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임도 학대다.' 

깨끗한 환경에서 잘 먹이고 잘 씻기고 잘 재우는 육아에서 나아가 더 좋은 교육환경을 고민하는 요즈음, 기본에도 못 미치게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한겨레신문사와 굿네이버스가 공동기획한 '방임도 학대다' (상) 기사입니다. 

132205351269_20111124.JPG
» 지난 21일 집 안이 엉망인 전북의 한 가정집에서 승미(왼쪽)와 승철이 남매가 하릴없이 텔레비전을 보거나 혼자서 놀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잘 씻지도 먹지도 배우지도… 
악취·파리떼 날리는 집에서
보듬어줄 품도 없이 또 하루
4살 아들 ‘성장장애’ 진단에
치료커녕 단체 도움도 거부
“때리지도 않는데 웬 학대냐”

올해 4살인 승철(가명)이는 아직도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한다. “어버바, 어바이…으앙~”이라는 알아듣지 못할 말과 울음으로 간신히 의사를 표현할 뿐이다. 키는 60~70㎝ 남짓에, 몸무게도 10㎏이 채 안 되고, 아직 용변을 가리지 못해 기저귀를 차고 다닌다. 언뜻 보기엔 이제 갓 돌을 넘긴 아기일 뿐이다. 어디서 다쳤는지 이마가 깨지고 앞니가 부러진 승철이는 콧물이 뒤범벅된 채 맨발로 마당을 서성이다 낯선 사람을 보자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보챘다.

132205351292_20111124.JPG
승철이 누나 승미(7·가명)는 아직 제 이름도 쓰지 못한다. 3주째 감지 못한 머리가 자꾸 눈을 찌르는지 아프다며 충혈된 눈을 연방 비벼대던 승미는 기자가 빵과 귤을 건네자 번갈아 허겁지겁 입에 넣었다. 승미는 “아침엔 밥에 김치만 먹어 배가 고프다”고 했다. 승미 역시 때에 잔뜩 절어 있는, 철에 맞지 않는 얇은 바지와 티셔츠 한 장을 걸치고 있었다.

승미와 승철이 남매는 전북의 한 농촌 마을에 산다. 30여가구가 사는 이 마을에 어린아이는 승미와 승철이밖에 없다.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진 지난 21일 남매의 집을 찾았을 때,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더러운 흙집에는 때아닌 파리가 들끓었다. 반찬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냉장고에는 아이 키우는 집에 흔한 우유 한 병조차 없었다.

남매의 아버지 이병석(46·가명)씨는 “정신지체가 있는 아내가 승철이를 낳고 가출한 뒤 혼자서 아이들을 기르느라 힘들다”고 했다. 이씨는 “근처에 사는 친척이 아이들을 돌봐준다”고 했지만, 남매는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된 듯 보였다. 몇 년 전 사고로 머리를 다친데다 팔마저 불편하다는 이씨는 “아이들 앞으로 다달이 나오는 기초생활수급비 50여만원이 수입의 전부”라며 “가끔 이웃의 논·밭일을 거들어주고 쌀을 얻어다 먹는다”고 했다.

“승철이가 벌써 4살인데, 왜 말을 못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그는 “아이가 늦돼서 그러지 뭘…”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그러나 승철이는 지난해 10월 이미 ‘성장장애’(사립체 질환)라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이런 사정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 이씨는 “애들이 아픈 곳 없이 건강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지난해 11월 아동보호전문기관 굿네이버스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승철이가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했지만, 이씨는 “고구마 캐는 이웃을 돕기로 했다”는 따위 핑계를 대며 4번씩이나 승철이의 진료예약을 펑크내버렸다.

“아이들을 좀더 잘 돌볼 수 있도록 보호시설에 맡길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지만, 이씨는 “아버지가 있는데, 왜 아이들을 떼어놓느냐”며 “사정이 좀 어려워 그렇지, 아이들을 굶기진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1년 반 전쯤 이웃 주민의 제보로 승미·승철이 남매의 방임 사실을 파악했다는 굿네이버스 관계자는 “아이들이 전형적인 ‘방임학대’를 당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아이들을 때리는 것도 아닌데 웬 학대냐’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방임학대를 인정하지 못하니 개선책을 내놔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환경에선 아이들이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 결국 또다시 저소득층으로 전락하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 기자에게 승미는 “나도 예쁜 언니 따라서 서울 가면 안 돼?”라고 속삭이듯 물었다. “동생은 어쩌고?” 기자가 되묻자 승미는 “동생도 데리고 갔으면 좋겠다”며 “서울에 가면 맛있는 케이크를 잔뜩 먹고 싶다”고 말했다.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관련기사]

- ‘보이지 않는 폭력’ 방임·정서학대가 70%

- 학대 의심신고 ‘129’ 신원 안밝혀도 가능

-(하) 학대 처벌 ‘솜방망이’…예방적 아동보호 시급


  • 싸이월드 공감
  • 추천
  • 인쇄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수sort
1116 [자유글] 결코 가볍지 않았던 후두염 imagefile [10] 강모씨 2012-07-28 7994
1115 [자유글] 설이라... 설에 분주한 이 곳 imagefile [4] 난엄마다 2014-01-29 7958
1114 [자유글] 내 몸 안전이 행복 시작…세월호 참사 보며 깨달았죠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9-16 7899
1113 [자유글] EBS다큐프라임 <아버지의 성> 남편하고 꼭 함께 보세요 imagefile [2] jenifferbae 2012-12-06 7895
1112 [자유글] 시 읽는 엄마 - 얼굴 imagefile [3] 살구 2014-12-06 7855
1111 [자유글] <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 따라잡기 imagefile [10] 강모씨 2015-10-10 7850
1110 [자유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아들~ [6] sejk03 2011-12-22 7826
1109 [자유글] ‘유아용 수면 포지셔너’ 사용시 주의하세요~ imagefile 김미영 2010-10-04 7811
» [자유글] 가출한 엄마·무심한 아빠…어린남매는 오늘도 “배고파요” image 베이비트리 2011-11-24 7802
1107 [자유글] [정보] 꼬마 버스 타요 운행 정보 확인할 수 있는 곳 image [2] 양선아 2014-03-28 7798
1106 [자유글] [토토로네 미국집] 어른들의 실천, 미국의 안전 울타리 imagefile [6] pororo0308 2014-04-26 7741
1105 [자유글] 밀당의 고수 : 알고도 당하는 둘째의 말솜씨 imagefile [6] 윤기혁 2016-04-30 7729
1104 [자유글] 9세 남아 개똥이의 유머 [1] 강모씨 2018-12-31 7687
1103 [자유글] 레이퀸 출산공모전 응모하세요! imagefile akohanna 2010-07-21 7679
1102 [자유글] 회식의 계절 그리고 건배사 imagefile [3] 양선아 2012-12-01 7672
1101 [자유글] [70점 엄마의 쌍둥이 육아] 나이많은 엄마와 동네모임 [3] 까칠한 워킹맘 2013-08-24 7644
1100 [자유글] 대안학교도 아닌데…다양한 수업에 지필고사 없어 imagefile 베이비트리 2014-07-01 7641
1099 [자유글] 아이의 갑작스런 수술, 그리고 병원 이야기 imagefile [15] 안정숙 2014-02-08 7633
1098 [자유글] [설문조사]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에 대한 여러분의 생각은? imagefile [7] 양선아 2015-06-30 7631
1097 [자유글] 나는 붕어빵^^ imagefile [4] 윤영희 2013-11-08 7601

인기글

최신댓글

Q.아기기 눈을깜박여요

안녕하세요아기눈으로인해 상담남깁니다20일후면 8개월이 되는 아기입니다점점 나아지겠지 하고 있었는데 8개월인 지금까...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