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회사에서 매주 수요일은 가정의 날, 오후 6시가 넘으면 바로 짐을 싸야 합니다.

야근을 줄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자는 취지로 도입된 이 '가정의 날' 제도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컴퓨터 온오프 여부, 전력차단 여부까지 점검할 정도입니다.

엄마는 지방근무 중... '칼퇴근' 하면 뭐하나...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독신자들'(결혼을 해서 가정은 있지만 가족과 떨어져 근무하는 직원을 말한다)끼리 모여 밥먹고 한잔하기도 하고,  운동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영화가 땡겼습니다. 뿔룩뿔룩 터질것같은 멋진 근육의 휴 잭맨이 나오는 <엑스맨>이 너무 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라는 부제가 얘기해주듯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보이는 엑션과 꽤 탄탄한 스토리, 오늘 선택 좋았다라고 생각하며 정신 없이 보고 있는데 찌릉찌릉 휴대전화 벨이 계속 울립니다. 아이 참 누구래….

'천안엄마'(아이들을 돌봐주시고 계시는 우리 시어머님)

한 번 무시, 두 번도 무시, 그리고 또 무시할까 하다가 꼬부랑 할머니처럼 기어나가 전화를 받았습니다. 일곱살 둘째아이입니다. 할머니 전화로 울먹울먹 코까지 들이마시며 "여보세요" 하더니 일본으로 출장간 아빠가 보고 싶다고 합니다.  '나두 보고 싶다 이녀석아... 그래두 좀 끊으면 안되겠니? 돌연변이들 신나게 싸워주는 장면에서 나왔는데, 빨랑 좀 들어가서 보고 싶다구...' 빨리 끊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꾹 참고 들어봐 줍니다.

요지는 '아빠 빨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어쩔 수 없이 금요일에나 올 수 있다는 것을 알지만, 왜 매일 퇴근하던 아빠가 외국 출장을 가서 안 들어오냐는 것으로, 토요일이면 도착한다는 말에 "일주일은 금요일에 끝나는 거 아닌가요?"란다. 나와 내 남편은 주말 부부 10년 차 그리고 주말엄마 6개월 차의 따님답게 금요일이면 엄마 아빠가 모이는 날이라는 것을 잘 아는 그녀.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니까 금요일 저녁에 칼퇴근하라고 하세요!"

헉, 월급쟁이 따님 티가 너무 났습니다. '칼퇴근'이란 전문용어(?)를 자연스럽게 쓰는 녀석. 그 말에 피식 웃었지만, 괜히 서글퍼집니다. 

칼. 퇴. 근!

엄마 아빠가 모두 일하는 맞벌이 가족이라도 이렇게 4시간 이상 거리 장거리 주말가족이 아니어서, 칼퇴근하면 해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가 그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저녁. 삶이 있는 그런 저녁.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요?

다시 영화를 보러 자리에 가 앉아 시원스럽게 부수고 싸우는 장면을 보면서 머리로는 딴 생각이 듭니다.
네 말대로, 그래 딱 네 말대로 언제나 "칼 퇴근 하라고 하세요!"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음 좋겠다.

 

※ 주말엄마, 이제 많이 남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동안 엄마를 찾는 전화가 일상적이고 소소한 일들이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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