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농사를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 겠다고 생각한 것이 2년전 쯤의 일이다. 경남 창원의 시골마을에서 단감 농사를 짓는 농가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지만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8년간 마을에서 직접 농사를 짓지는 않았지만 마을에서 나온 제철 농산물을 직거래 꾸러미 형태로 판매하다보니 무엇보다도 농부를 많이 알게 되었고 그들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결정적으로는 대산농촌재단의 유럽농업연수가 크게 작용하긴 했다. 전국의 각 지역에서 농업농촌, 마을일에 몸 담은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그들을 롤모델 삼아 나도 언젠가 농사를 짓고 싶다는 꿈을 키우게 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농사의 ‘농’도 모를뿐더러 제주에 땅 한 평도 없다는 현실이었다. ‘땅 한 평 없이 어떻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싶어 주위에 수소문을 했더니 돌이 무지하게 많은 중산간 하우스, 농사를 잘못지어 3년간 소득이 전혀 없었던 천혜향 과수원, 집주인이 과수원에 기거하는 감귤과수원 등 농사짓기에 힘든 조건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좋은 땅을 빌려줄 일이 있나’ 싶어 낙담하고 있을 때 3년간 함께 농업분야를 공부했던 지인분이 우리 마을 인근에 땅 300평을 무상으로 빌려 줄테니 농사를 지으라고 했다.
직접 가서 확인하니 바다가 보이는 직사각형 밭으로 주위에 타운하우스들이 하나둘 들어서고 있었다. 농업용 물도 바로 옆에서 공급이 되고 도로가 인접한 땅이라 농사짓기가 참 좋을 듯했다. 그런데 또 문제는 1년간 방치한 밭이라 인근 펜션에서 주차장으로 사용해서 잡풀과 쓰레기가 가득해서 누군가가 트랙터로 밭을 갈아주어야 했다. 다행이도 동갑내기 친구가 농사를 크게 짓는지라 부탁하였고 근 한 달 만에 드디어 밭을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나는 갖가지 텃밭농사 관련 책으로 어떤 농작물을 심어볼까 고심에 고심을 했다. 제일 먼저 농부인 엄마에게 전화를 했는데 “절대 농사짓지 마라.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한 푼도 못번다. 농산물이 필요하면 차라리 마트 가서 사 먹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안되겠다 싶어 함께 연수를 다녀온 선배들에게 물어보니 “먹고 싶은거 심어라”, “주위에 농부들 심는거 보고 심어라”등 현실적인 조언들을 많이 해주었다. 그런데도 나 스스로 의문은 계속 생겼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올해 농업 창업준비로 바쁜데 직접 생산까지 해야할까’, ‘한 번도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데 실패하면 어쩌지’등등 오만가지 생각이 멤돌았고 300평이 내 머릿속엔 3000평 이상이나 되는 것처럼 부담은 커져만 갔다. 책 속에 길이 있을듯하여 여러 책을 읽어보는데 한국책들은 실전책들, 즉 농사기술을 사법시험 준비하듯 공부해야 하는 책들이 많았고 일본번역서들 중에는 농사기술은 설겅설겅 알려주면서 ‘잘 할 수 있다’, ‘농사 생각보다 재밌다’하는 책들이 많았다.
나름 농업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해야 겠기에 내가 어떤 농사를 지을 것인가 정리해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농사 무지랭이지만 내가 나아가야할 농업의 방향은 우선 즐거워야 한다는 것. 즐거워야 무슨 일이든 오래할 수 있고 전문가가 될 수 있다. 그럴려면 초기의 목표를 낮게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아이들과 함께 한다는 점도 고려했다.
두 번째는 농업을 생산으로만 볼게 아니라 전방위로 봐야 한다는 것. 농업의 장점이라면 지역, 생활, 건강, 자연,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있다는 점이다. 지난 8년간 소비자를 자주 만나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와 교류했기에 내 농사가 전방위로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리 농업은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해야 하는 협동의 기술이다. 자연스레 이웃과 지역, 주변을 살필 수밖에 없다. 농민들은 지역의 일꾼이고 우리 먹거리를 책임지는 사람이기에 소비자들도 당연히 도와야 한다. 그래야 농부도 도시민도 건강해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내 아들이 고생하는게 싫어서 ‘절대 농사짓지 마라’는 엄마. 가끔은 전화가 와서 물어본다. “밭은 잘 되어가고 있나?”
» 살갈퀴와 큰방가지똥으로 무성했던 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