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각
안그래도 늦었는데
버스타고 한남대교 건너는 중
옆 차선으로 슝슝 가는 버스
왜 이쪽은 굼뜬지
찰랑거리는 짙은 강물빛
오랜만에 탁트인 한강이
눈앞에 아른거려도
내 안에 안들어온다
늦었다
아주많이
그냥 집으로 가버릴까
조금 돌아가더라도
전철 탈걸 그랬나
속타는 맘 달래려고
몇 자 적어본다
1월 어느 날 강남에서 강북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쓴 시다.
처음부터 시를 써야지하는 생각은 없었다. 버스 안에서 맘 졸이는 나를 보면서 쪼그라든 맘을 좀 풀어볼까해서 메모장에 긁적였더니 이렇게 써졌다. 어떤 상황에서든 내 감정을 다시 돌아볼 수 있는 방법으로 시 쓰는 걸 추천해본다. 아주 짧게라도 감정을 글로 표현해보면 기분이 이랬구나, 이렇게 보였구나, 이런 생각을 왜 했을까 하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질문을 던져볼 수 있는 약간의 틈이 생긴다. 초등학교 4학년 아이의 갑작스런 행동변화에 당황스러웠던 맘을 달랠 때도, 천천히 걷다가 문득 기분 좋은 생각이 들 때도, 하루를 되돌아보다가 짧게 글을 남기고 싶을 때도 '시'로 나타내는 게 편해졌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에서 시를 쓰려고 앉았는데 막상 어떻게 쓰란 얘긴지 몰라 엄청 맘 고생했던 때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 때는 시라고 하면 은유적으로 나타내야한다는 막연함에 시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아니다. 잠깐 최근에 읽은 시를 몇 편 올려본다.
책 '쉬는 시간 언제 오냐' 중에서
내 돈 - 이민지(장곡초등학교 5학년)
우와! 추석에 받은 돈
진짜 많다.
하나 둘 셋
세고 있는데
엄마가 왔다.
공포의 돈 청소기
우리 엄마
큰일 났다.
돈 다 뺏기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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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을 때나 다시 읽어보아도 어쩌면 그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잘 나타냈을까 저절로 웃으면서 읽었던 시다. 한 편 더
소수의 나눗셈 - 이태훈(장내초등학교 6학년)
풀기도 힘들고
짜증도 났지만
교육의 의무를 위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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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이처럼 길지 않아도 좋다.
수학 시간 '소수의 나눗셈'을 하면서 든 감정과 생각을 아이는 그대로 썼고 읽는 사람은 각자의 느낌으로 해석하면 된다. 굳이 이 시를 어떻게 썼는지 평가 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을 계속 평가받아온 과정에 익숙하지 않았나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이라기 보다 해야하는 일이 많았고 특히 교육과정 안에서는 만들고 쓰고 움직이는 모든 것을 점수로 평가하다보니 무언가를 그대로 표현하는게 어려웠던 것 같다. 이런 평가나 남의 시선을 내려놓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지금 감정이 무엇인지 오롯이 돌아볼 수 있다면 아이와의 관계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곧 다가올 설명절 준비로 분주한 하루다.
가족들과 따뜻한 명절 보내시구요
새해에는 잠깐이라도 시를 써보는 한 해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베이비트리 모든 분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