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은 아이들끼리 서로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과목별 도우미를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은 자기가 어떤 학습이 잘 이해가 안가면 먼저 이해한 친구들에게 설명을 부탁하고
부탁 받은 아이들은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내용을 아이들의 언어로 설명해주다보니
이해도 빠르고 학습효과도 높아지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도우미 역할을 하는 아이들은 미리 신청을 받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배우기만 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몹시 설레는 일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게으르는 선생인 나는 덜 노력하고도 월급을 받는 약은 선생이라고 해야할지.
학교 놀이를 소꿉장난으로 많이 해 본 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이 방법을 도입한 지 얼마 안되었는데도
아이들 능숙하게 자기들 나름의 규칙을 만들어 가며 잘 따라와 주었다.
그러나 여전히 아이들이 원하는 도우미는 담임인 나 였다.
그런데 얼마 전 수학시간.
손가락을 이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더하기 빼기를
못하는 한 아이가 있길래 내가 개인지도를 하려고 바둑돌과 숫자놀이판을 준비하고 기다렸는데
정작 저 아이가 선택한 교사는 내가 녀석의 아닌 짝꿍이었다.
짝꿍보다 공부도 더 많이 했고 대학까지 나온 데다
아동심리 및 교육과정에도 제법 아는 게 많은 '선생'인 나를 제쳐두다니.
그러고도 네 산수실력이 오른다면 효율과 코드가 아니면
통하지 않은 이 세상에 대해 나도 할 말이 많아질 것이다.
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잠시 옆에서 아이들 눈에 안띄게
구경을 하기로 했다. 두 아이는 연신 낄낄 거리며 종이에
사탕을 그리기도 하고 사과를 그리며 더하기를 하고는
다시 그 위에 가위표를 그려 지워가며 더하기와 빼기를 공부하고 있었다.
저건 저렇게 하면 안 되는데, 받아 올림은 저 방법보다
다른 방법이 쉽고 간단한데 싶어 끼어들고 싶었지만
살랑이는 강아지풀 자매처럼 사랑스러운 두 계집 아이의 유쾌함에 취해
그냥 멍하니 서 있었다.
“선생님, 그 바둑알이나 주세요. 호호.”
어느 새 아이들은, 이 교실에서 그래도 유일한 어른은 담임인 나 뿐이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따뜻하게 유지해 나가는데 필요한 것은
어른의 계도와 통제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선함임을 내게 알려주고 있었다.
질서와 조화, 효율과 소통을 앞세운 무리와 나같은 청맹 선생이 혹 나라를 잘 못 끌어간대도
저렇게 똑똑하고 따뜻한 우리 아이들이 곧 자라 뒤를 이을테니, 난 이제 걱정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