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3이 된 첫째 딸의 15살 생일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서 한 컷!

[한겨레 토요판] 가족관계 증명서

여보,

4남매의 둘째 딸로 오지랖 넓고 남 챙겨주기를 좋아하는 나와, 막내로 온유하고 부드러운 성품인 당신. 우린 꽤 잘 맞는 한 쌍이었죠? 태어나서 내가 제일 잘한 일이 당신과 결혼한 것이라고 생각했고, 신혼 때는 서로가 횡재한 거라고 유치한 말싸움을 한 일도 있잖아요. 인생의 급물살을 굽이굽이 헤치고 지나온 지금 생각하니 웃음만 납니다.

당신이 회사 다니고 나도 직장생활하며 두 딸을 키우는 동안, 참 행복했어요. 건설현장을 다니는 당신 직업 때문에 주말부부로 몇 년을 보내기도 했지만, 그 이유로 결혼을 반대하셨던 친정아버지의 염려가 무색하게 우리, 잘 지냈잖아요.

당신이 50살도 되기 전 현장에서 밀려나는 처지가 되면서 우리 가정에도 삶의 어두운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했죠.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당신을 보다 못해 회사를 그만두라고 말한 것은 나였어요. 두어달 집에서 쉬던 당신은 가장이라는 책임감과 몸에 밴 부지런 때문에 곧장 자영업을 시작했고요.

당신이 회사생활하며 알뜰히 모은 돈과 공무원이었던 나의 대출로 시작한 그 일이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몇 달이 지나지 않아서죠. 중간에 그만두기엔 이미 투자한 돈이 너무 많았지요. 하루도 쉬는 날 없이 일해야 했던 그 고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허약한 당신을 도와 퇴근 뒤 나까지 매달렸지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힘들어 허우적거렸죠. 집에서 활기와 웃음이 사라졌던 암울한 시절이 2년 반이었어요.

언제였던가, 새벽에 둘 다 지쳐 기진맥진한 채 퇴근하다가 사소한 말다툼으로 내가 울며불며 큰길로 뛰쳐나간 적이 있었지요. 기름때 전 앞치마에 눈물을 닦으며 뛰어가던 그 순간, 떠오르던 건 어이없게도 ‘당신의 의미’라는 노래였어요. ‘당신 위하여 입은 앞치마에 눈물이 젖게 하지 마세요!’ 따라오지 말란다고 당신은 정말 안 따라오고 집에 가버렸죠. 하긴 나도 너무 지쳐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죠.

자영업을 접고 다시 자신의 분야에서 일을 시작한 당신을 보며 예전에 사이가 좋던 부부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몇 년간 못했던 대화를 하고, 내 말에 웃어주는 당신을 보면서 함께 인생의 질곡을 헤쳐온 동지애를 느낍니다. 아직 두 아이가 고등학생이고 갚아야 할 빚도 남아 있지만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두렵지 않아요. 그리고 여전히, 내 인생에 제일 잘한 일은 당신과 결혼한 일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답니다. 당신의 아내, 당신의 동지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빕스에서 4인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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