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 일상이 시작된 월요일, 햇살이 따스하고 화창했다.

책모임에서 이번 주에 이야기 나누기로 한 책은

권정생 선생님의 초등 저학년을 위한 동화집 '또야 너구리가 기운 바지를 입었어요'였다.

미리 두 번 정도 읽었다. 아이들에게도 읽어주었는데 큰 아이가 재밌다고 했다.

뭐가 재밌는걸까?

재밌다란 느낌보다 평이하다, 편안하게 읽힌다 정도였기에 아이의 대답은 의외였다.

처음 가는 모임이라 어떻게 진행될까 분위기를 파악하고

다음부터 준비해볼까도 했지만 조금이나마 준비해가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고 던질 수 있는 질문을 생각나는대로 적어 모임에 참석했다.

 

서로 인사하고 모임이 시작되었다.

모임의 시작은 옛날이야기 한 가지를 들려주는 것이었다.

한 번에 한 명씩 돌아가며 하는 거였다.

누군가로부터 옛날이야기를 전해들으니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이런걸까 싶은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다보면

나도 맛깔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란

흐믓한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다음으로 발제 차례가 된 분이 준비한 내용을 읽었다.  

단편으로 6개 이야기가 묶여 있지만 다 다루지 않고 제목에 나와있는 첫편만 다루었다.

발제 형식은 자유로웠다.

발제 내용을 잠깐 보면

기운 바지를 입지 않겠다는 또야에게 "엄마가 거짓말 하는 것 봤어?"라는 말에

낯설음이 느껴졌다.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그만큼 자신 있어서이지 않을까.

또야를 안고 달래기 위해 설명하는 엄마의 모습,

기운 바지를 입고 유치원에 온 또야를 대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낯설었다고 했다.

이 낯설음은 결국 부러움이기도 했다고.

엄마와 아이, 아이와 선생님 사이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 건강한 가치를 만들어 간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으로 발제가 마무리 되었다.

 

발제 내용을 함께 읽고 처음 나눈 이야기는

기운 바지에 집중되었다.

쉽게 구멍이 나는 양말을 기워본 각자의 경험담이 쏟아졌다.

동화책에서 바지를 기워 입는 이야기가 등장하여 반가웠다,

기워주는 양말을 잘 신는다는 남편이야기,

새 것이 많은데 왜 기워신냐고 했던 이야기들이었다.

기워입으면 궁상맞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기워줄 수도 있는데

'이렇게 입으면 산에 나무랑 시냇물에 고기랑 더 예쁘게 된다'고

표현할 수 있는 또야 엄마에게 한 수 배웠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해라고

말할 수도 있을텐데 그런 표현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가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어른의 표현으로 아이에게

설명하기보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야기를 써내려간

작가의 섬세함에 놀랐다.

'니가 나중에 잘 되라고 하는거야.'

'이렇게 해야 성공하지!'

'도대체 뭐가 되려고 이러니'

등 어른들이 아이에게 흔히 하는 우리 주위 말들을 보면

부정적이거나 아이들이 이해하기엔 어려운 단어들이 종종 들어있다.

당장 이런 말을 듣는 아이들이 말뜻을 이해하긴 힘들다.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 아이들이 성공, 잘 되는 것 이런 걸 제대로 이해할까,

나부터도 평소 아이들에게 쓰는 말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또야 엄마가 기운 바지를 입으면 우리가 살아가는 자연을 보호할 수 있어라고

말하는 것과 '산에 들에 나무들이 더 예쁘게 꽃이 핀다고.' 표현한 것에 차이가

그것이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 아이가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야

대화가 이어지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더 많지 않았나.

 

한 분이 어느 입학식날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교 선생님이 다음 날 무엇을 준비해오라고 말했다.

한쪽에서 한창 떠들어서 못들었거라고 생각한 아이들을 향해

그 선생님이

"내가 뭐라고 했어?"라고 물었다.

그 때 다른쪽에 있던 한 아이가

"내일 ... 준비해오라고 하셨어요."라고 대답했다.

이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바로,  

"내가 너한테 물었어!"라며

뒤에 부모님들도 계신데 소리쳤다는 거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른 분이

만약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

"그래, 이 친구가 너희들을 위해 제대로 말해줬구나."라고 했다면

선생님은 전하려고 한 말을 못들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전했을 것이고

대답한 학생도 주눅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고.

-선생님의 원래 표현에도 주눅이 안 들 수 있지만-

오가는 말과 말 사이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구나 싶었다.

 

또 한 분은 이 책을 예전에 읽고 너무 좋아서

아이와 들이나 산으로 갈 때면

"이것 참 예쁘다."고 아이들이 들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야기하는데 뒤따라오는 아이들은 게임을 하면서

듣는둥 마는둥 하여 서운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나이들었을 때 자녀가 명절이라 마지못해

자신을 찾아와주는 건 그렇게 반갑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우리가 어떤 음식을 먹을 때나 어떤 장면에서 선뜻 생각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나서 연락하고 찾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가족끼리, 또는 가까운 이웃이나 친구끼리도 

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다른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닐까.

엄마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아이들에게 더 자주 이야기해줘야겠다.

같이 놀이모임하는 엄마들끼리도 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자주 이야기 나눠야지.

 

발제자가 '또야 너구리가 기운''바지를 입었어요.'

사이에 '나는'이란 표현을 끼워왔다.

꼬매다라고 표현해도 되겠지만 기운이란 표현을 써서

기운 바지를 입고 기운난 또야를 표현해 낸 건 아닐까란 거였다.

이 글은 '환경과 관련된 동화야' 이렇게 단정지을 필요도 없다.

읽은 사람에 따라 같은 이야기도 다 달라질 수 있는거니까.  

혼자 책을 읽고 정리를 했다면 이런 생각들을 했을까.

함께 이야기하면서 나누었던 것을 빨리 글로 써놓고 싶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사라져버릴 것 같은 설레임,

책을 읽지 않고 참석한 분들은 돌아가서 꼭 읽어보고 싶다,

책을 읽고 왔지만 다시 큰 소리로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다고

마지막 소감들을 나누었다.

 

책모임을 오래 해온 분이 계셔서 전체 흐름을 잘 연결해주셨고

이야기가 더 풍성해지지 않았나 생각한다.

책과 함께 설레이는 날을 보냈더니 그 여운이 하루 종일 가시지 않는다.

두근두근 올 한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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