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토요판] 가족/내 아내의 산후우울증

▶ 변화는 기쁨과 두려움을 동반합니다. 부부만 있던 가정에 아기가 찾아오는 것도 그렇죠. 신혼이 사뿐사뿐 구름 위를 걷는 꿈이라면, 출산은 땅에 첫발을 내딛는 도전입니다. 어떤 부모가 될까 고민할 새도 없이 밤낮으로 울고 보채는 아기의 등장은 현실입니다. 꿈이 아닌 현실과 처음 마주쳤을 때 ‘멘붕’하지 않도록 산모와 남편, 가족들 모두 조금씩 노력해야겠습니다.

내 나이 30대 중반 그녀를 만났다. 나보다 3살이 적은 그녀였다. 한여름 아스팔트처럼 팔팔 끓는 연애를 할 나이가 지났다고 생각해서였을까. 나는 그녀와의 연애가 적당히 달달해서 좋았다. 아니 편했다. 사회생활도 할 만큼 했고 서로 나이도 꽉 찼으니 나쁘지 않다면 길게 갈 이유가 없었다. 5개월의 연애를 끝내고 한 가족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달 후 그녀가 임신을 했다. 계획한 임신이었냐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렇게 빨리 아빠가 될 줄 몰랐다.

계절이 바뀌고 시간이 흘러 아내는 예쁜 딸을 낳았다. 다른 산모들처럼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던 아내는 편해 보였다. 출산휴가 석달이 지나면 복직해야 하는 아내를 위해 입주도우미를 두기로 했다. ‘그 정도는 해줘야 남편이지’ 어깨를 으쓱했다. 임신하면 살이 붙고 출산 후에는 몸매가 망가진다는데 딸을 낳고도 결혼 전과 달라진 게 없이 예쁜 아내와 아내를 꼭 닮은 딸. 이 정도면 ‘순조로운 인생의 출발’이라고 생각했다. 아내가 산후우울증을 앓기 전까지는 말이다.

“당신은 애한테 해준 게 없다!” 아기를 낳고 석달쯤 지난 어느날, 난 침대에 누워 있는 아내의 등에 대고 소리를 질러버렸다. 나이 들어서 만난 우리 부부는 싸울 일도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기를 낳고 나서 다투는 횟수가 늘었다. 아내가 장모님께 아기를 맡기고 자주 집 밖으로 나가거나 집에서 누워 있는 게 싫었다. 낮밤을 가리지 않고 우는 아기를 안고 달래는 아내를 보면 안쓰럽다가도 “친정엄마와 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다 돌봐주는데 넌 왜 또 우냐!”고 우는 아기 얼굴에 고함을 내지르는 아내 모습을 보니 무섭기까지 했다. 아기들은 원래 잘 울지 않나! 감정싸움이 격해지던 중 아내가 “죽고 싶다”며 굵은 눈물을 흘릴 때에야 뭔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산은 아름다운 구속?

숨막혀, 죽고 싶다는 그녀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을까

낮엔 직장, 밤엔 육아

주말엔 1박2일 시댁봉사

그리고 내 무관심이 원죄였다

“나는 당신과 데이트도 많이 못해봤는데….” 내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던 연애와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아내의 임신과 출산이 아내에게는 ‘아쉬움’과 ‘두려움’이었다. 아내는 나와 신혼생활을 더 즐기고 싶었는데 덜컥 아이가 생겨버려 내심 속상했다고 했다. 또 화장실에 갈 시간도 없을 만큼 24시간 내내 아기에게 매여 있다 보니 “나 자신을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세상과 격리된 채 아기랑 둘만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막막함에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또 내가 일이 많다는 이유로 매일 늦게 퇴근하고 아기를 함께 돌보지 않는 것도 서운한데, 주말마다 1박2일로 시댁에서 지내야 하는 것도 “숨막히게 싫었다”고 고백했다. 출산휴가가 끝나면 회사에 나가야 하는데 “아기가 내 발목을 잡는다”며 “아기한테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고, “나와의 결혼을 잘못한 것 같다”는 아내의 말을 듣다 보니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흠씬 두들겨 맞은 기분이랄까. 실로 충격이었다.

남자 자존심에 순간 ‘욱욱’ 할 때도 있었지만 아내 말이 틀린 건 없었다. 부모님 집에 갔을 때 아내에게 “밥 차려라” 하고는 친구를 만나러 나가버린 적도 있었고, ‘딸바보’ 아빠이긴 했어도 육아는 아내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이었다. 장모님과 도우미 아주머니, 아내가 알아서 해주기만을 바랐던 것 아닌가. “소홀했다”고 인정하고 나니 비로소 아내에게 미안해졌다. 엄마가 된다는 건 결혼한다는 것과 부담의 무게부터 다른데, 아내 혼자 얼마나 외롭고 불안했을까 생각하니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늘 부모님 댁에서 머물던 주말부터 바꾸기로 했다. 부모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리니 “왜 이야기 안 했냐”며 “다 이해한다”는 반응이셨다. 주말이면 아내와 단둘이 교외로 드라이브를 가거나 영화를 보러 외출했다. 아내가 스스로 자신감을 찾을 수 있도록 칭찬을 생활화했다. 술자리도 마다하고 일찍 퇴근하려 노력했다. 체력이 약한 아내가 쉴 수 있도록 육아를 돕기로 결심했다. 연애할 때처럼 아내의 말을 들어주고 아내의 작은 행동을 살피다 보니 아내는 여전히 예쁜 사람이었다. 하긴, 결혼 전이라고 말해도 믿을 만큼 우월한 미모의 아내가 아니었던가. 그렇게 한달, 나의 반성과 사랑으로 ‘내 아내의 산후우울증’을 치유하는 중이다.

▶ 해본 적 없는 엄마, 초산이 더 위험

아기를 출산한 뒤 우울감을 느끼는 여성이 많다. 임신을 유지하기 위해 높아져 있던 여성호르몬이 출산 뒤 급격하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2주 정도 우울함을 느끼는 ‘산후우울감’은 일반적인 증상이지만 우울함이 더 오래 지속되거나 증상이 심해지면 ‘산후우울증’을 의심해봐야 한다. 전체 산모의 10~20%가 걸리는 산후우울증은 출산 뒤에 증상이 시작된다는 것만 다르고, 식욕이나 수면 정도가 변하거나 무기력하고 슬픈 감정에 취해 있는 증상은 일반 우울증과 비슷하다. 전문가들은 초산일수록 산후우울증에 빠질 확률이 높은데, 호르몬의 변화가 증상을 유발하는 만큼 초산 때 병을 앓았다면 제대로 치료해야 이후 재발하지 않는다고 조언한다.

산후우울증이 위험한 건 엄마는 물론이며 아기의 불행이기 때문이다. 부모는 아기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아기 성격을 순화하거나 개발할 수 있다. 하지만 아기와 가장 밀착된 존재인 엄마가 아기 행동에 적절한 반응을 보여주지 못하면 아기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학계에서는 인간의 발달에 중요한 시기를 보통 생후 3살까지로 본다.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요즘 산모들이 산후우울증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러 명의 식구가 복닥거리며 자란 어머니 세대와 달리 핵가족 안에서 성장해 다양한 가족의 역할을 해본 적이 없어서다. “엄마라는 새로운 역할에 대한 두려움이 큰 거다. 자기를 중심에 두고 살았는데 아기로 인해 생활이 구속되는 걸 답답해할 수 있다.” 김미영 서울가족문제상담소장은 “사랑스러운 아기가 태어나 기쁜데 한편으로는 불안한 산모 마음이 얼마나 복잡하겠냐”며 가족의 사랑과 관심을 호소했다.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 가족들에게 미처 전하지 못한 마음속 얘기를 사진과 함께 편지(원고지 6장 분량)로 적어 gajok@hani.co.kr로 보내주세요. 채택된 사연에는 빕스(VIPS)에서 4인가족 식사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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