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친화 경영 특집]“일·육아 보듬는 경영”
아이시스 6.6% 재택근무
일하며 모유수유도 거뜬
직원 70%·관리 62% 여성
디에스엘시디는 직장보육
경기 ‘최우수 어린이집’ 선정
“여성매니저 성과도 탁월”
» 디에스엘시디의 사내 어린이집이 점심시간을 이용해 행사를 열고 있다.
음세희(37)씨는 대전에 살며 서울 가산동에 있는 ‘한국아이시스’란 회사를 다닌다. 출퇴근 시간은 따로 없다. 재택근무 덕분이다. 전자공학을 전공한 음씨는 2000년 12월, 정보기술(IT) 전문 번역업체인 이 회사에 입사해 7년 동안 일하다 2007년 6월 결혼했다. 남편이 대전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에서 일하고 있어 신혼살림을 대전에 마련했다. 그때 음씨는 회사를 그만둘까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다. 한두 달 고속철도(KTX)를 이용해 출퇴근하던 그에게 회사는 ‘재택근무’를 제안했다.
음씨의 근무는 ‘업무 시작’ 전자우편을 회사에 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부터 컴퓨터 메신저를 열어두고 프로젝트 담당자 등과 수시로 대화하며 일한다. 1차 번역을 마친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운영되는지 확인하는 테스트 작업을 할 때는 국외 고객과도 메신저로 의견을 나눈다. 회사를 직접 방문하는 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재택근무의 장점이 더욱 빛을 발한 건 지난해 12월 아이를 낳고 출산휴가 3개월을 끝낸 뒤였다. 보모의 도움을 받으며 모유수유를 8개월간 할 수 있었고, 아이도 늘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다. 아이가 정기검진을 받으러 병원을 갈 때면 일찍 일어나 ‘로그인’하고 점심시간을 2시간 쓰기도 한다. 음씨는 “예전보다 업무량이 늘어나 아이를 재워놓고 야근할 때도 있지만 재택근무를 큰 혜택이라 여기고 즐겁게 일한다”고 말했다.
2010년 여성·가족친화기업 인증을 받은 한국아이시스는 직원 75명이 일하는 중소기업이다. 그러나 여성직원의 복리후생만큼은 대기업을 능가한다. 1992년 한국아이비엠(IBM) 내 독립부서에서 분사해 설립할 당시부터 주 5일제를 운영했고, 능력에 따른 채용·승진으로 직원의 70%, 관리직의 62%가 여성이다. 특히 최근 육아휴직 뒤 100% 복귀 기록을 달성했고 그 덕분에 여성의 평균 근속연수가 7년 2개월이나 된다. 현재 음씨처럼 재택근무자가 5명, 1년 육아휴직자가 3명이다.
이 회사에서 18년간 일하며 아들 3명을 낳은 류숙(40) 재경관리부 과장은 “둘째 아이부터 출산휴가를 쓰기가 쉽지 않은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환경에서 내 경력을 들으면 다들 놀란다”며 “출산축하금, 권장휴일, 재택근무 등 가족친화적 제도를 기반으로 합리적 기업문화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아이시스에서는 첫아이 출산 축하금은 50만원이지만, 둘째는 100만원, 셋째는 200만원을 지급하며 출산을 독려한다. 유·사산을 겪은 직원이 휴가를 내면 출산휴가와 똑같이 월급을 전액 지급하고, 남성 직원이라도 배우자가 출산하면 3일간 유급휴가를 얻는다.
갑작스레 아이가 아프거나 집안일이 생기면 직속 상사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것으로 휴가 승인이 끝난다. 휴일 사이에 근무일이 겹치면 휴가를 권장하고, 회식은 공연관람 등으로 대신한다. 김희은 마케팅 과장은 “‘직원 배려와 자율성 존중’이라는 기업이념, ‘직원의 행복이 기업의 경쟁력이다’라는 경영철학이 일상에서 현실화한다”고 설명했다.
경기 화성시 동탄면 금곡리에 자리한 디스플레이 부품 제조업체인 디에스엘시디(DSLCD)에 들어서면 오른쪽에 널찍한 놀이터와 함께 디에스 어린이집이라는 건물이 보인다. 2003년 설립 때부터 직원 2000명을 거느린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때까지 7년 동안 동고동락한 직원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이다. 만 1~5살 어린이 61명이 365일 아침 7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여기서 뛰논다. 보육료는 연령에 따라 17만2000~33만7000원인데 시간연장이나 특별활동에 따른 추가비용이 전혀 없다. 건물은 물론 보육교사(9명), 차량까지 회사 소속이라 다른 어린이집보다 30~40% 비용이 저렴하다.
엄마와 함께 통근버스로 출근한 아이들은 인근 텃밭에서 고구마를 재배하고, 민속촌·엑스포·동물원 등으로 견학을 떠나며, 회사 콘도에서 1박2일 겨울여행도 즐긴다. 엄마의 참여도를 높이려고 재롱잔치나 전시회, 졸업식도 점심시간에 회사 구내식당에서 연다. 육아휴직 뒤 회사 복귀율이 83%에 이르는 것도 모두 어린이집 덕분이다. 2007년엔 경기도 ‘최우수 어린이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오헌환 디에스 어린이집 원장은 “아픈 아이들을 선생님이 병원에 데려가는 등 엄마가 직장에서 일에 전념하도록 세심히 배려한다”고 말했다.
디에스엘시디는 채용할 때도 결혼한 30~40대를 우대한다. 섬세한 여성노동이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불량률을 줄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장을 관리하는 매니저 10명 가운데 8명이 여성이다. 유강수 인사팀장은 “여성 매니저가 나이 어린 직원을 잘 보살피고 책임감도 강해 성과가 탁월하다”고 평했다. 이 밖에도 미혼 사원을 위한 기숙사(251실)와 고등학생 자녀의 학자금(50%), 직원 고충상담센터(오전 8시10분~9시) 등을 운영하고 있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지난 19일 한국아이시스와 디에스엘시디를 비롯해 33개 기업에 인증서를 수여하며 “일과 가정의 양립이 쉬운 기업환경을 조성해 여성의 지위 향상과 저출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고급 여성인력 확보위해 투자해야죠” DSLCD 오인환·아이시스 이승훈 사장 ‘한목소리’
오인환(54) 디에스엘시디(DSLCD) 사장은 “일과 직장의 균형을 추구하는 직원이 많아져 인재 확보를 위해선 가족친화 경영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가족이 자랑할 수 있는 회사’라는 기업 버전도, 사내 어린이집을 회사 창립 때 개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부품 생산은 섬세하고 빠른 손놀림이 중요해 30~40대 여성이 일하기 적합하다”며 “수원·용인·화성·오산·평택 등 인근 도시의 고급 여성 인력을 유인할 ‘다른 무엇’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다시 직장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여성에게 통근버스를 타고 자녀와 출퇴근하도록 보장함으로써 장기근속을 유도할 수 있었다. 경험과 기술이 풍부한 직원이 불량률이 적어 생산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가 눈에 보이는 곳에 안전하게 보호받는다는 것도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여성 직원의 비율은 45%이며, 사무직을 제외하면 더 높아진다. 오 사장은 또 “가족친화적 기업에 세금 혜택이나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정부가 가족친화정책의 장점을 적극 홍보하면 더 많은 기업이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승훈(49) 한국아이시스 사장은 “사람이 중요한 비즈니스에서 고용 경쟁력을 높이려면 연봉이 높거나 후생복지가 탁월해야 한다”며 “모기업(한국IBM)이 외국계라 18년 전 설립 때부터 출산·결혼 등으로 불이익을 받는 직원이 없었다”고 말했다. 연월차, 휴가를 권장하고 출퇴근 시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면 직원을 관리감독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일은 시간이 아니라 성과로 철저히 평가한다”며 “퇴근이나 휴가 때 상사 눈치를 봐야 하는 직장분위기가 되레 생산성을 저해한다”고 꼬집었다. 최근에 육아문제로 고민하는 여성 과장에게 재택근무를 추천했지만, 결국 그만뒀다고 안타까워하면서 이 사장은 “가산 디지털단지 주변 기업들과 공동으로 보육시설을 개원할 여건이 조성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이 홀로 보육시설을 마련하는 건 역부족이기 때문이다. 정은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