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트리 게시판에 육아 이야기를 쓰면서 좋은 점이 여러 가지가 있었다.
육아 이야기를 꾸준히 쓰게 되었고,
아이들의 모습이나 아이들과 부모의 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럴수록 아이들은 더 예쁘고, 기특해 보였고,
아내와 내가 잘 하고 있는 것, 더 신경써야 할 것들도 보였다.
그런데 공개 게시판에 글을 쓴다는 건 한편으론 부담스럽고, 창피한 일이기도 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좋은 일만 있는 게 아니고, 항상 잘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글은 나의 존재와 현실을 반영하는 진솔한 것일 때 의미있는 거라 믿기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는 육아와 가정 생활의 어두운 면에 대해서도 쓰지 않을 수 없다.
나의 현실인 이상 그 현실에 눈 감지 않고, 치부까지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글쓰기로부터, 그리고 삶으로부터 배우는 자세일 것이다.
 
 
서론을 길게 쓰는 걸 보면 나에게 있어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닌가 보다. 
그도 그럴 것이, 부부 싸움에 대한 이야기 아닌가?
부부싸움(출처-네이트 지식).jpg
(출처: 네이트 지식)
 
이야기의 이해를 돕기 위해 미리 밝혀둘 게 있다.
첫째는 부부 싸움의 수위 문제다.
일단 싸우면 냄비와 그릇을 던지며 싸우는 부부도 있고,
폭력을 행사하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우리 부부는 어느 쪽인가 하면 서로에게 서운하거나 화난 걸 말하고,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잘 안 풀릴 때,
가끔 3일 정도 말 안하면 아주 심하게 싸웠다고 표현하는 수준이다.
둘째는 부부의 역할 문제다.
내가 육아휴직한 뒤로 우리집에서 남편과 아내의 일은 일반 가정의 역할과 거의 반대다.
즉, 육아, 식사, 빨래, 설거지, 청소 등 집안일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다.

어제 아이들과 함께 실내 놀이터를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예전에 차의 앞유리에 금이 가 금이 더 진행되지 않도록 보수를 해둔 게
효력이 다 했는지 금이 더 생기기 시작했다.
워셔액도, 분무 장치가 고장났는지 나오지 않았다.
아내가 말했다.
"내가 내일 출근할 때 차 두고 갈테니까 자기가 수현이 데리고 나가서 수리해 올래?"
아내의 이 말에 난 기분이 상했다.
'내가 집안일을 맡고 있고, 아내가 주로 차를 쓰는데,
애까지 데리고 나더러 차를 수리해 오라니?'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다.
"당신이 휴직하고 있을 때 나는 차를 내가 주로 썼고,
차를 수리하거나 점검해야 할 때 당연히 내가 갔는데,
당신은, 내가 휴직하고 집안일을 하고, 당신이 직장 나가면서 차를 주로 쓰는 상황에서
나한테 차를 수리해오라 하니까 기분이 안 좋은데? 
내가 가면 애까지 데리고 가야 하지만 당신이 가면 혼자 금방 다녀오면 되잖아."
그러자 아내도 발끈했다.
"당신은 내가 차 수리하러 나가기 싫어서 당신한테 떠넘긴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오히려 당신이 애 셋 데리고 있는데,
내가 차 고치러 갔다가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힘들어지니까
차라리 당신이 차를 고치러 가고, 내가 퇴근을 일찍하는 게 당신에게 더 편할 거라 생각해서 그렇게 말한 거야.
어떻게 하는 게 당신을 더 배려하는 건지 생각하다가 말한 건데...
당신은 내가, 싫어하는 일을 당신한테 떠넘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아."

여기까지 대화가 오가다가 내가 더 말을 하지 않으면서 대화는 중단되었다.
아내의 말처럼 나를 배려해서 그런 제안을 한 거라면 고마운 일이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아내가 자기가 하기 싫은, 차 수리 같은 일을
내가 해주길 바란 게 아닌가?'하는 의혹이 남아 있었다.
내가 가진 의혹을 다시 아내에게 물어서 의혹을 해소하든지,
사실을 확인하든지 했더라면 오해가 풀렸겠지만,
어쩐지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냉전이 되고 말았다.
흔히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말은 부부 싸움이 끝난 뒤에라야 할 수 있는 말이거나
남의 부부 싸움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다.
부부 싸움의 한가운데 있을 땐 칼로 물 베기가 아니라
물로 칼 베기처럼 해법이 보이지 않는 게 또한 부부 싸움이다.

그 뒤로 아이들과 실내 놀이터에 갔고,
엄마아빠의 냉전 기류를 눈치채지 못한 아이들은 재미있게 놀았다.
하지만 나는 흥이 나지 않았다.
눈치를 보니 아내도 비슷해보였다.
모처럼 휴일에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나섰다가
아내와 서로 감정만 상해서 돌아온 셈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서로 불편한 감정이 풀리지 않은 채 있으려니 아이들에게 짜증이 분출되었다.
평소라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아이들의 행동들을,
괜히 트집 잡거나 엄하게 대하곤 했다.
둘째가 자기 전에 읽어달라고 한 그림책이 있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도 했는데, 결국 읽어주지 않았다.
감기에 걸린 둘째의 물컵을 따로 쓰고 있는데, 내가 정해준 물컵으로 안 먹고, 
자기가 먹고 싶은 컵으로만 먹겠다고 했다.
'아까 이 컵으로 먹기로 했어?'하고 묻고, 받아줄 수도 있는 행동이었지만,
이날따라 '싫어!'라고 말하는 아이의 행동이 고집부리는 걸로 보였고,
난 거기에 짜증만 날 뿐이었다.
그래서 물도 알아서 먹으라 하고, 책도 안 읽어주겠다고 하고 말았다.
부부 싸움의 불똥이 아이들에게 튀고 만 것이다.
보통 때 같으면 '아빠가 화 내서 미안하다'고 사과도 하고,
책도 읽어주고 잠들었을 일이었는데,
어제는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결국 부부 싸움이 아이에게 상처주는 데까지 나가고 말았다.
 
 
자고 일어나 기분이 좀 진정되고, 글로 쓰면서 다시 되돌아 보니
후회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오늘은 아내와도, 둘째와도 꼬인 실타래를 풀어야겠다.
풀고 나면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야.'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럴 것 같지 않다.
부부 싸움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과 감정을 보여주는 단서를 제공한다.
그 단서를 잘 발견해서 꼬인 매듭을 풀어내면 둘의 관계는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하지만 갈등을 서둘러 봉합하려 하고, 
단서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면 둘 사이의 시한 폭탄은 언젠가 다시 등장할 것이다.
비록 아내와의 냉전 기류가 흐르는 지금 이 순간이 고통스럽긴 하지만,
'칼로 물 베기'처럼 없었던 일처럼 끝내고 싶지 않다.
싸움 이전에 비해 이후가, 더 나아진 게 아니라 같은 거라면
싸움의 의미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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