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글인데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출처: 프레시안 ]

[민들레 교육 칼럼] 교육 쇼핑하기와 교육 선택하기
김언경 학부모 

유치원 쇼핑 중독이었던 나

나는 스스로 비교적 '교양 있는' 부모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민들레> 80호에 실린 이희경 씨의 '교육에서 멀어지기'를 읽으면서, 과거 엄청난 교육 소비자였던 내 모습을 회상하게 되었다.(☞ <민들레> 80호 목차 살펴보기)

첫아이는 유치원을 여섯 군데나 옮겨 다녔다. 다섯 살 가을에 나는 친하게 지내는 옆집 아이들이 다니는 유치원을 따라 보냈다. 그곳은 요란하게 화장시키고 옷까지 빌려 입혀서 학기말 잔치를 했는데, 다른 유치원들도 대부분 그런다고 했다. 나는 어린아이들과 거의 두 달 가까이 잔치 준비로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어리바리한 아이들의 '쇼'를 보면서 귀엽기보다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여섯 살일 때는 미술학원에 보냈다. 주입식 공부는 안 시키고 미술놀이만 하고, 대신 소풍과 견학을 자주 간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한글과 영어 중심 교육을 하게 되면서 아이는 지겨워했다. 동네가 너무 요란스러워서 그런 것 같아 석 달 만에 아이를 다른 유치원으로 옮겼다. 이번에는 외곽에 있는 소박한 전원 유치원이었다. 그런데 기구하게도 그곳이 재개발되면서 유치원이 없어졌다. 중간에 들어갈 유치원을 구하지 못한 나는 임시로 실내놀이터가 있는 좋은 사설학원 같은 곳에 아이를 보내기도 했다. 아이가 일곱 살이 되자, 나는 결국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이 최고라며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집 앞 유치원에 보냈다. 그러나 경제적 사정으로 우리는 이사를 해야 했고, 아이는 결국 시골 공립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을 졸업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거의 엽기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마 전국을 통틀어 나처럼 유난스러운 유치원 쇼핑 중독자는 없을 것이다. 물론 내게도 변명거리는 있다. 이 모든 것은 단순히 공부를 잘 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유치원부터 구구단과 영어, 한자를 가르치는 것이 싫었고 그저 재미있게 잘 뛰어놀고 아이가 힘겨워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럼 공동육아를 하지 그랬냐고 묻겠지만, 나는 공동육아를 너무 늦게 알았다. 아무튼 나는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아이에게 큰 혼란을 주었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사고 치지 말고 재미있게 학교 다니기,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행복한 어린 시절 보내기, 나와 사이좋게 살기', 나는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에게 이 네 가지만 바랐다. 아이를 학교에 보낸 뒤 나는 유난히 바빠졌고, 그러다 보니 공부도 별로 시키지 않았다. 이제 와 고백하건대, 아이 공부시키기에 소홀한 건 내가 바빠서 방치한 결과였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이가 수학 숙제를 직접 하지 않고 답을 베끼는 모습을 보았다. 고지식한 나는 아이가 엄청난 부정행위라도 한 것처럼 혼을 냈다. 그런데 아이는 오히려 화를 내면서 학교에서 선생님이 문제 푸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다. 선생님은 "이거 다 풀 줄 알지?" 하며 숙제만 내준다고 했다. 핑계라고 생각했지만, 학원을 알아보러 다니면서 정말로 선생님들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네 수학 학원은 모두 선행학습을 하고 있어서 아이는 한 학년 아래 친구들과 공부를 해야 할 정도였다.

아이는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안고 있었지만, 친구들과 잘 지냈다. 그러나 내 눈에 아이는 결코 좋아 보이지 않았다. 남들보다 일찍 사춘기가 와서 그런지 사나워지고 반항심이 커졌고, 친구들과 일상적으로 욕을 쓰고 있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을 맞았을 때, 나는 아이와 유난히 자주 싸우며 갈등했다.

그러다 나는 이렇게 교육열 있는 동네에서 아이를 일반학교로 보내며 아이를 소박하고 행복하게 키우려 했던 것이 무리였음을 인정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제대로 키우려면 혹독하리만치 학원을 보내야 하는데, 이미 공부에 거부감이 커질 대로 커진 아이를 그렇게 다그친다고 뭐가 잘될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이에게 큰 사건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학교에 다니지 않겠다고 울고불고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는 너무나 잘 적응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아이를 '이런 환경'에서 키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대안학교, 새로운 교육 쇼핑이었나?

결국 큰딸은 초등학교 5학년을 마치고 대안학교로 전학했다. 둘째 딸도 같은 학교 1학년으로 입학시켰다. 우리 가족 일생일대의 결정이었다. 처음에 나는 학부모라면 그저 모두 '한 배를 탄 동지' 같았고, 그 공동체 속에서는 아무도 물의를 일으키는 사람이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내가 대안학교 학부모로 지낸 7년 동안 여러 학부모들이 다른 선택을 하며 떠나갔다. 처음 학교에 들어온 1~2년 동안은 내가 큰맘 먹고 선택한 결정에 대해 누군가 흠집 내는 것이 싫었다. 대안교육에 대한 회의, 조금 불안정했던 학교에 대한 불만, 아이가 생각보다 잘 지내지 못하는 것 같은 걱정, 공부를 너무 안 시킨다는 조급함 등 때문인지 학교를 떠나는 학부모들을 볼 때마다 나는 약이 올랐다. 가려면 조용히 가지 왜 그렇게 불만을 떠들어대나 싶었다. 내 생각에 그 아이들은 비교적 똑똑해서 공부를 시키면 잘 따라갈 것 같은 아이였고, 그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관리할 수 있거나 관리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대안학교에 온 거야, 사립학교에 온 거야? 부모가 자세가 안 돼 있어!" 하며 혼자 투덜거렸다.

그러나 어느덧 내게도 이런저런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대안교육은 뭔가 정교하고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아이가 고학년이 되자 대학에 보낼 수 있는 교육인가 아닌가에 대한 불안도 커졌다. 나는 어느덧 학교를 떠났던 그 부모들과 오십보백보의 심정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 학교가 마을학교, 생태학교라는 특성을 갖춰가기 시작하면서 나는 사실 더 불편해졌다. 과연 나는 아이에게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를 하는 것보다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는 부모인가, 나는 학교의 교육철학과 목표에 동의하는가. 여러 고민과 갈등은 지금도 쉽사리 정리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나는 '교양 있는 학부모'이다 보니 이런 갈등을 날것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일단 이런 나의 변화가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달라는 격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찾고 제 호흡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제는 내용을 채워주길 요구하는 욕심이라는 생각에 반성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반성하면서도 또다시 투덜거린다. 나는 아직도 대안교육이 뭔지, 생태와 공동체를 강조하고 아이들에게 대안적인 삶을 꿈꾸게 하는 이 행위가 과연 정말 내 아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건지 확신하지 못한다. '대안학교 사람들의 헌신과 열정이 대치동 엄마들과 무엇이 다를까?'라는 물음이 늘 따라다닌다. 실제로 나는 엄청 극성맞은 외고 학부모회장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엄마가 중학교 때는 대안학교에서 그렇게 열심이었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나도 대안학교 일을 제법 열심히 하는 학부모였고, 가끔은 내 모습이 치맛바람으로 보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나의 교육열이 내 아이 하나를 위해 발현되는 것인지 공동체와 주변을 함께 아우르며 가는 것인지는 스스로 자주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다른 교육적 소란스러움을 경계하며

나는 두 딸을 대안학교에 보낸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아쉬운 점이 아예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내 아이들은 이곳에서 잘 자랐다. 학교와 아이에게 모두 고맙다.

그런데 나는 다시 다른 곳에 눈을 돌리고 있다. 둘째를 학생 수가 많은 기숙형 대안 고등학교에도 보내고 싶고, 인가받은 학교에 보내는 것도 생각해본다. 내년에는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이참에 둘째와 홈스쿨링을 해볼까 싶기도 하다. 그동안 바쁘게 살면서 아이를 제대로 키워본 적이 없다. 늘 어린이집, 학교, 방과후교실 같은 시설에 맡겨왔다. 마침 내가 일을 쉬고 있는 중이라 아이와 홈스쿨링을 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면서 둘만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면 어떨까 별별 생각을 다 해본다. 이희경 씨의 글은 이런 고민에 빠져 있는 나에게 일종의 과속방지턱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지금 내가 큰딸 유치원을 옮겨 다니던 그때 그 증상이 재발한 건 아닌지 깊게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 속에서 나는 아직 답을 얻지 못했다. 아마 지금 내가 무슨 결정을 내린다 해도, 나는 늘 교육에 대해서는 답을 찾지 못할 것 같다. 그나마 두 아이를 통해 공교육 5년, 대안 초중등교육 12년의 학부모를 경험한 지금, 누군가가 공교육과 대안교육 중 어디를 보낼까 물어보면 나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 어떤 교육 현장이나 교육 상품도 완벽할 수 없고, 우리 아이와 궁합이 잘 맞을지도 미지수라고. 그러니 아이가 원하는 것과 아이가 수용할 수 있는 수준, 그리고 부모가 원하는 것, 해줄 수 있는 것, 참을 수 있는 것까지 냉정하게 파악해봐야 한다고. 그리고 그 두 가지 욕구와 능력 사이에서 가장 원만한 합의점을 찾아서 아이를 보내고, 일단 보낸 뒤에는 최선을 다해 아이와 함께 그 상황을 즐기며 또는 견디며 함께 살면 된다고. 그리고 단 하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그곳이 최선이 아닌 것 같다고 다시 내 입맛에 딱 맞는 다른 곳을 찾아다니지는 말라고. 유치원이든 학교이든 학원이든 요란한 교육 쇼핑을 하는 동안 아이는 힘들어하고, 마음에 상처가 남는다고 말이다.

나는 아직도 대안학교 학부모로 너무 부족하다. 그러나 아이가 대안학교를 흔쾌히 원했고 좋아하기에 나는 여전히 대안학교 학부모로 살고 있다. 아이가 또 다른 요구로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나의 욕구와 상황을 파악하여 적절히 조율하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아이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 위의 글은 <민들레> 84호 "교육, 시장에서 길을 잃다"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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