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트리 내인생의 책에 오소희님 자주 등장하는데, 내게는 낯선 이름이라 궁금했다.
나는 한비야, 김남희, 오기사 등의 여행책을 읽었는데, 오소희?? 무슨 내용인데, 이렇게 환호를 받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다 읽고 나니, 후기를 쓰기전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즐거웠다.
혼자하는 여행이 자아의 발견 또는 성찰의 기회가 된다면, 같이 하는 여행은 '조율'이 필요하다.
저자는 아이가 독립적으로 걷고 관찰하고 대화하는 일들이 여행가기 전부터 잘 준비되어 있었고,
아이가 그렇게 되도록 기다려주었다. 그러면이 내가 좀 더 배울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와 딸아이의 앞으로의 여행이 기대된다. 오늘 아이에게 신발을 스스로 벗게 했다.(어린이집에서 엄마가 없을 때는 혼자서 잘하지만 엄마가 있으면 도와달라고 한다.) 일단, 엄마와 있을 때도 신발을 혼자 신고 벗고 하기부터 시작해야 겠다.
아시아를 여행하다 보면 현지에서 관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 일하면서 익힌 한국말로 고향에 돌아가 한국사람을 상대로 가이드 하기도 한다. 마음 아프게도 그들이 한국사람을 상대로 일을 하지만, 좋지 않는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일상에서 우리가 늘 생각해야 한다. 서양외국인만 숭배하고, 아시아계 외국인을 무시하는 잘못된 행태가 너무 만연해 있고 부끄러운 일이다.
저자가 어린 아들을 시골동네 사람들에게 맡겨놓고 근처를 잠깐씩 여행하는 구절은 동의하기 어려웠다.
< 책에서 마음에 든 부분들>
1.
무언가 가슴속에서 질기게 나를 잡아당기고 있던 것이 툭 끊어지는 듯했다. 오랜시간에 걸쳐 굵어지고 딱딱해진 어떤 것이 날카롭게 잘라지고 저며져서 완전히 가루가 되어 흘러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더니 미처 막아볼 사이도 없이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운 가운데 그냥 내버려 두었다. 깊게 베인 상체에서 흐르는 피처럼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난 뒤에야 깨달았다.. 한 아이의 엄마가 되고서부터 이런 식으로는 울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나는 항상 '나 이상'으로 강해야 했고, 거기에는 나 하나만을 위해 열린 감수성 같은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나라는 개체만을 위한 욕구, 내 안의 여성으로서 욕구, 이런 것들은 아이의 목마르다거나 춥다는 말 한마디에 정신없이 사라져버리곤 했던 것이다.
예전에 아름답다고 느꼈던 것들 앞에서도 나는 무감각해져 있었다. 예술 영화가 주는 감동에는 점점 눈물이 말라가는 대신, '병원24시'에서 병들어 신음하는 아이를 보면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흘렀다. 피카소의 그림보다는 아이의 자는 얼굴이 몇 백 배 더 예술이라는 확신도 생겼다. 나는 언제나 아이와 함께하는 1.5인의 인간이었으며, 그 1.5인의 인간이 하나의 성장곡선을 그리며 한 그래프 안에서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눈물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었다. 나는 오늘 아이나 가족과는 무관한 것, 그럼에도 그 자체로 아주 아름다운 것 앞에서, 한 아이의 어미가 되기 이전처럼 흔들렸고 흔들려서 행복했다.
2.
나는 새로이 깨달았다. 도시에서의 삶이 나를 지치게 했던 것은, 원하는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원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았던 까닭이이었다. 그리고 그 많은 것들 가운데 숨어 있는 원하는 것을 골라내고 값을 지불하고, 나머지 것들은 버려야 하는 나날의 피로함이었다. 삶을 아무리 간소화하려 해도 늘 몸과 마음이 번잡해지는 것은, 그렇게 경쟁적으로 틈입해 들어 오는 원치 않는 것들의 소란스런 유혹과 강요 때문이었던 것이다
3.
관계의 많은 부분이 희생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자신이 희생하는 것들과만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데 그것을 얻을 수 없다면 이유는 간단하다. ...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 달리, 그 무언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희생하지도 않는 것이다.
4.
나는 아이에게 이제 곧 내릴 테니 신발을 신으라고 했다. 아이가 평균 신발을 신는데 걸리는 시간은 15분. 흔들리는 버스 안임을 감안해서 내리기 30분전에 신발을 신도록 해야 했다. 아이의 운동화에는 양쪽에 두 개씩 네 개의 찍찍이가 있고, 신발혀를 들어야만 발이 들어가도록 되어 있기 떄문에 아이는 신발을 신을 때마다 상당한 도전과 수고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시간이 문제가 될 뿐, 아이의 손힘은 가까스로 신발을 건사할 수 있을 만큼 자랐으므로 나는 며칠 전 아이에게 '이제부터 그것은 너의 일이다.'라고 넘긴 터였다. 아이는 내게 몇 번 도움을 요청했지만, 힘이 들겠지만 네가 해낼 수 있다고 말해 주고 창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아이는 내 도움을 포기했다. 이런 과정을 며칠 더 반복하면 아이는 완전히 이 일을 자신의 것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