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수업을 받으러 평소보다 일찍 출근하는 남편 등에 대고 오늘도 여지없이 '잘 다녀와, 근데 넘 좋겠다' 라는 미움이 약간 섞인 말을 뱉고 말았습니다. 일로 한국 출장이 잦아져서 한국어가 필요해진데다 아이가 커가면서 가족을 위해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져서 내린 결정이라 했습니다. 더 이상 퇴근 시간을 늦추다간 자는 딸 얼굴도 제대로 못 보겠다싶어 아침에 시간을 내기로 했다는 말도 함께요. 

그래서 오늘도 잠이 막 깬 아이와 잠옷바람으로 남편을 배웅하고 요구사항 많으신 따님 시중들다 타 놓은 커피에 우유지방이 둥둥 뜰 무렵 잠이 든 아이 방 문을 조용히 닫고 나와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이 억울하다는 심정은 가벼워 질 기미가 보이지 않네요. 분명 일본에 오면서 비싼 양육비도 문제였지만 지난 일 년 간 대충 한 엄마 노릇 몰아서 잘 해 보리라는 각오로 제가 아이와 함께 있기로 남편과 같이 한 결정인데 시간이 갈 수록 여전히 일에 충실하고 자기 계발에도 열심인 남편과 틈 나는 대로 제 일을 계속해 보려하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 발만 동동구르는 제 모습이 이리도 비교가 되는지요. 


저는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장소와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일을 하는 시기 역시 다른 직업에 비해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요. 허나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영화가 세상에 나오기까지 장시간 노동과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중국에 있던 마지막 해에 촬영을 해 둔 작품을 욕심부리지 않고 육아와 병행하며 천천히 끝내보리라 다짐을 했건만 몇 개월이 지나도록 전혀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조금씩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애가 낮잠을 자는 시간에는 집안 정리 좀 하다보면 아이는 깨서 울고 있고 저녁에 재우고 나서는 저 역시 녹초가 되어 애 옆에 쓰러지기 일쑤지요. 

조급증을 내는 제게 남편이 묻더군요. '우리 딸이 더 중요해, 당신 일이 더 중요해?' 순간,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미는 것을 느꼈습니다. 물론 그 질문에 대한 대답, 그 질문을 하는 의도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더 미웠나 봅니다. '딸만큼은 아니어도 내 일도 무척 소중하다구! 그렇게 물으면 나 섭섭해!' 

일단 소리는 치고 났으니 속은 시원한데 가슴은 더 답답합니다. 정말이지 남편 말대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전 욕심쟁이일까요? 차리리 어느 쪽이든 올인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까요?


때마침 조만간 도쿄에서 있을 다큐멘터리 행사에 함께 참여를 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일정이 나흘이나 되는데 도무지 아이를 맡길 만 한 곳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남편은 그 중 사흘을 출장을 가야한다는군요. 저한테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수 도 있는데 놓치기 싫었습니다.절대 놓칠 수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생판 모르는 베이비시터에게 하루 장시간 며칠을 맡기자니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를 않았습니다. 아이 걱정하느라 일을 제대로 할 수나 있으련지..


며칠을 고민하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도 직장이 있어 시간 빼기가 어렵다는 거 잘 알고 있지만 정말 비빌 언덕이라곤 그 곳 밖에 없더군요. '엄마 있지...' 한 참을 빼다가 상황 설명을 하고 조심스레 와 주실 수 있는지 여쭤보았습니다. '그래? 나흘까지는 어찌 해 볼 수 있을거야. 넌 걱정말고 네 일 준비나 잘해!' 한치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으시고 시원하게 대답을 해 주시는 엄마에 대고 전 제 딸보다 더 큰 소리로 엉엉울고 말았습니다. 


엄마가 안계셨더라면, 오실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전 어땠을까요. 그냥 포기했을겁니다. 그리고 두고두고 후회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애꿏은 딸래미를 원망하면서요. 하지만 제가 언제까지 이 아슬아슬한 삶을 지속할 수 있을런지요. 정말 전 욕심쟁이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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