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486 DX2 66을 조립한 이후 참 많이도 만들었다. 문과생이 PC를 조립하고 윈도를 깔고 홈페이지를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주변에서 신기해했다. 나름 얼리어답터였으나 먹고 사는 일에는 별 무소용.

글 쓰는 일이 좋았다. 아름다운 문장에 늘 미혹되었으며 단어 하나를 낚았다 풀어주느라 밤을 새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서와 기획서에 '미혹' 따위 단어는 결재불가여서 한때 글 쓰는 일로 밥벌이를 삼을까 시도했으나 실패.

네비도 없이 10년 전에 만났던 부산의 고객집을 다시 찾는 운전능력을 살렸으면 먹고 사는 일이 좀 수월했을까. 용접하고 기계 고치는 재주는 다들 아깝다고 했었다. 일주일만 어깨를 풀면 다시 수타면을 뽑을 자신도 있건만.

'열두 가지 재주에 저녁거리 없다'는 속담이 내 얘기인가 싶던 서울살이였다. 어쨌거나 서울이여 안녕. 귀농을 하고 농부가 되었는데 오호라, 쓸모없던 재주들이 몽땅 불려나와 제 몫을 한다.

휴대폰도 안터지는 골짜기에 와이파이를 설치하고 와이파이를 통해 카톡, 페북을 하면서 판로 개척. 같잖지도 않던 얼리어답터가 쓸모있어지더니 사과박스에 함께 보낸 글 한 줄에 내 농사가 미더웁단다. 처음 운전하는 트랙터며 SS기가 익숙한 것은 운전능력 덕일 테고 용접을 못했으면 창고를 못지었겠지. 어제도 감자 두둑을 짓다가 관리기가 고장나 캬뷰레터를 뜯어 고쳤으니 그 재주도 나름 쓸모가 있고 수타면이야 뽑을 일 없겠지만 대신 짜장을 볶아 고추 딸 때 참으로 낼 계획.

그러니 세상의 모든 다재무능한 이들이여. 귀농하라. 그대를 위한 직업이 기다리고 있나니.

- 농부 통신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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