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는 고사하고 맞춤법도 엉망인 이 글의 지은이를 누가 5학년이라고 할까마는
저 아이의 글에 나오는 할머니를 내가 잘 알아 그런지 오늘만은 아이가 내 스승처럼 보인다.
난 나도 모르게 올 해 아흔 넷 되신 나의 할머니를 떠올렸다.>
지난 해 말, 국어 교과서 맨 뒷장의 공부를 마치던 그 날.
한 해를 돌아보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사람을 소재로 글을 쓰든,
교과서에 나온 낱말 퍼즐 문제를 풀든 마음대로 하게 했더니 이녀석 금세 이렇게 훌륭한 글을 썼다.
학교에서 틈만 나면 나는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한다.
우리 반 아이들은 자신의 희망과 관계없이 올 한해 꼼짝없이 글을 써야했다.
아이들에게 겉만 번지르르한 글쓰기,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기 위한 글쓰기가 아닌
살아 있는 글쓰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훌륭한 교사들이 꽤 있는데
내가 그런 교사 축에 들려면 아직도 까마득하지만
나는 그 중 이오덕 선생님을 몹시 존경하고 따른다.
그가 평생 교장도 못해보고 어떻게 호호 할아버지가 되도록 애들 앞에서 시시덕거리며 선생노릇을 했는지,
겉으론 아닌 척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빨리 승진을 할까를 제일 먼저 생각하던 나같은 교사에게
그 분은 평생 거인같은 분이시다.
이오덕선생더러 그렇게 잘나신 분이 왜 교감이나 교장이 되지 못하고 평교사로 늙으셨냐고 많이들 물어왔다는데
선생노릇을 하면서 교장이 되는 일이 아무렴 쉽지는 않겠지만
막상 내가 선생노릇 해 보니 소신을 유지하며 평교사로 늙어가는 것이 더 힘들겠더라.
아이들은 글을 쓰며 쌓인 분을 풀어내기도 하고 옳은 가치를 더 다지기도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글을 쓸 때 어떤 부담도 주어선 안 된다고,
읽는 이를 의식하지 않는 글쓰기야 말로 아이의 생각의 힘을 기른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선생들이 두 눈 똑바로 뜨고 애들 무서운 줄 알아야 한다고 선생은 주장하셨다.
이오덕 선생.
나만큼 교실에서 애들한테 허덕이며 사셨고,
나만큼 잡무도 많이 했을텐데도
똑같은 선생노릇을 하면서 어찌 그 분은 그토록 훌륭하셨을까.
내게 그 분은 스승이며 미래다.
< 할머니>
오늘 내가 입고
온 옷은 너무 작았다.
그래도 할머니가
입으래서 입엇다.
그때만큼은 할머니
가 미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
니께 미얀한 생각이 들었다.
(학생의 맞춤법, 행, 연의 구성을 그대로 따름)
< 할머니, 옷 좀 주워오지 마세요!>
우리 할머니는 동네 헌옷 모으는 박스에서 가끔 옷을 꺼내 오신다.
어떤 건 나한테 크기도 하고 어떤 건 작지만
할머니가 입으라고 하면 입어야 된다.
난 할머니한테 내 옷은 사 주고 할머니 옷이나 주워오지 그래라고 말하면
할머니들 옷은 사람들이 잘 안 버려서 주워 올 옷이 없다고 하신다.
우리 할머니는 옷을 잘 안 버리는데
우리 동네 젊은 아줌마들보다 할머니가 더 못산다.
(같은 학생이 쓴 시)
저 아이가 어쩌다 할머니와만 살게 되었는지 나는 잘 모른다.
다만 저 아이의 삶의 이면엔 가난한 도시 노동자의 좌절과 그로 인한 가출,
또 그로 인한 가정의 해체라는 사회적 병리가 있다.
아이의 할머니는 평소 옷을 주워다 입히시는 모양인데
그 마저 아이가 크면서 옷이 작아졌다.
그 옷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날씨가 추우니 옷을 입으라는 할머니 말씀에 억지로 입게 된 아이.
할머니한테 화를 내고 집에서 나오긴 했는데... 막상 추운 날씨를 보니
할머니가 고맙기도 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나보다.
겨우 열 두 살의 나이에 힘겹게 자신을 기르고 있는 할머니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을
아이는 이렇게 예쁘게 시에 풀어 놓았다.
저 시를 다 쓰고 나서 아이 스스로 할머니에 대해 가졌던 죄송함이
눈 녹듯 풀렸으리라.
“와, 이 옷이구나? 멋지기만 한데 뭘? 영록이한테 잘 어울린다야.”
“아니, 짝아요. 인제 허리까지 안 내려오잖아요. 뽀대가 없다구요.”
“얌마, 네 키가 커서 그런 건데 오히려 좋아해야지, 할머니가 무슨 죄냐?
할머니 눈에는 영록이가 폼나는 것보다 추운게 더 신경쓰이시는거야.”
“제 말은~! 왜 할머니들은 다 그러냐구욧!”
“할머니들은... 원래 다 그래, 임마.
너도 할아버지 돼 봐. 나중에 안 그럴 것 같냐?”
“선생님은 할머니가 주서다(주워다) 준 옷 입어 보셔쎄요?”
“아니... 선생님은 할머니랑은 같이 못 살았...”
“네? 히히~ 못 살아 보셨음 말을 마셔~~”
지난 3월엔 숫기가 없어 구석만 찾던 녀석이 언제 저렇게 느물느물 배포로 자랐을까.
난 저런 아이들을 볼 때마다 교육이란 결국 시간의 기다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나와의 대화가 머쓱했는지 끝말을 개그맨 목소리로 흉내내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난 저렇게 마음이 건강한 아이는 다시 보인다.
저 아이가 저렇게 글을 쓰면서 할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알아가는 일,
담임인 내가 아무리 용을 써도 안되던 그 힘겨운 성장의 기적이 글쓰기 한 판으로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