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아이들을 모으는 딸기와 봉숭아
 
마당에서 딸기가 익어간다. 
거름을 늦게 주어 작년에 비해 양도 적고, 크기도 작지만
아이들은 직접 따서 먹는 걸 좋아한다.
어제는 동네 아이들 대여섯 명이 몰려오더니 
자기들끼리 딸기를 따서 수돗가에서 씻어 먹었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네 살 아이까지 동네 아이들이 그렇게 어울려 노는 걸 보니
기특하고, 흐뭇하다.

나 어렸을 적엔 동네 곳곳이 놀이터였고, 
집 밖으로 나가면 늘 같이 놀 또래 아이들이 있었다.
동네 형들부터, 친구들, 동생들이 마을 회관 앞에 모이면
숨바꼭질, 비석 치기, 딱지 치기, 오징어 놀이, 찜 부르기, 논두렁 야구 등
할 수 있는 놀이가 참 많았다.
여름철에는 냇가에 가서 물고기를 잡았는데, 그 방법도 다양했다.
족대를 이용하기, 어항에 된장 풀어 놓기, 손수 만든 조그만 낚싯대로 잡기 등등.
겨울이 되면 동네 삼촌들이 
해머를 이용해서 냇가 얼음을 깨트려 물고기를 잡기도 했고,
우리는 커다랗게 얼음을 깨뜨린 뒤 얼음배를 타고 놀기도 했다.
회관 옆에는 겨우내 사용할 땔감과 짚단이 쌓여있었는데,
그곳은 우리가 숨어 놀던 아지트가 되었다.

그런데 내가 어른이 되어 아이가 생기자 
시골인데도 동네에 아이들이 없었다.
도시의 아파트 단지는 아이들은 많지만, 
모두 학원에 가있어서 함께 놀 아이들이 없다는 얘기가 들렸다.
내가 어렸을 적 경험한 자연과 그때의 놀이들을 
내 아이들은 누릴 수 없다는 게 많이 아쉬웠다.

다행히 재작년에 이사온 지금 동네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그 뒤 아이가 있는 젊은 부부들이 서너 집 이사를 오자 
동네가 아이들 노는 소리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해가 질 무렵 선선해지기 시작하면 아이들은 한 무리를 이루어
자전거를 타기도 하고, 달리기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논다.
그렇게 동네에서 아이들이 어울려 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


작년에 텃밭 가운데 심었던 봉숭아가 씨를 퍼트려 올해는
텃밭 고랑 사이에 봉숭아가 꽤 많이 자랐다.
그래서 봉숭아들을 집 앞 가로수 화단에 옮겨 심었다.
나중에 꽃이 피면 동네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봉숭아 물들이겠다며 꽃을 따느라 부산해질 것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옮겨 심은 봉숭아들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들깨 고랑에 풀을 심었나?'
올해는 마당에 있는 작은 텃밭에 작물들을 심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내는 직장일로 바빴고, 
혼자 아이 셋 보며 고랑 만들고, 거름 주고, 모종 사다 심을 걸 생각하니 까마득했다.
그런데 옆동네로 이사온 아이 고모, 고모부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시내 아파트에 살다가 작년에 시골 조그만 아파트로 이사 온 아이 고모와 고모부는
텃밭 농사 지을 생각에 의욕이 넘쳤다.
두 사람은 퇴근 뒤에 우리 집으로 와서 고랑을 파고, 
직접 거름을 몇 포대 사와서 뿌렸다.
그 뒤에도 모종을 사다 심기까지 했다.
덕분에 올해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
고추, 호박, 오이, 가지, 방울토마토와 토마토, 들깨, 고구마, 피망을 심을 수 있었다.
 
크기변환_마당 텃밭.JPG

하지만 모종을 심은 뒤 며칠 동안 햇볕이 아주 강했다.
매일 저녁 물을 주었지만,
작고 여린 들깨 모종은 열두 포기 중에 서너 포기만 살고 다 말랐다.
그런데 어느날 마당 잡초를 뽑다 보니 마당 곳곳에서 들깨가 자라고 있는 게 보였다.
'작년에 떨어진 씨앗이 자라나 보다.' 생각하며 그것들 중 좀 큰 걸 골라
비 온 다음날 들깨 고랑에 옮겨 심었다.

하루는 마당에 난 풀을 뽑다가 문득 
'이 풀들 이름이라도 알고 뽑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도 '이 풀 이름은 000야.'하고 알려주고도 싶었다.
그래서 서점에 갔을 때 <풀 도감>을 사왔다. 
돌나물이나 질경이, 제비꽃, 할미꽃이야 알고 있었지만, 
이름만 들어봤던 애기똥풀이나 괭이밥이 
마당이나 집 주변에서 흔히 보아온 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기다 놀라운 걸 발견했다.
'깨풀'이라는 게 있는데, 그 모양이 깨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혹시 내가 옮겨 심은 게 깨풀이었나? 들깨가 아닌 풀을 옮겨심은 건가?'
애초에 마당에 난 들깨를 고랑에 옮겨 심을 때 잎 끝부분이 
사온 모종에 비해 좀 둥글다는 인상을 받긴 했지만,
야생에서 자라서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날 나가서 확인해보았다.
옮겨 심은 녀석들은 처음 심은 사온 모종에 비해 키가 작고, 
잎 끝부분은 약간 둥글었다.
하지만 크게 달라보이진 않았다.
이 녀석들이 들깨인지, 깨풀인지 아리송했다.
결국 자라는 걸 좀 더 두고보기로 했다.


성장을 보는 기쁨
 
작은 텃밭에 아주 조금 심었을 뿐이지만
작물을 심은 뒤로 비가 며칠 안 오기라도 하면 비를 기다리게 된다.
그리고 작물이 강한 햇볕에 마르는가 싶더니 곧게 서서 자라는 걸 보면 
놀랍고, 신기하고, 심지어 기특하기까지 하다.
작년에 아이들 보여주려고 콩 싹이 올라온 걸 텃밭 가에 옮겨심은 일이 있다.
비가 온 다음날 콩줄기가 지줏대를 한 번 휘감고 있었다.
어찌나 기특하던지...
하룻밤 사이인데도 녀석들이 이만큼 컸다는 게 참 기뻤다.
마당에 작물들을 심은 뒤로는 시간 날 때마다 살펴보게 된다.
뭐가 변해있나, 얼마만큼 자랐나 살펴보는 게 큰 즐거움이다.

아이들을 보면서도 비슷한 기쁨을 느낀다.
'어느새 이렇게 자랐나, 벌써 걷고 있구나, 벌써 말을 하고 있구나...'
식물이 자라고, 아이들 커가는 모습이 왜 기쁜가 하고 생각해보니
자란다는 사실 자체가 기쁨을 주는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 대견한 것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이 자식 키우는 일을 '자식 농사'라 표현한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농사 일을 하던 어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작물이 자라고,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는 큰 기쁨을.


'밭을 갈지 않고 씨를 뿌리면...?'
 
이 말은 몇 년 전 한 강의에서 들었던 교육에 대한 비유다.
밭을 갈지 않고 딱딱한 땅에 씨를 뿌리면 씨앗이 제대로 자라기 어렵듯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아이들과 좋은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어른의 말을 전달하려고만 하면 제대로 교육이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 비유를 통해 아이와 교육을 바라보는 내 관점을 크게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따뜻하고, 안전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들은 더 잘 배울 수 있다.
그렇다면 나의 가정과 교실을 어떻게 그런 공간으로 만들 것인가'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마당에 텃밭이 있다 보니 
작물과 아이들의 성장을 더 세심하게 살펴본다.
하루하루 커가는 작물과 아이들을 보며
성장과 변화, 교육과 양육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고 성장에 대한 생각은 나 자신에게로도 향한다.
'몸과 가슴과 머리가 균형을 이룬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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