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이가 곧 머지않아 전학을 가야 한다고 했다. 먼 남쪽 어느 중소 소읍으로.
부모님께서 직장을 옮기셨느냐고 물었더니 그게 아니라 집이 경매에 넘어 가서라고 하는데
아이는 말을 하면서도 기분이 그리 가라앉아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사를 가서 서운하지 않느냐는 친구들의 물음에도 덤덤하다.
"거긴 우리 할아버지가 사시는데 할아버지네 마당에는 큰 개도 두 마리나 있어."
유난히 외로움을 타는, 그래서 더욱 개를 기르고 싶어 하던 아이였다.
소원하던 개는 기르게 되어 좋은데 살던 집을 잃게 되었다는 것은 아직 잘 모르는 나이, 혹은
알아도 그게 정확히 어떤 모양의 불행으로 자기에게 닥쳐오는지는 잘 모르는 나이의 아이.
“선생님, 근데 빨간딱지가 뭐예요?”
아이는 한참 친구들과 이사 가는 이야기, 새롭게 자기 차지가 될 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내게 묻는다.
“왜? 혹시 너희 집의 냉장고나 TV에 그런 거 붙어 있니?”
“아직은 아닌데요. 곧 그런 거 붙이러 온대요.”
마침 주변에 있던 아이 중 한 명이 드라마에서 봤다면서 이야기를 끼어들었다.
낯선 사람들이 우르르 와서 딱지를 붙이고 마구 가져가면
집에 있는 사람들이 막 울더라는 이야기를 아이들 특유의 상상력이 보태지면서
마치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발전되고 말았다.
다른 아이들도 있고 해서 어물쩍 넘길까 했는데 아무래도 말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아이더러 잠깐만 남으라고 한 뒤 앞 뒤 사정을 물어 보았다.
그런데 아이는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고
오히려 그 점을 이리저리 묻는 내가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지금 너희 집에 어떤 변화가 있나보다. 엄마, 아빠는 이미 잘 아실거야.
엄마, 아빠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큰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고 있는 지도 몰라.
그래도 엄마, 아빠는 잘 해내실거야. 너도 엄마, 아빠 편 맞지?“
집을 잃는다는 것, 그리고 도시 생활에서 집을 잃으면 사실 모든 것을 잃는 다는 것을
겨우 열 살인 저 아이가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누구는 경제가 살아난다고도 하고 누구는 지금 주식을 사야한다고 하지만
그런 장밋빛 전망의 와중에도 누구는 저렇게 집을 잃고 또 누구는 직장을 잃는다.
그렇게 쓰러져 가면서도 아이를 보호하려 분투하는 부모들을 보며 살아야하는 내가 고틍스럽다.
그저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아왔을 뿐인데
세상 돈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는 한탄도 고통스럽고
그들과는 달리 위장전입 쯤은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계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사는 일도 고통스럽다.
아이 기르는 부모들아, 부디 건승하시라. 그리고 나라를 이끌어 가는 높은 사람들아, 부디 늬우치시라.
오늘 아침,
아이는 이사를 갔다.
빨간 딱지라는 이름의 유체동산 경매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집이 넘어간 것도 아니지만
회생 가능성이 없는데다가 아이가 그 상황을 보면서 상처를 받을 까봐 아빠만 빼고 미리 이사를 한다고 한다.
아이의 엄마는 나와 대화하는 내내 아이의 표정을 관찰하며 눈치를 보고 있었다.
아이가 예민한 시기라서 아이에게 충격이 될까봐 염려가 된다고 했다.
아직 젊디 젊은 부부가 앞으로 못일어 날 일이 뭐 있으랴마는,
지금은 당장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일텐데도 아이에게는 끝까지 듬직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엄마를 보니
오히려 그냥저냥 먹고 사는 내가 작아보인다.
"경은이가 속이 깊으니 엄마, 아빠에게 오히려 큰 용기가 될겁니다. 설사 알게된다고 해도
그것이 경은이의 삶에 꼭 마이너스 영향만 되리라는 법은 없지요."
내가 복도에 서서 아이 엄마의 고단한 표정을 마주하는 동안 아이는 다행히 교실에서 아이들과 제법 유쾌한 작별을 하고 있었다.
"내가 우리 개 사진 찍어서 카페에 올릴게."
아이는 마치 친척집에 놀러가는 것처럼 여전히 밝다. 난 차라리 그게 더 낫겠지 싶었다.
"경은아. 살다보면 이런일이 생기기도 해. 아빠에게는... 힘든 일이되겠지만 결국 이겨내는 일이야. 네가 있잖아."
아이들이 모아 쓴 작별 편지를 묶어 건네면서 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하는데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서 그냥 쭈뼛거리고 말았다. 정을 떼는 일은 상대가 아이라도 고된 일이다.
"선생님, 우리 개가 강아지 낳으면 드릴게요. 힛히."
아이가 떠나고 난 뒤, 난 아이의 사물함 속에서 이 것을 발견했다. 오래 전 미술시간에 만든 것인데
공교롭게도 집의 이름이 행복의 집이다. 그 속에는 아이가 쓴 꿈에 관한 쪽지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마치 얼마 후 불행이 닥칠 걸 예상이라도 한 것일까.
당분간 이루어 지지 못할 꿈들이 행복의 색 분홍빛안에 갖혀 애잔하게 보인다.
아이가 두고두고 저 것을 그리워할까봐 포장해서 보내줄까하려다
아이가 이 집을 보면 혹시라도 참았던 슬픔이 터지지나 않을까 방정맞은 생각이 들어
그래, 아이가 어느 정도 새 학교에 적응 하고 난 뒤에 보내는 것이 낫겠다 싶어 그만두었다.
아이의 불행이 부모때문이라 해도 아이는 아이의 삶에 당면한 위기를 스스로 겪어내야 할 것이다.
아이가 만든 집을 그 아이의 사물함 위에 올려놓고 다시 보니 더없이 멋진 집이다.
아이는 왜 이것을 두고 갔을까. 더이상 집이 없게 되어 이것에 대해서도 미련이 없어진 걸까.
아냐, 어쩌면 다 알면서도 부모 걱정할 까봐 일부러 명랑한 척 한 건 아닐까.
에이... 그냥 마땅히 담을 곳이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버리고 갔을지도 모르는데
또 나 혼자 억지 감상에 젖어 훌쩍이는 건 아닌지.
경제가 살아나면, 우리나라가 조금 더 잘 사는 나라가 되면,
그리고 그 아이의 부모가 여전히 용기와 불굴의 의지를 지닌 채 지금처럼 열심히 산다면
언젠가 이 집을 보며 웃을 날이 오리라 싶은데 오늘부터 긴 수렁을 버텨내야 하는 저 아이의 삶을 당장 어찌할꼬.
시간아, 고통의 시간은 어서 흘러가고 희망의 시간만 남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