥읍 건산리 720-62/061-863-8555)

● ‘우리횟집’은 장흥된장물회 원조 식당으로 알려진 곳으로 70대의 안재만씨가 운영한다. 1만원인 된장물회는 소박하고 정겨운 맛이다.(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1902-2/061-867-5208)

● 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바닷가에는 ‘남촌횟집’, ‘충성횟집’, ‘삭금횟집’, ‘용궁횟집’(장흥군 회진면 진목리 195-19/061-867-0981)이 붙어 있다. 쑤구미(수심 200m 미만 연안의 모래나 진흙바닥에서 사는 생선)물회가 유명하고, 장흥된장물회의 출발지다.

● ‘명희네음식점’은 한우 산지로 유명한 장흥의 한우를 각종 채소로 버무린 한우물회를 판다.(장흥군 장흥읍 예양리 195/061-862-3369)

박미향 기자

(*위 내용은 2015년 7월 15일 인터넷한겨레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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